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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영화: 민스크, 22세 청년과 50대 아재

클럽에서 청춘을 불사르다

by 불드로

# SCENE 1. 나이라는 이름의 벽

20대와 50대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적어도 한국에서는 ‘아니오’에 가깝다. 나이라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처음 만난 사람의 호칭과 말투, 관계의 거리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50대 ‘아재’와 22세 학생이 함께 클럽에서 밤을 불태운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택도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나이의 벽이 없는 곳이라면 어떨까?


# SCENE 2. 위험하고 아름다운 도시, 민스크

2022년 7월, 나는 외교부가 ‘출국권고’를 내린 나라, 벨라루스로 향하고 있었다. 30년 독재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운 폐쇄적인 나라. 하지만 ‘우크라이나 못지않은 미녀의 나라’라는 명성 또한 자자한 곳. 호기심은 이번에도 나를 위험 속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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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우회하느라 6시간이나 걸린 비행. 그 지루한 비행기 안에서 나는 운명 같은 인연을 만났다. 옆자리에 앉은 22세의 터키 유학생, 리가즈(Ligaz). 한창 혈기왕성한 그 역시, 나처럼 ‘놀이’를 사랑하는 영혼이었다.

우리는 영어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곳에는 ‘아저씨’도, ‘학생’도 없었다. 그저 여행과 음악, 그리고 인생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두 남자만 있었을 뿐이다. 그는 내게 민스크 최고의 클럽을 소개해 주겠다며 눈을 찡긋했고, 우리는 그날 밤을 함께 불태우기로 의기투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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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3. KING OF THE PARTY

그날은 마침 불타는 토요일 밤이었다. 리가즈가 안내한 민스크 최고의 클럽 ‘모히토(Mojito)’는 그의 말대로 화려하고 거대했다. 그의 인맥 덕분에 우리는 아름다운 미녀 두 명과 함께 무대가 잘 보이는 VIP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Ligaz와 그의 여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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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시 30분, 클럽의 열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우리가 주문한 위스키 세트가 등장했다. 그 순간, 클럽 안의 모든 조명이 우리를 비췄다. 거대한 LED 스크린에 대한민국의 태극기가 휘날리기 시작했고, 비키니 차림의 댄서들과 한복을 개량한 듯한 옷을 입은 미녀들이 위스키를 들고 우리 테이블로 행진했다.

“오늘은 내가 이 파티의 왕(King of the Part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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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매니저는 ‘코리안’이 이렇게 주문한 것은 처음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주변 테이블의 러시아, 이스라엘, 튀르키예 손님들의 부러운 시선이 쏟아졌다. 그 순간, 나는 50대 한국인 아저씨가 아니었다. 국적도, 나이도 사라진, 그저 파티의 왕이었다.

역대 가본 전 세계 클럽 중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그곳에서, 나는 모든 것을 잊고 음악에 몸을 맡겼다. 리가즈와 그의 친구들, 옆 테이블에서 합류한 미녀들, 흥을 돋우는 댄서들과 어울려 새벽 5시까지 청춘을 불태웠다. 동이 터오는 아침, 클럽 문을 나서며 느꼈던 그 뿌듯함이란!


# SCENE 4. WE ARE THE WORLD

그날의 비용은 미화 300달러. 리가즈와 반씩 냈으니, 150달러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산 셈이다. 한국의 고급 클럽이었다면 몇 배의 돈을 내고도, 나는 나이 때문에 입구에서 ‘뺀찌’를 맞았을 것이다.

그 후로도 나는 7일간 리가즈와 세 번의 밤을 더 불태웠다. 우리는 나이를 떠나 완벽한 친구가 되었고,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조만간 그가 한국에 오면 함께 클럽에 갈 생각인데, 나만 입구에서 잘리면 어떡하지? 하하.

그건 그때 가서 걱정할 일이다. 존댓말 없는 영어와 ‘놀이’를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우리는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다.


나이 불문, We are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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