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기다리는 시간
모스크바로 돌아와 임신을 확인했다. 이곳 산부인과에 대한 첫 경험은 썩 좋지 않다. 굴욕 의자(!) 없이 펼쳐져 있는 침대, 하반신을 가리는 치마가 주어지지 않는 탈의, 다소 무뚝뚝한 의사의 진료는, 그렇지 않아도 늘 긴장될 수밖에 없는 산부인과의 문턱을 높이는 요소였다.
"한 달만 좀 더 기다렸다가 갈래. 그래도 괜찮겠지?"
임신 테스트기의 두 줄이 선명했지만, 병원에 가는 날을 좀 더 미루기로 했다. 산부인과에 대한 염려도 있었지만, 한 번의 자연유산 경험에 망설여졌다. 생명이 찾아왔다는 기쁨보다 잘 지켜낼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컸다. 한 달이 지나 찾은 병원에서 화질이 좋지 않은 초음파에서 처음으로 아이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매번 떨리는 마음으로 찾는 병원, 무탈하게 조금씩 자라는 생명을 보며 안심이 됐다.
폭풍과 같은 입덧의 시기를 통과하고, 어느덧 임신 중기가 되었다. 그날은 공복에 피검사가 있는 날이었다. 임신을 하면 피를 이렇게 자주 뽑는지 이전에 미처 몰랐다. 피를 뽑고 아침을 먹기 위해 좋아하는 카페에 들렀다.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하늘, 맑은 공기, 피검사 숙제를 끝낸 후라 기분이 좋았다. 통유리로 되어 있는 자리에 앉아, 샌드위치와 아이스라테를 먹으며 일기도 쓰고, 책도 읽었다. 따사롭던 햇살이 뜨겁게 느껴져서 자리를 옮기려고 일어선 찰나, 갑자기 눈앞이 하얗게 되었다. 어지럽고 현기증이 났다. 그 자리에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무서웠다. 여기서 내가 쓰러진다면 어떻게 될까. 가방엔 나를 증명할 여권도 없고, 외국인이라 산모수첩도 없을뿐더러, 남편이 바로 온다 해도 2시간은 걸리고, 나를 도와줄 이는 아무도 없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간신히 카운터로 향했다.
"혹시 물 한 잔을 받을 수 있을까요?"
하얗게 사색이 된 내 얼굴을 본 직원이 종이컵에 물 한 잔을 건넸다. 물 한 잔을 마시고 숨을 돌린 후, 바로 집까지 가는 택시를 불렀다. 20여분 후 안전하게 집에 도착했다. 바로 침대에 누웠다. 조금씩 움직이는 아이의 태동을 느낀 후에야 안심이 되었다. 그날 이후, 홀로 멀리 가는 게 무서워졌다. 혼자라면 쓰러져도 어떻게든 되겠지 싶지만, 뱃속의 아이를 품고 있으니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명을 품는다는 건 그런 것일까. 불과 몇 초 후 나의 컨디션이 어떨지 알 수 없고, 내가 내 몸을 조절할 수 있다고 믿었던 스스로가 어리석게 느껴졌다. 아주 조금씩, 이제야 인생은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 많다는 걸, 순리대로 흘러가는 대로 맡겨야 한다는 걸 알아차린다.
30주에 카타르 도하를 경유하여 한국에 왔다.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러시아와 한국을 바로 오가는 하늘길은 막혔고, 러시아 영공을 오가는 항공편은 줄었다. 두 번의 비행기를 타고 돌아온 고국, 말이 통하는 산부인과에서 아이의 존재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하루가 다르게 무거워지는 몸만큼 아이를 만날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두렵고 설레는 감정이 교차한다.
주말 내내 목이 간질간질했다. 열은 없었지만 오한이 들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친정에서 유일하게 코로나 무경험자로 버텨왔는데, 혹시 코로나가 아닐까 무서웠다. 휴대폰으로 '임산부 코로나'를 얼마나 검색해 보았는지, 나와 같은 32주에 코로나에 걸린 임산부, 심지어 제왕절개 날짜를 잡고 코로나에 걸린 임산부도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자가진단키트로 검사를 해보았다. 희미하게라도 두 줄이 뜨길 바라던 임신 테스트기와 달리, 이번엔 한 줄만 뜨기를 간절히 바란다. 다행히도 한 줄이다. 원인은 임신 후기로 접어들며 심해진 비염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한국의 여름 더위와 습도가 낯설었고, 임신 호르몬의 영향으로 심해진 비염 탓에 음식의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간혹 기침을 할 때면 갈비뼈가 아팠다. 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출산'이라고 한다. 이 경험도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이겠지. 부디 아이를 직접 만나는 날까지 무탈하고 안전하게 시간이 흐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