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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Oct 23. 2020

여성은 늙지 않는다

모든 여성은 ‘제부시카’

지난여름, 한국 방문에서 있었던 일이다. 잠시 슈퍼에 들를 일이 있어 집을 나섰다.

“어머니, 혹시 샛별 유치원이 어디인지 아세요?”
“네?”
“샛별 유치원이요. 어디인지 모르세요?”

헬멧을 쓰고 자전거를 탄 여성분이 내게 길을 물어보고 있었다. 어머니라니? 내가 왜 어머니? 난생처음 듣는 호칭이다.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어머니 아닙니다.”

나는 왠지 기분이 상해서 휙 돌아서 집으로 왔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봤다. 티셔츠에 반바지, 슬리퍼. 그리고 마스크. 하원 하는 아이를 마중가는 어머니처럼 보였던 걸까? 그래도 길에서 처음 만나는 여성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경우는 없지 않나, 내게 말을 건 그녀가 속한 곳에선 대부분 ‘어머니’ 들이 많은가, 아니 나 왜 이런 생각까지 해야 하지.?  


학생, 아가씨, 아줌마, 어머니..... 한국사회에서 여성을 부르는 호칭은 참 많다. 이도 저도  애매한 상황일 때는 ‘저기요-, 여기요-‘라고 상대에게 말을 건넸다.


© Free-Photos, 출처 Pixabay


“제부시카....”

남편과 함께 간 매장의 점원이 내게 말을 걸었다. 물건을 가져왔는데 확인해 달라는 것이다.

“어머, 나보고 제부시카(소녀,아가씨)라고 했어! 나 어려 보이나?”
“여기선 모든 여성을 제부시카 라고 해.”
“아, 그래? 예쁜 말이다. 마음에 들어. “

러시아에서 여성은 모두 “제부시카.(소녀,아가씨)” 로 부른다. 카페에서 종업원을 부를 때에도, 누군가에게 길을 물어볼 때도, 이름을 모르는 모든 여성은 “제부시카” 다. 나는 이 말이 마음에 쏙 들었다.


한국에서 여성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어떤 카테고리 안에 들어간다. 기혼과 미혼을 나누고, 기혼 중에서도 아이의 유무를 나누고, 아이 이름이 곧 엄마를 부르는 호칭이 되었다. 나의 엄마는 종종 불가사리 엄마로 불렸고, 아이를 낳은 친구들은 때론 본인의 이름을 잃어버린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러시아어로 여성에 대한 호칭은 어떠한 것에 종속되지 않았다. 이 곳에서 모든 여성은 “제부시카” 다.


© simonmaage, 출처 Unsplash


나는 수업시간에 선생님께 이 단어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중국인 친구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국 드라마를 즐겨보는 중국인 친구는 ‘아줌마’의 뜻과 상황을 알고 있었고, 중국에도 여성을 향한 다양한 호칭들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러시아인 선생님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맞아요. 러시아에서는 모든 여성이 제부시카죠. 바부시카(할머니)란 말도 있지만, 눈에 띄게 바부시카(할머니)가 아닌 이상 모두 제부시카(아가씨)라고 부른답니다. 그래서 제부시카 - 제부시카 - 제부시카- 엇! 우메르(죽다. Die) 하게 됩니다. (웃음)”

제부시카로 태어나서, 제부시카로 마무리 되는 삶. 러시아에 살고 있는 여성은 호칭만으로 그 누구도 평생 늙지 않으며, 영원한 젊음을 간직한 채 세상을 떠날 수 있다.  ‘여보, 우리 가능하면 이 곳에서 오래오래 살아요.”




러시아에서는 나이, 직업, 결혼 유무 상관없이 모든 여성은 ‘제부시카’ 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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