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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Mar 10. 2021

두 이방인의 한 끼

일본 도쿄 | 규동과 미소시루


도쿄의 겨울은 매서웠다. 설상가상으로 도쿄에서 직장을 다니던 동생이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면서, 홀로 도쿄에서 지내게 됐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았으니 어서 일을 구해야 했다. 커피숍에서 일하면 어떨까, 스타벅스 면접을 봤지만, 일본어 말하기가 능숙하지 않은 1년짜리 비자를 가진 이에겐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어렵겠어요. 커스텀 메뉴가 많은데 이 일이 익숙해지려면 1년은 걸리거든요. 유학비자도 아니고, 기간이 짧은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미안합니다. 스미마셍.”

반복하여 듣는 스미마셍에 지쳐버렸다. 몇 번의 면접을 겪으며 난감한 표정에서 먼저 스미마셍의 기운을 감지하게 됐다. 버는 돈은 없이 쓰기만 하니, 심지어 엔화는 1700원으로 급등한 때라 통장의 돈은 점점 사라졌다. 일단 집 근처의 아르바이트를 찾기로 했다. 그렇게 찾은 첫 번째 아르바이트는 미타카 역 앞 KFC 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호를 만났다. 일본인과 결혼하여 쿠도란 성, 일본 이름 마호를 쓴 그녀는 태국인이었다. 마호짱은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 여행차 한국을 자주 오가고, 조미김을 좋아했던 그녀는 내가 가자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언니. 나는 마호입니다. 태국인이에요. 반가워요.”
“어머, 저도 만나서 반가워요.”

그 나라의 이방인인 우리는 그 매장의 풀타임 근무자였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 때론 밤 10시까지 일을 했다. 점장 다음으로 가장 많이 주문을 받거나, 치킨을 튀기거나, 테이블을 닦았다. 처음으로 하는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는 쉽지 않았다. 평소엔 잘 쓰지 않는 겸양어는 낯설었고 발음 나는 대로 한국어로 수첩에 써서 주문을 받곤 했다. 늘 긴장된 상태로 출근하는 내게 마호짱은 한국어로 물었다.


"언니, 밥 먹었어?"

끼니를 챙겨 주는 따스한 말을 외국인 친구에게 듣게 되다니, 그 말에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우리는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자주 늦은 저녁을 먹었다. 햄버거와 치킨은 우리에게 밥이 아니었다. 그녀는 나를 근처 24시간 규동 전문점 <요시노야>로 데려갔다. 얇게 썰린 쇠고기를 쯔유에 졸인 달짝 지근한 덮밥, <규동> 온천 계란을 하나 추가하고, 분홍색의 생강을 살짝 얹어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었다. 일렬로 나란히 앉은 두 이방인은 수저를 쓰지 않고 양손으로 국그릇을 잡고 호로록 - 미소시루를 마셨다. 서로의 곁을 지키며 마호짱과 함께 먹은 한 끼의 규동, 따뜻한 미소시루 덕분에 그 해 도쿄의 겨울은 점점 따뜻해져 갔다.


Tokyo, Japan _ 우리가 함께 한 한 끼, 규동과 미소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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