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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Oct 15. 2020

너의 이름은

알쏭달쏭 러시아 이름의 세계


“까짜 선생님이 알려줬어요.”
“까짜? 어떤 까짜?”
“아, 빨간 머리 까짜요.”

까짜. 는 한국말 진짜의 반대말, 가짜가 아니다. 엄연한 러시아어 이름이다. ‘에카테리나 Екатерина’를 줄여서 ‘까짜 Катя’ 라고 부른다.

러시아어학교의 기초반 수업은 반마다 두 선생님이 맡았다. 월수금은 교과서를 기본으로, 화목은 프린트를 중심으로, 다른 선생님이 왔다. 다행히도 우리 반은 두 분의 이름이 달랐지만, 친구네 반은 선생님 두 분의 이름이 같았다. 둘 다 에카테리나, 까짜였다. 점심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 속, 두 선생님들을 우리는 머리 색 또는 성격으로 구분했다. 붉은색으로 염색한 짧은 머리, 착한 까짜. 그리고 그냥 까짜 또는 무서운 까짜.

“세르게이가...”
“어떤 세르게이?”
“집주인 세르게이.”

집에서 남편과 대화할 때도 마찬가지다. 외국인인 우리는 월세로 이 집에 살고 있는데, 러시아는 집주인이 외국인에 대한 거주 등록, 보장을 해줘야 한다. 다행히 우리는 참 좋은 집주인을 만나서 어려움 없이 이를 해결하고 있다. 착하고 좋은 집주인 세르게이. 와 남편의 회사 동료 세르게이. 둘 다 한 번씩 만난 적 있기에 이제 자연스레 먼저 어떤 세르게이인지 묻는다.


© jontyson, 출처 Unsplash


쵸즈까(тёзка). 러시아어로 동명이인이라는 뜻이다. 한국도 태어난 해에 따라 많은 이름이 있지만, 이 곳은 더 흔하게 같은 이름을 만난다. 남자와 여자에 따라 쓸 수 있는 이름이 대부분 정해져 있다. 우리 반 선생님의 이름은 나탈랴였는데, 그녀의 이름은 러시아 정교의 성인에서 따온 것이라고 했다. 학교엔 선생님 중 나탈랴만 총 4분이 있었다.

그래서, 러시아 사람들은 이름에 오체스트바 отчество (부칭/아버지의 이름)을 쓴다. 이름+부칭+성 이 그 사람의 본명이 된다. 예를 들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로 한국인이 잘 알고 있는 시인/작가 푸시킨의 본명은 알렉산드르 세르게이비치 푸시킨 (Александр Сергеевич Пушкин)으로, 그의 아버지 이름은 ‘세르게이’ 임을 알 수 있다.  

“만약에 같은 이름이 한 반에 많으면 어떻게 불러?
 뒤에 알파벳이나 숫자를 붙이나, 우린 그랬는데..”
“각자 애칭이 있지.”

아.... 애칭이라, 러시아 이름에서 이게 난 정말 어렵다. 외국인인 내겐 여러 개의 이름을 외워야 했다. 그나마 내 러시아 친구 이름은 안나인데, 아냐, 아네치카 라고 부른다. (그나마 이는 비슷한 어감으로 쉬운 편) 알렉산드리아-샤샤, 블라디미르-보바 (네, 블라디미르 푸틴이 그 블라디미르 맞습니다.) 니콜라이-콜야.처럼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약칭이 넘친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은 외국인인 우리들에게 러시아의 이름과 약칭을 알려주었다. 옆에 앉아 있던 중국인 친구가 한숨을 쉬더니, 선생님께 질문했다.

“근데 왜 블라디미르인데, 줄여서 보바라고 하죠?”
“그냥, 블라디미르의 약칭은 보바. 에요. 그냥 그렇답니다. 미안해요. 이게 러시아어예요.”

세상의 모든 일이 완벽한 이해 속에 이뤄지던가. 아니다. 어쩌면 이해란 건 나의 경험을 토대로 이뤄진 작고 작은 논리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경험을 쌓는데 이해는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는 걸, 러시아인의 이름을 부르며 나는 깨달았다.


늘 우리에게 미안해- 하던 러시아인 답지 않던, 러시아 선생님 나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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