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10월’ - 러시아의 대표 초콜릿
몇 번을 반복해도 이별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짧게 반년에서 1년간 모스크바에서 공부를 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한국에서 온 교환학생들이다. 반년 동안 함께 했던 S는 다음 주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떠나기 전에 가보고 싶은 데 있어?”
“언니, 저 초콜릿 공장 가보고 싶어요. 같이 가줄 수 있어요?”
“좋아, 그럼 남편에게 부탁해서 알아볼게.”
남편의 도움을 받아 ‘초콜릿 공장’ 가이드 투어의 티켓을 샀다. 우리가 원한 건 초콜릿을 직접 만들어보는 것이었지만, 이는 단체 예약으로 가능한 프로그램이라 개인이 갈 수는 없었다. 대신 모스크바 강 저편으로 늘 보이던 빨간 벽돌 건물 <크라스니 악짜블(붉은 10월)>을 찾았다.
<크라스니 악짜블 : 붉은 10월> 은 1851년에 창립한 러시아의 가장 오래된 제과업체다. 한국의 올리브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여자아이가 그려진 초콜릿 ‘알룐카’를 비롯, 러시아인들이 많이 사는 초콜릿의 대부분이 이 회사의 제품이다. 슈퍼에서 어떤 초콜릿을 골라야 할지 모를 때, <크라스니 악짜블>의 로고가 있는 제품을 고르면 맛은 성공이다. 학교의 나탈랴 선생님은 말했다.
“러시아인에게 초콜릿은 ‘행복’과 가까워요. 소비에트 시절에도 정책적으로 초콜릿은 대중화되었죠. 달콤한 초콜릿을 먹으며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줬지요.”
러시아인의 일상에 초콜릿은 빠지지 않는다. 밸런타인데이,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자연스레 초콜릿을 주고받는다. 모스크바의 알룐카 매장에는 이 회사의 다양한 초콜릿이 통에 담겨있고, 원하는 만큼 비닐봉지에 담아 무게별로 살 수 있다. 가게는 늘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로 붐볐다.
“언니, 외국인은 우리 둘 뿐이에요.”
“다들 러시아인들이네. 선생님처럼 천천히 말해주지 않을 것 같은데. 어쩌지?”
“그래도 저희에게 질문은 안 하겠죠. 흐흐.”
12월 중순의 아침 날씨는 쌀쌀했다. 건물 입구에 모인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이드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커다란 간판이 달린 메인 건물 외에도, 안은 미로처럼 다른 건물들이 많았고,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기도 했다.
“지금은 이 곳에서 제조를 하지 않아요. 하지만 예전엔 이 곳에 제조시설 외에 근로자들의 아이들을 위한 학교, 기숙사, 식당, 차고 등의 건물이 있었어요. 지금은 광고회사, 디자인 그룹 등 다양한 회사들이 사용하고 있죠.”
<크라스니 악짜블>의 처음 이름은 <에이넴>이었다. 창시자의 이름으로, 그는 처음 아르밧(모스크바의 거리 이름)에서 개인샵을 열었고 이때 황실에 납품할 수 있는 기술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1917년 공장은 국유화가 되면서 ‘1번 공장’ 이 되었고, 그 해 10월 혁명 때 부상한 군인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의 업적으로 인하여 1922년에 지금의 이름 <크라스니 악짜블-붉은 10월>이 되었다.
“1931년 중반에 5,000명의 직원이 일했어요. 당시 가장 큰 제과공장이었죠. 이 공장은 전쟁 중에도 쉬지 않았어요. 군인들을 위해 카페인이 높은 초콜릿, 콜라를 만들어야 했거든요. 자, 이제 마지막으로 옥상에 올라가 볼까요?”
좁은 통로를 지나 계단을 통해 작은 방에 들어갔다. 그곳엔 시간의 흔적이 남은 기계가 있었다. 이 곳에 유일하게 남겨둔 당시 초콜릿을 만드는 기계라고 했다. 철문을 열었더니 옥상이 나왔다. 시원하게 뚫린 모스크바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닥 곳곳에 하얀 흔적들이 있었다. 예술가와 콜라보하여, 위에서 보면 멋진 그림처럼 표현했다고 한다. 가이드가 건넨 초콜릿을 입에 넣었다. 한 입 가득 퍼진 달콤함에, 속사포 러시아어 설명을 듣느라 긴장했던 몸과 마음도 함께 녹아내렸다. 옛날 공장의 노동자들도 이 곳에서 있었겠지?. 쉬는 시간 옥상에서 잠시 숨을 돌리며, 달콤한 행복을 맛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