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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Aug 15. 2020

마지막 면접

그녀는 잘 지내고 있을까

맞은편에 앉은 그녀의 긴장이 나에게까지 전해졌다. 말을 할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얼굴 근육의 움직임을 정작 본인은 알 수 없다. 스스로 볼 수 없는 자신의 얼굴을 처음 만나는 상대가 마주하고 있다.


© d_mccullough, 출처 Unsplash

“ 마지막으로 저희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나요? ”


어색한 침묵을 깬 것은 옆에 앉은 본부장이었다. 공식적으로 면접을 끝내는 질문이기도 했다. 일주일 후 퇴사를 앞둔 나는, 팀장대행의 자격으로 신입직원의 최종면접에 들어왔다. 만약 눈 앞의 그녀가 최종 합격을 하고, 입사를 하는 날이면 나는 이 팀에 없을 텐데... 나 또한 그녀만큼 이 면접이 무사히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 팀장님께 여쭤보고 싶은데요.”

“ (앗, 설마 눈치챘나?.) 네, 편하게 물어보세요.”

“ 이 회사에서 일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좋으셨어요? ”  

호기심에 가득 찬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최종면접이 진행되는 이 회의실은 8년 전과 변함이 없었다. 그녀의 자리에 앉아있던 그 날의 내가 생각났다. 처음으로 본 공식적인 면접이었다.


© clemono, 출처 Unsplash

서른이 되어서야 구직사이트를 제대로 살폈다. 당시 내가 가진 경력은 3년 반의 방송작가, 6개월의 영화제 홍보팀 경력이 전부였다. 자격증은 일본어 JLPT 2급뿐이었다. 지원할 수 있는 회사는 많지 않았다. 우연히 국제구호단체에서 신문 또는 방송계 경력 3년 이상의 직원을 뽑는다는 글을 발견했다. 1년의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귀국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최종면접을 보게 됐다. 그 자리에는 나를 포함하여 총 5명이 있었다.


“ 여기 있는 모든 분들에게 질문을 할게요. 방송국에서 아동 사례 촬영을 갔어요. 그런데 갑자기 아동의 마음이 바뀌어 촬영을 하기 싫다고 합니다. 방송국 피디는 화가 많이 났고요. 담당자로서 이 상황을 어떻게 조율할 건가요? ” 

단체 면접의 장점은 답변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 벌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늦게 답할수록 내가 준비한 답변이 먼저 누군가의 입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출연자의 마음이 바뀌는 일은 자주 경험했던 일이니까, 바로 답변을 할 수 있었다.


© laura_lee, 출처 Unsplash


" 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면, 출연자의 진심이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억지로 촬영한다고 좋은 방송이 나오지 않으니, 빨리 다른 사례를 찾아보는 것으로 할 것 같습니다. "

모두의 답변은 비슷했다. 일단 억지로 촬영하지 않겠다는 의견이었다. 맞은 편의 팀장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 모두들 착하시네, 저라면 어떻게든 설득해서 촬영을 진행합니다."

오 마이 갓. 방송국 사람보다 더한 사람이 여기 있네. 이런 팀장과 일한다면 방송국에서 보다 더한 일을 겪을 수도 있겠구나. 마음 한편이 서늘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나는 최종면접에 떨어졌고, 어쩌다 보니 다시 방송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마침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던 프로그램의 작가를 구하고 있었고, 경력을 더 쌓기로 했다. 정해진 방송 날짜만 보며 달려가던 어느 날, 면접을 봤던 회사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 quinoal, 출처 Unsplash


“ 혹시, 지금 일 하고 계시나요? “
“ 네. 지금 일하고 있습니다. “
“ 예전에 지원한 팀은 아닌데, 같은 본부에서 티오가 생겨서 연락을 드렸어요. 업무가 잘 맞을 것 같은데, 혹시 면접을 한번 더 보실 생각이 있을까요? “

묘하게도 회사는 방송국과 길 건너편에 있어서 출근길에 또 한 번의 면접을 보게 됐다. 이미 일을 쥐고 있는 자의 마음은 처음보다 여유로웠다. 면접관으로 온 팀장님의 온화한 인상도 한몫했다. 느긋한 사투리를 섞어가며 웃음이 가득했던 그분은 이미 내 이력서를 꼼꼼히 본 상태였다.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던 그는 갑자기 자기의 지갑을 열어 사진을 한 장 보여줬다.


© JACLOU-DL, 출처 Pixabay


“ 이게 뭐냐면~ 신혼여행 때 제주도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
“ (뭐지?!) 아, 네.... (젊으시네요? 예쁘네요? 뭐라고 해야 하지) 좋아 보이세요. “
“ 그렇지. 하하하 ”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노란 유채꽃밭 사이에 젊은 날의 팀장님과 아내분이 있었다. 참 묘한 면접이었다. 갑과 을의 관계, 긴장되고 어색할 수밖에 없는 그 자리가 외갓집의 툇마루에 앉아 있는 것처럼 되었다. 사람향기가 나는 사람이었다. 처음으로 이런 리더와 함께 일해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사람과 일하고 싶었다. 가까이에서 좋은 어른을 만나서 배우고 싶었다. 사람과 사람으로 느껴졌던 그 만남을 계기로 입사를 결정했다.


© jaysung, 출처 Unsplash


“ 팀장님, 대답해주셔야죠. “  인력팀장님이 말했다.  
“ 아, 좋았던 점이요. 같은 가치를 가지고 함께할 수 있는 좋은 동료를 만날 수 있었던 게 가장 좋았습니다. “

맞은편에 앉은 신입직원의 표정이 조금 편안해진 듯보였다. 마지막 질문을 잘 해냈다는 뿌듯함도 느껴졌다. 그녀의 자리에서 다시 맞은편까지, 지난 8년 을 돌아보니 일보다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했던 기억이 났다. 결혼과 해외이주로 퇴사하지만, 여러 가지 힘든 상황에 처한 동료들을 두고 떠나는 때라 더 마음이 아려왔다. 마음으로 기도했다. 그녀도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를, 어려움은 얕게 즐거움은 깊게 통과할 수 있기를, 때가 되어 회사를 떠나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찾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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