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신 안간다
# SCENE 1. 낭만은 카사블랑카까지
모로코. 영화 <카사블랑카>의 감미로운 대사,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그리고 지평선 너머로 펼쳐진 사하라 사막의 황금빛 물결.
이 모든 낭만적인 상상은, 1박 2일짜리 사막 투어를 신청하는 순간 처절한 생존기로 돌변했다.
카사블랑카의 하얀 건물들과 활기찬 클럽에서의 추억은 좋았다. 하지만 ‘지구별 여행자’라면 사막의 심장, 사하라를 밟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투어의 출발지인 마라케시로 향하며, 곧 펼쳐질 대자연의 장관에 가슴이 부풀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게 닥칠 ‘개고생’의 정석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붉은 마라케시]
# SCENE 2. 고통의 서막: 8시간의 강제 안마
문제는 이동 시간이었다. 마라케시에서 사하라 입구까지, 무려 8시간이 걸렸다. 그것도 그냥 8시간이 아니었다. 포장도 제대로 안 된 꾸불꾸불 산길을 달리는 동안, 버스는 나를 의자에 고정시킨 채 8시간 동안 쉬지 않고 흔들어대는 강제 안마의자 같았다. 피곤했지만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잠이 드는 순간 목이 꺾일 것 같았으니까.
8시간의 흔들림 끝에 사막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이제부터는 낙타를 타고 1시간을 더 들어가야 한단다.
낙타의 혹은 낭만적이었지만, 내 엉덩이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배낭까지 멘 몸으로 균형을 잡으려 애쓰다 보니, 이건 낙타를 ‘타는’ 것이 아니라 ‘매달려 버티는’ 것에 가까웠다.
# SCENE 3. 울트라 특급 열대야,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적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야영지. 쏟아지는 별빛 아래 시원한 맥주 한잔을 기대했지만, 이슬람 국가의 사막 한가운데에 그런 사치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도 천막 안에 침대가 있는 것을 보고 잠시 안도했다. 하지만 그 안도감은 밤 10시가 되자 절망으로 바뀌었다. 기온이 35도였다. 열대야 기준이 25도라는데, 35도면 이건 그냥 열대야가 아니라 ‘울트라 특급 열대야’다. 선풍기도 없는 밀폐된 천막 안은 거대한 찜질방과도 같았다. 숨이 턱턱 막혔다.
결국 천막 밖 야외 소파로 피신했다. 살랑이는 밤바람에 겨우 숨통이 트이는가 싶었지만, 새로운 공포가 엄습했다.
‘혹시… 전갈 나오면 어떡하지?’
영화에서 본 사막의 독충들이 내 주위를 기어 다니는 상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숨 막히는 더위와 보이지 않는 독충에 대한 공포. 육체와 정신이 동시에 고문당하는 밤이었다. 나는 결국 단 1분도 잠들지 못했다.
# SCENE 4. 위대한 탈출, 그리고 다짐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새벽 5시, 저 멀리 먼동이 터오는 것을 본 순간, 나는 희망을 보았다. ‘살았다! 이제 곧 여기를 탈출할 수 있겠구나!’
6시, 마침내 완벽한 사막의 아침이 밝았다. 붉은 태양이 모래 언덕 위로 떠오르는 장엄한 풍경.
“그래… 이 짧은 순간을 보려고, 어젯밤 그 생지옥을 견딘 거였어.”
스스로를 위로하며 아침을 먹고, 다시 비몽사몽간에 낙타 등에 올랐다. 1시간의 낙타 라이딩과 8시간의 버스 셰이킹, 그리고 2시간 반의 기차를 타고 카사블랑카 숙소에 도착했을 때, 나는 거의 시체가 되어 있었다.
나는 조용히 혼잣말을 내뱉었다.
“사하라 사막, 정말 멋지다. 근데, 다신 오지 말자!”
1박 2일을 위해 20시간 넘게 이동하고, 뜬 눈으로 밤을 새운 나의 사하라 생존기. 내 인생 최악의 가성비 여행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 중 하나가 되었다.
고통의 총량이 클수록, 추억의 농도는 짙어지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