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을 앞둔 마음
아이는 끝내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2주 전과 달라진 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왔을 뿐, 여전히 머리는 위에 다리는 아래에 있는 역아로 37주를 맞이했다. 초음파를 본 선생님은 말했다.
"지금까지 바꾸지 않았다면, 끝까지 이대로 일 확률이 높아요."
"네. 괜찮은 걸까요?"
"수술해야죠. 아래로 향한다 해도 머리가 커서 수술을 해야 할 거 같아요."
보름이(태명)의 출산일이 정해졌다. 자연분만이 아닌 제왕절개의 경우 40주를 다 채우지 않고 38주-39주에 수술 날짜를 잡는다. 일주일의 휴가를 얻는 남편의 일정에 맞춰 다음 월요일에 수술을 하기로 했다. 아이를 만날 날이 오늘로 딱 5일이 남았다. 출산 전 마지막 진료일에 태동검사와 수술 동의서를 작성할 거라며 선생님은 미소를 지었다.
"남은 날 동안 하고 싶었던 거 실컷 하세요. (웃음)"
다섯 밤이 지난 후, 나에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앞서 이 길을 걸어본 친구들이 말하는 육아의 세계. '나라는 존재의 사라짐'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육아 선배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이후에 펼쳐질 일에 비하면 아이가 뱃속에 있는 지금이 가장 편안한 때라고,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는 나의 의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마지막 자유의 시간'이니 마음껏 누리란다. 험난한 여정을 앞둔 내 손을 꼭 잡은 그들의 눈빛이 촉촉하다.
"아이가 밖으로 나와도, 배가 바로 들어가지 않으니 놀라진 말고요."
"2년 정도 키우면 좀 나아져요. 그때까진 나는 없다. 나는 깃털처럼 가벼운 존재다."
설렘과 함께 두렵고 걱정이 된다. 원한다고 모두가 갈 수 있는 곳도 아닌 나라, 엄마라는 세계의 티켓을 받고 이제 끝없는 긴 여행을 시작한다. 여행을 앞두고 미리 사전 정보를 찾아보듯, 하나 둘 아이를 맞을 준비를 한다. 출산 가방은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 먹고 놀고 자는 아이의 욕구는 어떻게 채우는지, 모유수유와 더 멀리 이유식까지, 차고 넘치는 경험담과 정보의 홍수 속에 허우적 댄다.
화장실을 두세 번 들락거리며 깨는 밤, 휴대폰을 열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육아는 아이템빨이라며, 어느새 소셜미디어의 광고의 타깃이 된 예비엄마는 옆으로 누워 자는 베개, 모로 반사를 방지해 준다는 이불, 조리원 동기들이 추천한다는 상품까지, '국민-'이 접두어로 붙은 모든 상품에 노출되고 말았다.
가장 놀라운 건 당근 마켓의 세계였다. 짧게 쓰지만 시기에 따라 필요하다는 - 그것이 엄마의 자유를 보장하든, 혹은 아이를 위해서든- 육아용품들은 모두 당근 마켓에 있다. 필요한 물품의 키워드를 넣고 구독을 누르고 기다린 덕분에 지난주에도 세 번이나 동네에서 저렴하게 국민 용품들을 구했다. 아이를 품에 안고 욕조를 건네주던 엄마는 자신이 쓰고 남은 신생아용 기저귀를 덤으로 건네주었다. 순산을 기원하고 육아를 응원하는 이 끈끈하고 묘한 유대감은 뭘까. 한국에선 한 아이를 키우려면 당근 마켓이 필요하다. 모스크바에 있는 이에게 일련의 경험들을 나누었더니 친구는 말했다.
"한국물 좀 빼고 와야겠네. 이제 그만 찾아요. 나중에 배신감을 느끼는 게 나아."
친구의 말처럼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았을까. 아무런 정보 없이 떠나는 여행에서 더 큰 즐거움과 기쁨을 발견할 수 있듯, 육아도 어떤 부분에선 그렇게 빼고 더하는 게 필요한 걸까. 무엇이든 빠르고 편리한 한국에서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진짜 우리집이 있는, 내가 살아내야 할 모스크바의 삶에 불평이 들어올까 걱정이다. 혼자가 아닌 내게 주어진 생명을 책임지고 돌보는 여정, 이전에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새로운 일. 예측할 수 없는 이 고유한 존재를 돌보는 걸 잘 해낼 수 있을까. 아이가 태어나 품에 안기는 순간을 상상하면 왠지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