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목욕탕
매주 수요일 밤이면 알람을 여러 번 맞춘다. 새벽 5시부터 5분 단위로 설정하는 알람의 마지막은 5시 25분을 가리킨다. 목요일 오전 5시 반에는 ‘영목탕’의 문을 열어야 하니까, 이른 아침 영혼의 목욕탕을 찾는 이들은 나의 오랜 친구들이다.
“우리 온라인에서라도 꾸준히 만나면 좋겠어.”
십여 년 만에 연락이 닿은 B를 만난 날, 그녀가 그 이야기를 먼저 꺼내서 기뻤다. 한국에 올 때마다 만나는 A를 통해 ‘B가 너 보고 싶어 해.’라는 말을 들었지만, 선뜻 연락하기 어려웠다. 아이들의 시계에 맞춰 살아가는 바쁜 엄마가 되어버린 친구들과 시간을 맞추기도 힘들었다. 어렵사리 만나게 된 우리 셋은 서로 만나지 못했던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반갑고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나는 너무 좋지. 온라인이면 모스크바에서도 만날 수 있으니까.”
“새벽에 어때, 아이들이 자고 있을 때면 편할 거 같아.”
“목욕탕 같은 만남이 필요해. 훌훌 벗어도 서로 부끄럽지 않고 안전한 사이 말이야.”
목욕탕 같은 만남이라니, B의 말에 A도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떠한 이야기를 해도 밤에 이불 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 이 말을 꺼내도 될까, 긴장하지 않아도 괜찮은, 침묵도 어색하지 않은 관계. 깊이와 농도가 다른 친밀하고 안전한 관계를 우리는 서로 갈망하고 있었다.
영목탕에 갈 때는 책을 한 권 챙긴다. 세바시의 인생 질문 1권 ‘나는 누구인가’였다. 30여 개의 질문으로 구성된 내용은 각 챕터당 대표 질문, 그 질문과 연관된 세부 질문들과 답할 수 있는 빈 공간, 한 페이지의 읽을거리, 관련된 세바시 영상(QR코드)이 있다. 우리는 한 주에 하나의 질문에 대해 나누기로 했다. 생각만 하는 것과 손 끝으로 적는 건 다른 행위라서, 모임 전 주렁주렁 답변을 달면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도 되었다. 같은 질문에 대해 친구들의 생각을 들으며, 삶을 대하는 다양한 태도에 대해 깨닫게 된다.
처음엔 이 온라인 모임이 괜찮을까 걱정도 했다. 사이버대학원에 입학하면서 갑작스레 많은 이들을 온라인(줌)으로 만났고, 오프라인과 달리 발언권을 얻어야 하는(!) 과정이 꽤 고통스러웠다. 내 얼굴을 그렇게 오랫동안 보는 것도, 많은 이들의 눈이 나를 향하는 것도 공포스러웠다고 할까. 말을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였다. 하지만 영목탕에 처음 다녀온 날 깨달았다. ‘아, 나는 정말 만남이 그리웠구나. 이렇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이가, 눈물을 보여도 괜찮은 따뜻한 온탕 같은 이들이 그리웠다는 걸.’ 결국 온오프의 차이가 아닌 내 마음을 털어놓아도 안전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중요했다.
“오늘 아침 영목탕 다녀왔더니 몸이 가뿐함”
“나도 아침부터 개운하다.”
90여분의 모임이 끝나고 아침이 시작될 때 도착한 친구들의 문자에 빙그레 웃었다. 영목탕, 이름 한번 잘 지었단 말이야. 우리는 내일 새벽에도 함께 따뜻한 시간의 물에 몸과 마음을 담글 것이다. 한 주간 마음에 끼어있는 묵은 때를 불리고, 손이 닿지 않는 부위는 서로 긁어주기도 하면서, 여전히 반짝이는 서로를 발견하고 말해준다. 목요일 새벽에 반짝 열리는 우리의 영목탕, 내일도 정시에 오픈하려면 오늘 밤 일찍 잠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