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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Mar 03. 2021

맛남의 세계

내가 만난 이들과 함께 나눈 맛을 씁니다.

모스크바 우리 집, 조리대이자 식탁인 작은 아일랜드식 탁자엔 자주 친구들이 둘러앉는다. 다양한 국적의 이들을 위해 김밥을 말고, 부대찌개를 올리고, 티라미수를 만든다. 따뜻한 한 끼를 나누면, 쓸쓸하고 불안한 마음이 옅어졌다. 함께 나눈 음식, 함께 마신 차는 무엇이든 맛있다. 오래전 만난 이의 목소리는 기억나지 않아도 함께 먹고 마신 장면이 남아있다.


슈퍼에 가면 기억이 또렷해진다. 매대에 진열된 양배추를 보며 아프리카에서 만난 동료를, 다양한 찻잎을 담고 나란히 놓인 틴 박스에서 아침에 짜이를 끓이던 인도인 친구가 떠오른다. 지금 내 곁에 없는 사람들. 하지만 매일 식사를 준비하며 우연히 찾은 식당에서 내 마음 한편 비어있던 의자에 그들이 앉는다. 그리고 내게 말을 건다. 내 안에 쌓인 그리움의 단상들을 꺼내보려고 한다. 나의 세상을 넓혀준 나의 맛남의 세계.  그 안에서 다시 한번 만나고 싶은 이를, 그들과 함께 나눈 맛을 마음껏 그리워하고 싶다.


우리 집 식탁에서 티라미수를 나누던 밤,  Moscow, Rus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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