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 올리비에 샐러드, 샴페인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과일 코너에 귤이 등장하더니, 12월의 슈퍼마켓은 주황색 귤로 산을 이뤘다. 크기도 원산지도 다른 귤들의 향연이다.
“귤마다 잎사귀가 다 달린 것도 있어!”
“저 귤이 맛있을 거야. 만다린 스 리스톰.(잎사귀 달린 귤. 복수는 만다린늬 스 리스토치카미) 더 신선하고 맛있어.”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던 잎사귀가 달린 귤은 매력적이었다. 봉지 가득 귤을 담아 무게를 쟀다. 어린 시절 엄마가 주던 귤 바구니처럼, 모스크바 우리 집의 식탁에도 나무 바구니에 귤을 가득 담았다. 12월 31일이 되면 러시아의 각 가정 식탁에도 귤이 빠지지 않는다. 이 곳에서 귤은 새해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인의 새해맞이에는 올리비에 샐러드, 만다린(귤), 샴페인이 필수예요.”
각 나라의 새해맞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 러시아인 선생님은 러시아의 새해에 대해 설명했다.
“12시가 되면 크렘린의 스파스카야 탑 시계종이 울려요. 그전에 텔레비전에서 푸틴 대통령 연설이 있죠. 여러분도 12월 31일 모스크바에 있다면 텔레비전을 켜서 한번 들어봐요.”
“푸틴 대통령의 연설은 생방송이에요?”
“아니죠. 러시아에는 11개의 시간대가 있잖아요. 미리 녹화하여 각 지역의 새해 10분 전에 방송을 한답니다.”
텔레비전에서 대통령의 새해 덕담이 끝나면, 한국의 보신각 제야의 종처럼,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있는 스파스카야 탑의 시계종이 울리며 새해가 시작된다. 거리의 사람들은 샴페인을 터뜨리고 광장 곳곳에서 불꽃놀이가 새벽까지 이어진다. 다음 날부터 휴일이다. 매해 러시아 정교회 달력으로 크리스마스 (1월 7일) 다음 날 (1월 8일)까지 러시아의 가장 긴 연휴다. 이때 사람들은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2021년의 새해 연휴는 1월 1일부터 1월 10일까지다. 오랜만에 길고 긴 연휴지만 코로나로 인하여 어디에도 갈 수 없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집에 있는 러시아인들의 부엌은 바빠진다. 손님을 초대하거나, 가족끼리 모여서 맛있는 음식으로 식탁을 차린다. 꼭 빠지면 안 되는 음식은 ‘올리비에 샐러드’ 다. 삶은 감자와 채소, 햄, 마요네즈를 버무려서 만든 샐러드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맛이다. 이 샐러드는 1860년 모스크바 레스토랑의 주방장 루시엔 올리비에의 이름을 땄다. 올리비에 샐러드와 함께 빠지지 않는 ‘만다린(귤)’. 왜 귤이 새해의 상징이 되었을까. 오랫동안 러시아에서 산 남편에게 물었다.
“어떻게 귤이 새해의 상징이 되었지?”
“지금은 흔하지만 예전엔 새해가 되면 먹을 수 있는 과일이 귤이었어. 저렴하고, 겨울에 맛이 제일 좋으니까.”
나 또한, 어린 시절 엄마가 주문한 귤 한 박스에 겨울이 시작되었구나 생각했다. 손바닥이 노랗게 되도록 까먹는 귤은 언제나 맛있다. 껍질을 까면 여러 알이 모여 있는 귤. 한 알을 받아도 누군가와 나눠먹을 수 있는 과일. 단단한 껍질이 있어 안심할 수 있기에 호주머니에 넣기도 편했다. 한 두 개씩 담아 교실에서 까먹는 귤은 최고의 겨울 디저트였다. 겨울이 긴 러시아에서도 귤은 환영받는 과일이다.
“러시아인에게 새해는 특별해. 새해를 어떻게 맞느냐에 따라 그 해가 그렇게 될 것이다 (Как Новый год встретишь, так его и проведешь) 고 믿거든. 자. 네게 주려고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작고 귀여운 만다린을 가져왔어. 시장에서 산 거야.”
러시아인 친구가 정성스레 쓴 카드와 작은 귤을 건넸다. 코로나로 모두 힘들었던 한 해였다. 잃어버린 것 같은 시간이었지만, 올해도 무사히 사계절을 잘 보낸 귤이 지금 내 손에 놓여있다. 내년에는 내가 아는 모든 이에게 행복하고 건강한 기운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 밤 식탁의 귤 하나를 짚는다.
스 노븸 고돔 ! (해피 뉴 이어!) 모두 모두 행복하고 건강한 2021년 새해 맞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