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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그래서 무엇이 달라졌는가?

뭐 달라지는 거 있을까?

by 불드로




105개의 나라, 수만 킬로미터의 여정 끝에 나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기분이 어때요? 세상을 다녀보니, 무언가 인생이 달라지던가요?”


40세, 옥상 난간에 섰던 내가 10여 년의 세월 동안 105개의 나라에 발자국을 남겼다. 과연 세상의 끝에서 나는 무엇을 발견했을까?

혹자는 세계여행이 인생의 극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 기대하며 떠나기도 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여행이 끝난다고 해서 어제의 내가 갑자기 새로운 사람으로 변하는 일은 없었다. 거창한 깨달음이나 인생의 비밀을 알아낸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가장 크게 변한 것은, 내 마음속에 ‘추억의 저장고’가 거대하게 확장되었다는 점이다. 이제 세상은 더 이상 뉴스나 다큐멘터리 속의 2차원 평면이 아니다. 아프리카 분쟁 소식에는 세네갈의 흙먼지가, 중남미 경제 위기 뉴스에는 베네수엘라의 무너진 지하철이, K-POP 기사에는 코스타리카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함께 떠오른다. 세상의 모든 파편이 나의 경험과 연결되는, 나만의 3D 지도가 머릿속에 생긴 셈이다.


여행은 내게 ‘행복의 비교 대상’이라는 값을 선물했다. 행복은 상대적인 감정이다. 비교할 ‘상대’가 없다면, 내가 가진 행복의 크기를 가늠하기 어렵다.

쿠웨이트의 50도가 넘는 불가마더위를 겪어봤기에, 대한민국의 여름이 얼마나 쾌적한지 알게 되었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서 생존에 가까운 ‘개고생’을 해봤기에,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잠드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느낀다.

이슬람 율법이 엄격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창살 없는 수도원’ 같은 답답함을 경험해봤기에, 한국에서 소주 한잔 기울일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 혹시 지금 당신의 인생이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나는 사우디아라비아 여행을 진심으로 권한다. 돌아오는 순간, 당신의 모든 일상이 감사함으로 빛나게 될 것이다.


가장 큰 깨달음은 역설적이게도, 세상을 돌아다닐수록 ‘대한민국이 참 살기 좋은 나라’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치안, 상상 초월의 행정 속도, 24시간 잠들지 않는 편의시설, 저렴하고 질 좋은 의료 서비스.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고 있기에 그 가치를 잊고 사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물론, 이 땅에도 어두운 그림자는 존재한다. 그것은 다음 장에서 이야기하려 한다.


가끔은 이런 질문도 받는다. “그래서, 어느 나라가 제일 좋았어요?”

내 대답은 언제나 콜롬비아다. 1년 내내 봄과 같은 날씨, 저렴한 물가, 정열적이고 따뜻한 사람들. 그곳은 내 영혼이 가장 편안하게 머물렀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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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질문에 정답은 없다. 당신의 ‘최애 국가’는 직접 당신의 두 발로 걸으며 찾아내야만 한다. 40개국까지는 안전하고 유명한 나라 위주로, 70개국부터는 조금 낯선 나라로, 90개국을 넘어서면 아주 위험한 나라로. 여행의 난이도는 당신이 정복하는 나라의 숫자와 비례하여 올라간다.


[방글라데시 다카 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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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이 언젠가 꼭 세계여행을 떠나보길 권한다. 당장 떠날 수 없어도 괜찮다. ‘장기 세계여행’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위해 언어를 배우고 돈을 모으는 그 준비의 과정 자체가 당신의 삶을 설렘으로 채워줄 것이다. 나 역시 10여 년 전부터 그 꿈을 꾸며 하루하루를 채워왔고, 마침내 주변의 수많은 얽힘과 반대를 무릅쓰고 떠났다.


돌아온 지금, 나는 ‘105개국 방문’이라는 목표 달성의 뿌듯함과 자아실현의 행복감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충만함이 앞으로의 내 삶을 더욱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나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 목적지는 드라마의 배경이 된 수리남, 카리브해의 작은 섬들, 그리고 남극과 북극이다. 그렇게 길 위를 걷다 보면, 60세 즈음에는 200개국이라는 모든 도장을 다 찍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내 인생이라는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남극, 불드로를 기다리는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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