수순이 : 거울을 바라보는 시간(3)
혼잣말을 하는 시간
출근하러 가는 길, 나는 아침마다 혼잣말을 한다.
운전대 앞에 앉아 라디오를 작게 튼 다음, 전방을 주시하며 혼잣말을 나지막이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나를 모르는 누군가가 이 모습을 보면 조현병에 걸린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오늘 하루를 준비하는 몹시도 진지하고도 중요한 의식을 진행 중이다.
하루를 후회 없이 안정되게 시작하고 보내기 위해서 만날 수 있는 상황들을 가정해 보고,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거나 해야 하는 말들을 최대한 머릿속에서 떠올리고 직접 해본다. 머릿속으로 가정해보는 상황들은 주로 앞으로 일어날 만한 갈등의 상황이거나 학생을 상담 또는 지도해야 할 상황들이다. 이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말들을 마치 연기해야 할 대본을 써 내려가듯이 취사선택해 보는 것이다.
운전을 하는 중이니 운전대를 잡고 시선은 앞을 향한 채로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상상을 시작한다. 눈앞 상황과 다른 내면의 세계로 빠져들어가는 것이다. 머릿속에서 떠올린 구체적인 상황 속에는 나 말고도 또 다른 주인공인 A가 있다. 오늘 아침 일찍부터 상담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 문제의 학생인 A. A는 지난 몇 개월 간 지속적으로, 집요하게 같은 반 친구 B의 외모를 놀렸고, 이것이 문제가 되어 학폭으로 가기 직전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A를 머릿속에 떠올리니 우선 화가 불쑥 치밀어 오른다. B가 나를 찾아와 문제를 제기하기 직전까지 나는 A의 지나친 언행을 여러 차례 지적하고 지도해 왔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A가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조금도 태도를 바꾸지 않았기에 일이 이 상황,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으로 첫마디를 내뱉어 보지만, 감정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말투에 스스로 고개를 젓는다. 크게 한숨을 내쉰 뒤, 천천히 해야 할 말, 하고 싶은 말들을 떠올리며 다시 혼잣말을 시작한다.
우선 A가 했던 그간의 잘못들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꺼내 본다. 하지만 몇 마디 이어가다 보니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해나갈 경우 감정적이고 예민한 A의 성질을 건드려 발끈하게 만들거나, 감정을 앞세워 또다시 반성하지 않는 상황이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보다 누그러진 말투로 다른 내용의 단어들을 선택해 보았다. 선생님이 얼마나 너를 걱정하고 있는지를 호소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나는 너를 염려하고 너의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나는 너의 편이다'라는 메시지를 부드러운 어조로 써 내려가 본다. 그리고 그것을 집중하여 연기하면서 말해본다, 표정까지 완벽하게. 혼잣말을 하는 동안 머릿속에서 해야 할 말과 하고 싶은 말, 온갖 감정들이 뒤엉켜 혼란스럽거나 맘대로 표현이 잘 되지 않아 답답할 때도 있다. 하지만 상황 속 대사들이 생각보다 잘 정리될 때에는 난처하거나 고민되는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에 대한 막연한 걱정을 더는 데 도움이되기도 하여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보는 혼잣말을 자주 하곤 한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습관처럼 혼잣말을 해왔던 것은 아니다. 이것은 최근 들어, 올해 초 학생인 C에게 사과한 일이 계기가 되어 보다 습관처럼 굳어진 것 같다.
담임을 맡은 지 얼마 안 된 터라 더더욱 잘 알 길이 없었던 C는 평소 말수가 적고 조용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C가 도움반 친구인 D에게 손가락 욕을 하였고, 그것에 분개한 D가 웃통을 벗으며 길길이 날뛰는 사건이 일어났다.
지적장애를 가진 D를, 그것도 지나가며 반갑게 인사한 D를 욕하여 분노하게 만든 일은 C가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그 상황에서 왜 그랬느냐고 묻는 것은 상당히 형식적인 질문이었었다. 교무실이 시끄러워서 C의 대답이 잘 안 들렸던 탓도 있었지만, 솔직히 이유를 듣고 싶은 생각조차 없었다. 실망스러운 마음에 큰 소리로 C를 비난하며 꾸짖었다. 부끄러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며 심지어 처벌을 받을 수 있는 행동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다그쳤다. 일과가 끝난 뒤 반성문을 쓰게 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는데, 그날 저녁 C의 학부모님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문자로 알게 된 사연인즉슨, C는 중학교 때 D의 도우미를 자처해 활동을 했었는데 그 당시 D가 침을 뱉거나 때리는 행동을 하여 기분이 상하는 일이 많았고, 이에 대해 제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더욱 억울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D는 자신의 과거 행동은 기억하지 못한 채 반갑게 인사했지만, 과거 부정적인 감정이 쌓여있던 C는 이런 모습을 보니 되려 화도 나고 별로 인사하고 싶지 않아져서 손가락 욕을 했다는 것이다. C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은 인정하지만, D의 입장에서만 문제를 바라보고 크게 혼낸 것에 대해 C가 상처를 받게 되었으며 종합적으로 C만을 크게 꾸짖는 상황이 억울하다는 내용의 문자였다.
문자를 받고서 나는 당황스러움과 혼란스러움, 몹시 후회스러운 감정에 빠졌다. 그 상황에서 C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았음을, 그보다도 더 C를 나의 감정을 앞세워 지도한 점을 몹시 후회했다. C에게 잘못이 있는 것은 맞으므로 C의 편만 들 수는 없다는 것은 분명히 했으나, 학생을 지도하는 과정에 있어서 내게 잘못한 점이 있다고 인정하고 C에게 사과하였다. 벌써 반년이 다 되어가는 일이라 그 상황들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뒤로 혼잣말을 하는 습관이 생기게 된 것으로 보아 스스로에 대해 크게 실망했거나, 아니면 또 이러한 실수를 다시는 저지르지 말아야겠다고 강하게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혼잣말로 내가 할 말들을 생각해 볼 때 가끔씩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말을 스스로 점검하는 행위에, 나의 순간의 감정과 순간의 행동에 대한 자유를 빼앗긴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섣부른 언행으로 실수하여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것이 싫고, 그로 인해 내가 후회할 일들을 만드는 것 또한 두렵고 싫다. 그 상황에서 꼭 하고 싶은, 해야 할 말을 미처 하지 못하게 되는 것 또한 싫다. 더 나아가 내 실수와 그로 인해 일어날 예기치 못한 불확실한 상황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예상이 가능한 상황에 대해 열심히, 아침마다 시나리오를 짜서 다소 정제된(?) 감정으로 연기를 해 본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함께 대화하며 고민을 해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것도 한 두 번이지 바쁜 현대인의 일상에서 매번 나의 감정과 고민을 나눠줄 누군가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퇴근 후 얼굴 볼 시간도 길지 않은 데다 직업적인 차이로 나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해주기 어려운 남편을 붙잡고 매번 이야기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그렇다고 나처럼 일하고 집에 가기 바쁜 워킹맘 동료에게 매번 상담하듯 물어보는 일도 쉽지가 않다. 또한 고민 상담을 통해 문제가 해결될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문제에 대한 나의 접근 방식이나 태도를 점검함으로써 최대한 신중하게 문제에 접근해 보았을 때 많은 일들이 해결됨을 느끼며 더욱 혼잣말을 습관처럼 하게 되었다.
이 습관 덕분에 예전에 비해 감정을 잘 다스리며 말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머릿속으로 상황을 가정해보며, 무엇보다 처음으로 써 보는 대사 첫마디는 꽤나 날 선 감정들이 담겨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놀랄 때도 많다. 미리 어떤 말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보지 않은 채로 그 상황에 임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아찔할 때가 있다. 이렇게까지 스스로가 감정적인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에 나는 또 내가 할 말을 다듬어 되뇌곤 한다.
혼잣말의 좋은 점은 스스로 더욱 겸손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최대한 나의 감정과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면, 나는 자연스럽게 신께 지혜를 구한다. 그렇기에 이 시간은 하루를 시작하기 전, 나의 부족함을 깨달으며 지혜롭게 위기를 헤쳐나가도록 좋은 수정안(?)을 주십사 하고 기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만났을 때에 지혜로운 말과 행동을 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를 내가 믿는 신께 기도한다. 그러고 나서 다듬기 시작하는 말들은 훨씬 가다듬어진, 나의 평소 성격과 다른 대사들로 채워질 때가 많다.
물론 예상과 다른 상황, 예상과 다른 반응들에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때도 있지만, 아침에 가다듬은 호흡과 여러 번 다듬어 본 말들의 - 아니 드렸던 기도의 - 효과는 꽤나 확실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걱정이 많은 아침, 나에게 보다 나은 하루를 기대할 수 있게 하는 '혼잣말을 하는 시간'이 내겐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