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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Aug 15. 2021

보이지 않게 자란다

치과 다녀 오는 길

치아 교정을 시작했다. 반듯했던 아랫니 하나가 안으로 들어갔다는 걸 눈치챈 건 5년 전이었다. 교정에 대한 상담을 받고, 엑스레이와 본도 떴었지만 결혼 후 해외로 가게 되면서 치아 교정은 나와 먼 이야기가 되었다.

    

"너 치아교정을 해야겠다. 발음이 좀 이상한 거 같아."

"에이, 이게 무슨 발음에 영향을 준다고."  

"아니야. 엄마가 보기엔 그래. 한국에 있을 때 하는 게 좋겠어."      


커피를 마시며 내 얼굴을 뚫어져라 보던 엄마의 시선은 나의 뒤틀린 아랫니에 오래 머물렀다. 5년 전, 이빨이 조금씩 들어가는 걸 눈치챈 것도 엄마였다. 당시 그녀는 내게 "생각날 때마다 혀로 아랫니를 앞으로 밀어줘."라고 했지만, 나는 그저 웃었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안으로 들어오는 치아 하나는 한국에서 스케일링을 받을 때마다 문제가 됐다.      


"양치질을 꼼꼼하게 해 주셔야 해요. 특히 안쪽으로 들어간 이 치아 하나 주위로 치석이 많이 끼거든요."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웃은 사진에서 안으로 들어온 치아 하나가 유독 눈에 띄었다. 계속 관심을 받은 치아는 이제, 나의 시선과 마음에도 조금씩 거슬리게 되었다. 치과를 꾸준히 올 수도 없는데, 큰 불편함도 없는데, 굳이. 해야 하나. 하지만 만날 때마다 내 입에 멈추는 엄마의 시선을 거두는 길은, 일단 교정에 대한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다. 마침 한국에 길게 머물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 치아 교정을 시작했다.


© diana_pole, 출처 Unsplash


치과에서 말한 교정 기간은 7월부터 내년 1월까지였다. 분홍색의 물컹하고 차가운 질감의 덩어리를 꼭 깨물어 본을 떴고, 발치 없이 뒤로 들어간 치아를 제자리로 돌리기 위해 치아 사이의 미세한 틈을 만들었다. 2주 후 원하는 위치를 갖춘 치아모형의 투명교정장치를 위아래로 꼭 끼웠다.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었다.  

    

"2주마다 와서 본을 뜨고, 새로운 교정장치를 받게 될 거예요."

"조금씩 움직이는 건가요?"

"네, 그래서 처음엔 많이 아프죠. 다 낀 후 이걸 꼭꼭 씹어주시고요."  


그녀가 건넨 건 작은 수수깡처럼 생긴 ‘츄위’였다. 투명 교정장치를 낀 후 공간을 닫아주기 위한 역할을 한다고 했다. 장치를 낀 채로 한쪽에서 다른 쪽 치아까지 계속 씹어주는데, 어렸을 때 먹었던 덴버가 그려진 풍선껌 향이 났다.      


하루에 20시간 이상 껴야 한다는 이 투명교정은 무엇보다 환자의 협조가 중요하다. 음식을 먹는 시간 외엔 잠을 잘 때도 계속 교정장치를 끼고 있다. 먹기 위해 교정장치를 빼면 온 치아가 흔들리는 기분이 들었다. 더웠던 어느 날, 냉면을 주문했다. 아무래도 밥보다는 먹기 편할 것 같아 선택했는데, 아뿔싸. 치아 사이사이 틈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얇은 면은 자구 치아 사이로 들어갔고, 끊어 내는 것이 불가능하니 자꾸 어금니 쪽으로 면을 보내며 고개를 기웃거렸다. 휴- 집이라 다행이지. 면 하나를 끊어내지 못하는 내 모습에 웃음이 났다. 교정을 하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못했고, 알지도 못했을 어려움이었다.      


잊을 수 없던 그 날의 냉면

교정장치를 잠시 뺄 때마다 수시로 아랫니를 보았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일주일 사이 바뀔 순 없지. 근데 시간이 지나면 정말 바뀌긴 하는 건가. 3주 후, 첫 교정장치를 바꾸러 치과에 갔더니 선생님 눈엔 작은 변화가 보이나 보다.      


"잘 끼고 계셨네요. 조금씩 움직이고 있어요."

"많이 아팠는데 지금은 좀 나아졌어요."

"처음엔 스트레스받는 치아도 나중에 편해졌다는 건 그만큼 잘 이동했다는 거예요."      


선생님의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됐다. 치아 전체를 감싸는 교정장치가 처음엔 낯선 옷을 입은 듯 불편하기만 했는데, 지금은 하지 않으면 벌거벗은 듯 불안한 마음이 든다. 새로운 교정 장치를 낄 때 뻑뻑하고 아픈 통증이 조금씩 익숙해졌다. 편해지는 때가 오면 나도 모르게 제 자리를 찾아가느라 노력중인 치아들이 기특하기도 하다.      


연어의 마음으로- 


치과를 다녀오는 길, 나도 모르게 자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매일 눈치채지 못해도 자라는 것이 있다. 특히 타인보다 내 안의 변화와 성장이 그렇다. 어느 순간 부쩍 자란 손톱과 발톱, 단발이었다가 언제 어깨 아래까지 자랐나 싶은 머리카락. 내 안에 있기에 알 수 없는 매일의 기특한 자람. 하얀 통을 열어 보라색의 츄위를 꺼내 잘근잘근 씹어준다. 위치가 틀어진 치아 쪽은 여전히 통증이 느껴진다. 변화를 위한 통증이겠지. 나도 모르게 조금씩 이동하고, 제 자리를 찾아가는, 보이지 않게 자라는 어떤 것들. 눈치 챌 수 없는 그들을 향해, 스스로에게 좀 더 다정해지고 싶은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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