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 겪어 봤어?
“네 비행기 이미 떠났어,
뭐 하고 있었니?”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수많은 여행 다니면서 비행기가 먼저 떠나는 경우는 처음 보았다.
극한의 자동차 경주라는 파리 - 다카르 랠리로 유명한 나라. 아마 세네갈이라는 국명은 몰라도 다카르는 들어 보았을 것이다. 세네갈은 서아프리카 끄트머리에 위치하고 있는 인구 1.700만 명의 이슬람 국가, 그럼에도 술과 돼지고기가 허용된다.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며 치안도 괜찮아 아프리카에서 보기 드문 관광 친화적인 나라이다.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서 제작한 아프리카 르네상스 동상]
미국의 3배 이상 큰 아프리카 대륙에는 50개가 넘는 많은 나라들이 있지만 무비자 입국 가능한 나라가 남아공, 모로코, 모리셔스, 세네갈등 몇 나라 되지 않는다. 나머지 나라들은 도착 비자를 받거나 근처 국가 대사관에서 발급받아야 하는데 이게 보통 귀찮고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감비아를 가려면 한국에 대사관이 없기에 미리 비자받을 수 없고 근처에 있는 세네갈에 가서 감비아 비자를 신청 후 며칠 기다려야 된다. 돈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에 상당히 번거롭다. 이런 식으로 아프리카 국가 방문시마다 비자(출입국 세금) 비용을 떼이고, 비행편도 타 대륙보다 훨씬 비싸서 생각보다 큰 비용이 들어간다.
이전에 아프리카 갔을 때 여행이 어려운 곳임을 익히 경험했다. 주의했지만 세네갈 도착 첫날부터 많은 일들이 연달아 벌어져 결국 멘붕이 왔다. 기가 막히는 일이 연속으로 벌어진다.
1. 숙소 : 간판 없는 호텔
공항에서 호텔 찾아 가는데 구글 지도상 이 근처가 맞는 것 같은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안 보인다. 왔다 갔다 몇 번을 찾아봐도 없다. 수소문해서 한참만에 찾았는데 이럴 수가. 간판이나 안내 표지가 없고 그냥 출입문만! 세상에 간판 없는 호텔은 상상을 못 해봤다. 그나마 낮에 왔기에 망정이지 밤에 오는 경우라면 못 찾을 뻔했다. 그러나 이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2. 첫 번째 택시 : 이 길 맞아?
도착 첫날 바로 감비아 대사관 가서 비자 신청 해야 되는데 호텔 찾느라 시간이 좀 지체되었다. 그러나 아직은 시간 여유가 좀 있어 안도하고 얼른 짐 두고 택시 타러 나왔다. 대사관 업무 마감 시간은 오후 5시, 택시 탄 시각은 4시. ‘30분 거리니 충분하겠구먼’ 생각하며 목적지 얘기 하니 택시 기사가 OK, 알아서 잘 간다. 그런데 미리 표기해 둔 구글 지도와 정 반대로 가는 것 아닌가?
“이봐, 이 길이 아닌 거 같은데?”
“아니야 이 길이 맞아, 내가 전에 가 봤어”
“봐봐, 구글 지도가 아니라고 하는데?”
몇 번을 다시 확인했는데 끝까지 우긴다. 결국 도착한 곳은 이전 대사관 자리. 다른 지역으로 옮긴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시각이 4:30 PM. 정반대로 왔기에 여기서 옮긴 대사관까지는 1시간 걸린다. 즉 5PM 업무 마감시간까지 못 가는 것이다. 보통 대사관 업무는 시간 되면 정확히 마치는 것 익히 알기에 안달이 났고, 화도 불끈 치솟았다. 그냥 하루를 날린 것이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이고 이역만리에서 기사와 싸워봐야 남는 것도 없고, 어쩌랴. 아쉬운 소리 약간 하고 택시비는 고스란히 지불.
3. 두 번째 택시 : 겁나 더러운 벨트
택시에서 내리고 나니 원하던 목적지가 아닌 데다 처음 보는 생소한 풍경에 힘이 탁 풀려 정처 없이 한동안 돌아다녔다. 화가 잔뜩 나 있는데 보기 힘든 아시아인 지나가니 자꾸 “치노(중국인) 치노” 또는 “아미고(친구)” 불러 대고 심지어 지나가다 어깨 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베테랑 여행가! 바로 긍정 생각으로 바꿨다.
“그래 내가 여행 한두 번 다니나?, 숙소 돌아갔다가 근사한 데 가서 밥이나 먹자!”
돌아오는 택시, 앞자리 탔기에 안전벨트 매었는데, 여기는 다들 안전벨트 안 하나 보다. 벨트가 더러워도 너무나 더러웠고 흰색 상의가 기름때로 까매졌다. 그러나 불운은 한참 더 이어진다.
4. 한식당 : 이 길이 아닌가 봐~
삼겹살과 김치찌개 그리고 소주가 마시고 싶어서 구글지도 찾아봤더니 한식당이 몇 개 보인다. ‘오~ 그래 아프리카에서 먹는 한식과 소주!!’ 오늘 저녁은 이거다! 더군다나 3Km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있다고 표시된다. ‘잘되었네, 거리 구경도 할 겸 걸어가야겠다’ 구글지도에 좌표를 찍고 길을 나섰다. 일반적 아프리카 도시들 공통점이 있는데 비포장 도로가 많아 흙먼지가 날린다. 그리고 차가 다니는 도로에 소나 말이, 가끔은 염소가 끄는 마차가 함께 다닌다. 그야말로 날것, 자연의 느낌이 듬뿍 난다. 때론 정겹기도 하다.
세네갈은 아프리카 축구 강국이 아니던가? 길거리 곳곳에 흙먼지 날리는 축구장이 있었고, 단순 동네 축구가 아닌 제법 하는 청년들이 체계적으로 훈련하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타 나라,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생경한 풍경들 보면서 걸으니 지루한 줄 모르고 어느덧 목적지 좌표에 도달하였는데 역시나 식당이 안 보인다. ‘어라? 이거 아까 숙소처럼 간판이 없는 거 아냐?’ 그래서 몇 번 주위를 더 돌았는데도 없다. 그리고 구글 지도 다시 검색해 보니, 아뿔싸! 이번에는 구글 정보가 틀렸다. 있어야 할 장소에 아무것도 없다. 제대로 확인 못한 나의 불찰도 있는데 앞서 겪었던 여러 가지 상황들과 겹치면서 ‘아~ 혼돈의 아프리카! 되는 것이 없구나!’ 탄식이 나왔고, 이러한 상황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반면 우여곡절 끝에 찾은 한식당은 대 만족이었다. 제대로 한국의 맛을 느낄 수 있었고, 삼겹살과 상추에 귀한 쑥갓까지 함께하여 쌈장에 싸 먹고, 소주 마시니 이런 천국이! 앞서 꼬인 일들이 다 사그라졌고, 기분 좋아졌어! 오라이~ 소주와 맥주 한 병씩 더!
5. 세 번째 택시 : 난폭 운전
배 부르게 먹고 마시니 기분 좋아졌다. 택시로 숙소 돌아오는데 차 상태가 적어도 30년은 된 듯, 좋지 않아 승차감이 별로인 데다 기사의 운전이 참으로 가관이다. 급 가속, 감속 그렇게 요동치니 갑자기 오바이트가 확~ 올라온다. 혼자 짧은 시간에 소주 2병, 맥주 2병 마신 상태라 급 반응이 온 듯하다. 그래도 차에는 실례하지 않으려 가까스로 참고 내려서했는데 폭발적으로 쏟아지니 셔츠에 다 묻는다. 가로등 없는 캄캄한 도로, 어디 씻을 데는 당연히 없고 수건이나 휴지 있을 리 만무하다. 택시에 다시 탈 수 없어 그냥 보내고 터널 터널 숙소로 2km 정도 걸어가는데 그날 하루가 참 처량했다. 그런 나의 몰골을 보고 현지인들 어떤 생각을 했을까? 여행 중 불운이 동시다발로 겹친 최악의 하루였다. 그러나 아직 더 큰 시련이 남아 있었다.
6. 비행기 : 먼저 떠나?
지도를 보면 감비아는 세네갈을 파먹는 듯한 지렁이 모양의 희한한 나라다.
인구 270만의 작은, 유럽인들이 휴양으로 많이 오는 나라. 세네갈 온 김에 함께 가보고 싶어서 감비아 교민분 통해 급행 비자(120$, 상당히 비싸다) 신청했고, 다행히 생각보다 빨리 발급되어 갈 수 있었다.
다카르에서 감비아 수도 반줄 까지는 육로 이동도 가능한데 한참 돌아가야 되어 시간이 꽤나 걸린다. 그래서 40분 걸리는 비행기를 발권한다. 출발 전날 저녁 세네갈 항공에서 원래 오후 4시 출발인데 7시로 늦춰졌다고 사전 안내 메일이 온다. ‘오~ 나름 국영 항공사라서 이런 것도 해주는구나. 좋아.’ 그러나 여기는 아프리카, 혹시 몰라 공항에 일찍 오후 2시까지 갔다.
카운터에서 비행기 표 받을 때까지도 예정 출발 시각은 7시, 일찍 출입국 관리소 통과하고 라운지 들어가서 맥주 마시며 영화 보고 있었다. 그러다 출발 40분 전에 나와서 비행기를 찾는데 안 보인다.
“어디 갔지? 왜 여기는 찾기만 하면 안 보이는 거지?”
공항직원에게 물어보니 그 비행기는 5시 30분에 떠나버렸고 이미 감비아에 도착했단다.
“이게 뭐냐? 분명히 7시 출발한다고 안내해놓고, 이렇게 우롱하는 거냐?”
“너 귀가 막혔니? 우리는 5시 30분에 출발한다고 몇 번이고 방송했었다”
적반하장으로 쏘아붙인다.
상황을 보아하니 7시 출발하려다가 준비가 일찍 마쳐지니 승객들 모아서 출발해버린 것이다. 나로서는 만약 늦게 출발한다는 사전 메일을 보내지 않았다면 정상적으로 준비해서 갔을 텐데 안내 메일을 받았기에 안심하고 라운지에 머문 것이 화근이었다. 너무나 어이없었지만 이 또한 어찌하리? 별수 없다. 다시 검색대 지나와서 발권 창구에 표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이건 우리 잘못이 아니야, 너 표 다시 사야 돼 ”
40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지만 표는 20만 원 정도로 꽤나 비싼 데다 상황이 너무나 억울해서 계속 얘기했더니 좀 더 나이 든 관리자가 와서 해결해 줄 테니 기다리라고. 하염없는 기다림이 지속된다. 또 미친다. 결국 몇 번을 다시 얘기 한끝에 2일 뒤 출발하는 표를 받았고(다음날 표는 매진), 허탈한 마음에 밤 10시가 넘어서 시내로 다시 돌아오는 상황. 영혼이 유탈 된 것 같다. 감비아 호텔 및 택시 예약 했고, 일정 다 맞춰 놨는데 이렇게 2일이 그냥 날아가다니. 그리고 출입국 관리소 출국 기록은 있으나 나온 기록은 없는데 이건 또 어떡하지? 분명 문제 될 것 같아서 다시 입국 도장 찍어 달라고 했더니 그냥 가라는데 앞서 일련의 일들이 기억나면서 못 미덥다.
7. 출입국 사무소 : 팁은 주고 가야지
그러나 저러나 시간은 간다. 그렇게 2일이 지나서 다시 공항에 왔고 역시나 출입국 관리소에서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너 2일 전 출국 도장 찍었는데 입국 도장이 없다? 내가 상황 봐줄 테니 팁 좀 줘”
그들은 나의 심정을 아는 걸까? 그러나 따져본들 나만 진 빠질 테니 체념하고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아~~ 그래 알았다”
드디어 감비아 가는 비행기 탑승! 마치 쇼생크 탈출하는 심정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방문한 고레(Goree) 섬!
독특한 풍경이 멋졌는데 3세기 동안 약 2,000만 명의 노예들이 가축처럼 길러지다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팔려나간 역사의 현장이 각별했다.
[노예의 집, 저 문을 통해 바다로 나가면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넬슨 만델라가 이 섬에 방문하여 한 얘기가 적혀 있다.
“자유란 단순히 쇠사슬을 끊어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유를 존중하고 향상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나도 아프리카 탈출하여
자유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