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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Mar 08. 2021

우정을 위하여, 1인 1 모닝글로리

태국 방콕 | 모닝글로리, 공심채 볶음


지금은 다양한 브랜드 사이 선택의 어려움이 있지만, 어렸을 땐 ‘모닝 글로리’에서 나온 문구류를 좋아했다. 친정집에서 본 추억상자에서 친구가 보낸 엽서 하단에 그려진 검은색의 나팔꽃을 보며 마음이 간질간질 해졌다. 친구의 생일 파티에 필통, 연필, 지우개가 든 문구 세트를 선물로 들고 가던 기억, 열쇠가 달린 교환일기도 모닝글로리, 나팔꽃이 그려져 있었다. 내겐 문구 브랜드로 있던 그 이름이 다른 의미가 된 건 태국 방콕에 갔을 때다.

일 년간 인도에서 지낸 후 한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저렴한 항공권이라 귀국길은 델리-카트만두-방콕 경유였다. 네팔의 카트만두 공항에서 노숙하며 ‘한국에 가면 무엇이 먹고 싶은지’ 이야기하던 우리는 새벽에 방콕행 비행기를 탔다. 방콕은 무비자 체류가 가능했기에 2박 3일을 보내기로 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천국을 경험했다. 전기가 끊기지 않고, 따뜻한 물이 펑펑 나오는, 어딜 가나 시원한 에어컨의 세상이 있다니! 인도에서 보낸 일 년은 우리에게 잊고 있던 일상의 ‘감사’를 되찾게 해 줬다. 그뿐이 아니다. 어디를 가나 입맛에 꼭 맞는 음식 덕분에 마음과 볼에 살이 오르고 있었다.

“저거 시금치인가 봐. 시금치 같이 생겼어”
“오, 그럼 볶음밥이랑 저것도 주문하자.”

식당의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을 때, 우리는 옆 테이블에 있던 초록 나물을 가리켰다. 마침내 꼬슬 꼬슬한 볶음밥과 초록 나물이 우리 앞에 놓였다. 자세히 보니 한국의 시금치나물과 생김새가 달랐다. 색도, 향도, 소스(당시만 해도 굴소스가 아닌 간장이라 생각한) 버무린 초록 나물. 한국에선 엄마가 줘도 잘 손이 안 가던 나물에 바로 젓가락이 갔다.


“헉, 이거 뭐지? 시금치 아니야. 너무 맛있어.”

“짭조름 한데 부드럽고 맛있다. 가운데가 뚫려 있는데?”

나중에야 우리는 초록 나물의 정체가 ‘모닝글로리’, 공심채 란 걸 알았다. 처음 그 이름을 듣고 어찌나 놀랐던지, 모닝글로리라는 개성이 다른, 동명이인의 친구가 두 명 생긴 기분이었다. 사전에서 공심채라는 식물을 찾았다. ‘잎채소로 자라는 열대 식물, 나팔꽃 속과’라고 쓰여있다. 그래서 모닝글로리(나팔꽃의 영어 이름)이라고 했구나. 공심채의 꽃은 나팔꽃을 닮았다. 아침에 피는 나팔꽃의 특징 때문일까? 일본에서는 아사가오(아침 얼굴)라는 별명도 있다. 예쁜 이름이다. 그 후 동남아시아 여행을 가면 가장 먼저 부르는 이름이 됐다. 그리고 함께 여행 온 친구와 나사이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무조건 1인 1 모닝글로리, 한 접시를 주문하여 같이 나누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우정을 지키며 함께 하는 여행의 평화를 위해서다.


Bangkok, Thailand _ 모닝글로리, 공심채 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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