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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Oct 24. 2020

주말엔 숲으로

다차에서 보내는 밤

모스크바의 사람들은 금요일이 되면, 이 도시를 떠난다. 교통체증이 심하기로 악명 높은 도시지만, 금요일이면 외곽으로 떠나는 이들로 도로는 꽉 막혀있다. 특히 날씨가 좋은 여름의 주말, 많은 이들이 모스크바를 벗어나려 애쓴다. 최소 2시간을 달려야 도착하는, 그들의 목적지는 다차(дача 별장)이다.

“원래의 다차는 가족을 지키기 위한 식량 공급처였어.”
“아, 정말? 휴가를 위한 별장이라고 배웠어.”
“응, 지금은 그렇게 바뀌었지, 소비에트 시절엔 모두 동일하게 농장에서 일을 했잖아. 농민들은 먹고살기 위해 감자를 심었고, 다차는 가족을 살리기 위한 곳이었어”

눈을 반짝이며 러시아인 친구는 내게 말했다. 다차, 한국어로 바꾸면 별장이란 뜻인 이 단어는 러시아어 다받츠(давать 주다/제공하다)라는 동사에서 시작됐다. 18세기 표트르 1세대 왕의 측근들에게 수여된 사적인 휴양지였고, 19세기에는 예술가와 시인들이 주로 모이는 별장처럼 쓰였다. 20세기 초 소비에트 정권이 들어오면서, 모든 다차는 몰수되었다. 노동계급의 휴식을 위해 제공했다고 하지만, 다차보다 노동자의 수가 훨씬 더 많았기에(1개의 다차에 50-70명), 진정한 휴식은 이뤄지지 않았다. 소비에트 정권이 무너지기 전, 식량과 돈이 부족했던 어려운 시기에 다차는 가족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생존’의 개념이 되었다. 러시아인 친구가 기억하는 건, 이 시절의 다차였다.


“안나, 소비에트 시절, 기억나?”
“나는 어렸을 때라, 많이 기억나지 않지만 부모님과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 아빠는 지금도 집 앞의 텃밭에 감자, 오이 등을 재배하느라 쉬질 않으셔. 어느 날 갑자기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거든.”


소비에트 시절의 다차 (출처: 얀덱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니, 주말에 떠나는 별장으로만 생각했던 다차가 조금 다르게 보였다. 러시아인들의 다차가 있는 곳은 한적한 시골이다. 거기엔 큰 슈퍼마켓도, 영화관도, 심지어 어떤 곳은 가로등도 없다.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편리함을 버리고, 주말이면 음식, 책 등을 챙겨 다차로 떠나는 러시아인들, 그들은 숲 속을 거닐면서 숨을 고르고, 호숫가에 걸터앉아 무겁고 지친 마음을 내려둔다. 여름이면 강이나 호수에서 수영을 즐긴다. 부모님, 할머니가 있는 다차는 식물이나 채소를 재배하기도 한다. 나 또한 한 러시아인 친구를 통해, 그녀의 부모님이 다차에서 직접 재배한 '(친구가 말하길) 러시아에서 가장 맛있는 감자’를 받기도 했다. 내가 지금까지 먹은 감자 중 제일 맛있었다.


자연속의 휴식을 위한 러시아인의 별장, 다차


“우리도 주말에 다차에 가서 쉬고 올까?”

가을이 끝나는 걸 아쉬워하던 내게 남편은 멋진 제안을 했다. 금요일 밤 9시, 대부분의 사람이 도시를 모두 빠져나갔을 즈음, 우리는 차를 타고 외곽으로 향했다. 두 시간을 달려 캄캄한 시골길을 지나 도착한 우리의 다차, 숲 속에 위치한 이 곳은 캄캄하여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밤하늘의 별이 유독 반짝였다. 별이 쏟아지는 밤이란 이런 것이구나. 호스트의 안내를 받아 숙소에 들어가니, 따뜻한 온기가 방안에 감돈다. 그런데, 어디선가 윙윙- 소리가 들렸다.

“여보, 저기 벌이 있어!”

방안에 벌 두 마리가 윙윙- 소리를 내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불을 껐다 켜도 벌은 그대로 있다. 휴대폰으로 ‘벌 잡기’를 검색했더니, 동물의 숲 벌 잡기만 가득 나온다. 난 진짜 벌을 잡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남편은 벌이 붙어 있는 높은 천장을 향해 수건을 던지기 시작했다.

“잡았다!”
“정말? 아니야. 저기 다시 움직이는데... 근데 진짜 우리가 숲 속에 있긴 한가 봐. 벌이 다 들어와 있네.”

러시아인들이 주말에 휴식을 취하러 온다는 다차에서, 한국인 부부는 벌 잡기로 한 밤의 사투를 벌인다. 우리가 보내는 다차의 밤은, 먼저 이 방에 체크인한 러시아 벌 두 마리와 함께 사이좋게 깊어간다.   


주말엔 숲으로- 계절이 머무는 다차에서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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