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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Oct 21. 2020

가을의 위로 한 장

러시아의 금빛 가을


“올해 모스크바 가을은 특별해요. 여러분을 위한 선물 같네요.”


교실 창문의 블라인드를 내리며, 레나 선생님은 말했다. 점심을 먹고, 오후 수업이 시작되면 창 밖을 통해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살이 교실로 쏟아졌다. 배도 부르고, 기분 좋은 따스함에 연신 하품이 나온다. 2018년 모스크바의 가을은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예쁘게 물든 나무 사이를 걷고 싶어서, 도토리 열매를 줍고 싶어서 트램에서 내려 집까지 1시간을 걸었다. 그 해 선생님의 말이 진심이었다는 걸, 두 번째 가을을 보내면서 알게 됐다.


모스크바의 가을은 짧다. 스치듯 지나는 이 곳의 가을은, 밤에도 밝은 여름을 지나서 길고 긴 겨울로 가는 길의 짧은 환승의 계절이다. 10월이 되면서 밤에는 계속 비가 내렸다. 바람도 세게 불었다. 나뭇잎들은 후드득 떨어졌고, 하루하루 공기는 점점 차가워졌다. 가을밤은 늘 그렇게 겨울을 조금씩 우리 곁으로 가까이 데려왔다. 주말의 공원은 가을을 만끽하는 가족들로 붐볐다.  

“여기 사람들도 낙엽을 줍네, 어머 저 아이 좀 봐.”

한 손 가득, 떨어진 나뭇잎들을 주운 아이는 엄마에게 낙엽 무더기를 건넸다. 엄마는 능숙하게 나뭇잎들을 손으로 엮어 왕관을 만들었다. 아이도, 아빠도, 모두 낙엽으로 만든 왕관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 큰 구름이 지나고, 다시 따스한 햇살이 내리면 사람들은 너도 나도 포즈를 취한다.


출처: 얀덱스 yandex


“아빠도 썼네. 근데 저거 깨끗할까?”
“이 곳 사람들의 가을을 즐기는 방법이지, 뭐”

졸라따야 오씬.(러시아어: 금빛 가을) 러시아의 가을을 표현할 때 ‘금빛’을 쓴다. 금을 뜻하는 졸라또. 는 수업시간에 종종 들었다. 무엇이든 쓱쓱 잘 만드는 솜씨가 좋은 이에겐 ‘금손 (졸라띠에 루끼)’ 을 가졌다고 하고, 푸시킨의 유명한 동화, 어부의 소원을 들어준 ‘황금물고기 (졸라따야 립카)도 있다. 좋은 것을 상징하는 ‘금빛’ 을 가을에도 붙였다. 자연이 주는 위로와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 이 짧은 계절에 대한 고마움에 ‘금빛’을 썼을까.  



“불가사리, 이건 너에게 줄게. “

러시아인 친구는 노랗게 물든 커다란 나뭇잎을 내 손에 건넸다.

“블라디미르에서 온 황금빛 가을이야.”
“너무 예쁘다. 조심히 가져갈게.”
“응, 지난주에 엄마가 모스크바에 가지고 온 거야.”

모스크바 근교,  블라디미르가 고향인 나의 러시아인 친구 안나. 엄마는 딸을 위해 고향의 금빛 가을을 두 조각(큰 낙엽 2장) 챙겨 왔다. 모스크바에 살고 있는 딸을 위해 고향에서 가져온 낙엽을 손에 들고, 기차를 탔을 그녀의 엄마. 그리고 이제 블라디미르의 ‘금빛 가을’ 한 조각이 내 손에 있다.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고, 값을 매길 수 없는 자연이 준 위로.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에서, 나는 그 선물이 으스러지지 않게 무릎 위에 사뿐히 올렸다. 마음이 따스해졌다. 안녕, 가을. 올 해도 우리에게 와줘서 고마워.



러시아인 친구가 건넨, 블라디미르의 가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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