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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영화: 코스타리카, BTS가 맺어준 인연

가장 살기 좋은 나라 No.1?

by 불드로

# SCENE 1.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은퇴 후 어디서 살면 가장 행복할까?”

세계적인 한 여행 잡지는 그 답으로 ‘코스타리카’를 1위로 꼽았다. ‘풍요로운 해안’이라는 이름처럼, 전 국토의 4분의 1이 국립공원인 아름다운 자연과 중남미 최고 수준의 치안. 듣기만 해도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곳. 나는 그 명성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호기심을 안고 코스타리카로 향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한 수도 산호세는 내게 물음표를 던졌다. 아름다운 자연은 명불허전이었지만, 한국과 맞먹는 살인적인 물가는 ‘은퇴 후 살기 좋은 곳’이라는 명성에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관광객의 시선으로는 어딘가 심심하게 느껴지는 도시. 나는 어슬렁거리다 그 나라의 서울대 격인 국립대학 캠퍼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인터내셔널 리빙 닷컴(https://internationalliving.com)에서 매년 은퇴 후 살기 좋은 나라 순위 발표하는데 코스타리카는 가장 많은 1위를 하는 나라이다. (2021년도 1위, 2022년도 2위, 2023년도 5위, 2024년도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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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2. “안녕하세요, 꼬레아!”

혼자 여행의 단점은 내 사진을 남기기 어렵다는 것이다. 마침 근처에 있던 앳되고 귀여운 학생 두 명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스페인어로 말을 건네자, 그들은 흔쾌히 수십 장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꼬레아(C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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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마디에 두 학생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알고 보니 그녀들은 동양인이 드문 이곳에서 나를 보고 말을 걸고 싶어 힐끔거리고 있었다고 했다. 그것도 자신들이 너무나 사랑하는 ‘꼬레아’ 사람이니! 우리는 자연스럽게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혹시 BTS 알아요?” “당연하죠! 최고예요!”

한 학생은 BTS 사진으로 도배된 핸드폰 뒷면을 보여주며 수줍게 웃었다. ‘오징어 게임’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고, 나는 졸지에 지구 반대편에서 한류 전도사가 되었다. 밝고 명랑한 그녀들과의 유쾌한 대화. 심심했던 코스타리카가 순식간에 매력적인 나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 SCENE 3. 기적은 2년 후에 일어났다

그렇게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던 코스타리카. 2년 후, 나는 카리브해의 섬들을 여행하다 문득 그녀들이 떠올랐다. ‘잘 지내고 있을까?’

당시 나의 여정은 변수투성이였다. 축구 황제 메시의 경기를 볼까 말까 마지막까지 고민했고, 다른 나라에서의 체류 일정도 유동적이었다. 이미 가봤던 코스타리카를 다시 가는 것은 비효율적인 선택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짧은 인연이 마음에 밟혔다. 나는 결국, 니카라과에서 14시간 동안 국제 버스를 타고 산호세로 향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난 우리. 2년 만의 재회는 어색함 없이 반가웠다. 한참을 웃고 떠들던 중, 한 친구가 2년 전 함께 찍었던 사진을 보며 말했다.

“어? 오빠, 그거 알아요? 우리 처음 만난 날이 2021년 9월 30일인데, 오늘도 9월 30일이에요!”

순간, 우리 모두는 말을 잃었다. 소름이 돋았다. 수많은 변수 속에서 내가 단 하루만 다른 선택을 했더라도, 단 하루만 다른 곳에 머물렀더라도 불가능했을 재회. 이것은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정교한, 운명의 장난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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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지구 반대편에서 이런 인연이!”

그날, 나는 깨달았다. 여행의 가치는 물가나 볼거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때로는 이렇게 사람과 사람이 빚어내는 기적 같은 순간이, 그 어떤 화려한 관광지보다 더 깊은 울림을 준다는 것을. 내게 코스타리카는 이제 ‘은퇴 후 살기 좋은 나라 1위’가 아닌, ‘9월 30일의 기적을 선물해 준 나라 1위’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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