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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Mar 03. 2021

먹을 수 없는 슬픔도 있으니까요

인도 바라나시  <청포도>

껍질 채 먹는 청포도를 맛본 건 인도에서였다. 20대 초반의 겨울, 방학을 맞아 또래 대학생들과 함께 거리의 아이들을 돕는 자원봉사를 했다. 바라나시는 모든 일정을 마치고 귀국 전 마지막으로 들른 도시였다. 인도인들이 강가라 부르는 갠지스강은 빨래를 하고, 몸을 씻는 사람들, 시신을 화장을 하는 이들로 매캐한 연기가 자욱했다. 북적대는 인파를 뚫고 지나가는데 긴장이 됐다. 그 때 한 아이가 내 앞으로 다가와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보리수. 천원. 싸다.”      


아이의 손엔 작은 잎사귀가 들려 있었다. 보리수 나무인지 알 수 없지만, 빳빳하게 풀을 먹인 듯한 잎사귀가 보였다. ‘책갈피로 쓰는 걸까?’ 용도를 잘 알지 못한 우리가 머뭇거리자, 아이는 갠지스강이 그려진 엽서를 들이댔다.

      

“엽서. 천원. 싸다.”      


아이는 그 문장만 한국어로 연습했겠지. 아이로 인해 잠시 길에 멈췄던 나는 밀치고 지나가려는 사람들로 인해 지갑을 열지도 못한 채, 자연스레 아이와 헤어지고 말았다. 수많은 인파에 치여서 이 장소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갠지스강을 벗어나, 거리로 들어서니 리어카 과일상이 보였다. 반가운 연둣빛의 청포도. 인도의 과일은 한국보다 저렴했고 겨울의 청포도는 무척 달았다. ‘내일이면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니, 이 청포도도 오늘이 마지막이겠구나.’ 포도를 담은 비닐봉지를 안고 릭샤에 올랐다. 포도 한 알을 떼어 손으로 닦아 입에 넣으며 옆에 앉은 후배에게 말했다. 

     

“세상에 이렇게 달콤한 포도가 있다니,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해.” 

“반면에 먹을 수 없는 슬픔도 있으니까요.”      


쿵, 마음이 내려 앉았다. 후배의 눈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보리수 잎사귀를 건네던 아이를, 신발 없이 거리를 걷던 소녀를, 퀭한 눈으로 젖먹이를 안고 있던 엄마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던 나는 그 거리를 벗어나며 까맣게 잊어버렸다. 어떤 이는 얼마든지 맛볼 수 있는 달콤함을 모르는 이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세상에 먹을 수 있는 기쁨이 있다면, 한쪽엔 먹을 수 없는 슬픔이 존재한다. 내게 주어진 당연한 것들은 모든 이가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모스크바의 슈퍼에도 인도의 포도처럼 껍질 채 먹을 수 있는 씨없는 포도가 있다. ‘кишми́ш 끼쉬미쉬’라고 쓰인 포도는 당도가 높고 씨가 없다. 사전을 보니 건포도의 일종이라고 했다. 십여년이 지났지만 그 포도를 씻으며 생각한다. 내가 쉽게 맛보는 달콤함을 알 기회조차 없는 이도 세상에 있다는 걸 잊지 않으며 살아야지.   

         


청포도 _ Varanasi, In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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