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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May 31. 2021

기차의 모닝 짜이

인토 콜카타 <짜이>

기차는 또 멈췄다.


“출발한 지 몇 시간 됐지?”

“3시간쯤 된 거 같은데, 얼마나 남았어?


콜카타에서 델리로 가는 길, 이미 연착되어 출발한 기차는 종종 멈췄다. 기차역도 아닌 너른 벌판 한 복판, 어디쯤 왔는지 알 수 없고 기차표에 적힌 도착시간은 무의미해졌다. 1월의 인도는 낮엔 햇살이 있어 한국의 가을 날씨 같았지만, 밤이면 조금 쌀쌀했다. 우리가 탄 에어컨 없는 침대열차 안의 인도인들은 너도 나도 숄을 둘러쓰고 잠이 들었다. 3칸씩 서로 마주 보는 침대칸, 맨 꼭대기를 빼고 아래 두 침대는 낮엔 접어서 등받이와 의자가 되어 세명씩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다. 친구와 나는 맨 위 침대칸에 나란히 누워서 팔을 피면 손이 닿는 천장의 선풍기를 봤다.


“여름엔 작동하겠지? 먼지가 꽤 묻어있어.”


눕기 전에 물티슈로 침대 바닥을 닦고 후회했다. 물티슈가 지난 곳과 아닌 부분의 경계가 분명히 보였고, 희망찬 마음으로 닦아도 닦아도 묵은 때는 계속 나왔다. 포기한 우리는 나란히 침낭을 펼쳐서 그 안으로 쏙 들어갔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도 나도 집을 떠나 해외에서 이토록 오래 머무는 건 처음이었다. 밤새 기차는 천천히 달리고, 멈추고, 다시 또 달렸다.


코 끝에 훅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에 눈을 뜨니 아침이다. “짜이 짜이”라는 소리가 알람처럼 들렸다. 잠시 멈춘 기차 안으로 신문과 간식을 파는 이들이 돌아다닌다. 차곡차곡 쌓은 흙잔과 짜이가 담긴 큰 주전자를 든 이가 보였다. 우리는 그에게 모닝 짜이를 주문했다. 기차의 짜이는 특별하다. 유리잔이 아닌 붉은색의 흙잔에 짜이를 담아준다. 작은 토기에 담긴 따뜻하고 향긋한 짜이의 색이 예뻤다. 따뜻한 온기가 손끝에 전해진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짜이를 마신 후, 잔은 바로 창밖으로 던져 버린다. 인도의 흙은 우리에게 짜이 한 잔을 담아 건네고, 다시 또 흙으로 돌아간다.


기차는 천천히 다시 출발했다. 도착 예정 시간은 이미 훌쩍 지났다. 도대체 언제, 왜라는 조급하고 궁금한 마음을 비우면 인도와 친구가 될 수 있다. 선로를 이탈하지 않는 한 우리가 탄 기차는 반드시 목적지에 다다를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또 다음 아침도 기차에서 맞는다면, 흙 잔에 담긴 모닝 짜이 한 잔 마시지 뭐, 노 쁘라 블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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