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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무사 Aug 03. 2021

환골탈태 바이든 대북 정책

내용적으로는 트럼프를 닮았다

올해의 한미연합훈련(3월8~18일)에는 이름이 없다. 2018년까지만 해도 매년 3,4월에는 키 리졸브 연습과 독수리훈련, 8월에는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 등으로 훈련의 명칭이 존재했다. 2018년 6월의 싱가포르 회담을 계기로 한미연합 훈련이 축소된 이후에도 2019년의 경우 ‘동맹’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연합훈련 명칭에 대해 공개하는 것은 현재까지는 제한된다”는 국방부 대변인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 이름을 붙이기조차도 조심하며 지나갔다. 훈련 규모 역시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8월 수준으로 축소했고 실기동 훈련없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만 치뤘다.


올해 한미연합훈련이 이렇게 축소된 규모로 치뤄진 것에 대해 대개는 문재인 정부의 강력한 요청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월 초 이인영 통일부 장관을 필두로 정부 여당이 미국 측에 한미훈련 축소하자는 목소리를 낸 것은 맞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미국 측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2월2일 미 국방부 측은 이인영 장관의 훈련 축소 요구에 대한 반응을 묻는 한국 언론의 질의에 “군사적 준비 태세를 갖추는 것은 국방부의 최우선 순위 과제”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드러난 결과는 한국 정부 입장이 대폭 반영된 것처럼 됐다. 어떻게 된 일일까. 동맹을 중시하겠다는 바이든 정부다운 의사결정이 이뤄진 것일까? 물론 한국 정부의 의견도 중요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번 훈련 축소가 바이든 정부 외교안보팀의 능동적인 결정에 따른 것이라는 점이다. 워싱턴 정가 사정에 밝은 외교소식통은 “훈련을 축소하기로 결정한 것은 미국이다”라고 못 박았다. 그는 그 배경으로 2월 중순 바이든 측이 북측에 여러 루트로 회동을 제의한 사실을 들었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측과 접촉을 시도했다는 사실은 최근 외신 보도를 통해 알려진 바 있다. 3월13일자(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익명의 고위당국자를 인용해 “뉴욕(유엔주재 북한 대표부)을 포함 여러 채널을 통해 북한 정부에 접근하기 위한 노력들이 지난 2월 중순에 시작됐다”라며 “현재까지 평양으로부터 어떤 답변도 받지 못했다”라고 전한 바 있다. 따라서 미국 측의 한미 훈련 축소 결정은 2월 중순 북측에 접촉 시도를 하기 이전에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한 성의 표시 차원에서 이뤄진 일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월의 8차 당대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남조선 당국은 첨단 군사장비 반입과 미국과의 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해야 한다는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를 계속 외면하고 있다”라며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다시 3년전 봄날로 돌아갈 수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꽃 피는 봄날’로 돌아가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한미 ‘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할 것을 콕 집어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 김위원장의 이같은 요구에 중지까지는 아니지만 규모 축소 및 훈련의 이름도 밝히지 않을 정도의 현저한 양보를 새로 등장한 바이든 행정부가 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북측에 만나자고 먼저 손을 내밀기조차 했다. 물론 미국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일부에서는 명분 쌓기용 제스쳐에 불과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또한 북한이 최근 여러 루트로 바이든 정부 초기 무력행동 가능성을 시사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한 시도라는 시각도 있다. 


바이든 행정부 사람들은 바이든 대통령 자신에서부터 블링컨 국무장관까지 북한 체제와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지난해 대선 기간 두 사람 모두 김위원장에 대해 폭언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독재자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식의 발언을 통해 바이든이 당선되면 적어도 북한에 먼저 손을 내미는 일은 없을 것이란 인상을 줬다. 현재 진행 중인 대북 정책 재검토 역시 최소 6월까지는 갈 것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트럼프가 다리를 놓은 것을 인정한다

.그런데 전격적인 대북 접근 시도 뿐 아니라 한미 훈련의 능동적 축소까지, 이것이 사실이라면 의외의 상황 진전이다. 놀랍기까지 하다. 그런 연장선에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의 3월15일~17일 일본과 한국 방문, 3월17~18일 알래스카 주도 앵커리지에서의 미중 고위급 회담이 진행된다. 워싱턴 내에서 과연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앞의 외교소식통은 지난 2월 초만 해도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인식이나 정책에 대해 비관적이었다. 바이든이나 블링컨이나 오바마 정부 시절의 전략적 인내 정책을 경험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기들 경험의 틀 속에서 북한을 바라볼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싱가포르 회담을 새로운 북미관계의 출발점으로 해야 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힘들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그런데 약 한달 반만에 이뤄진 최근의 통화에서는 얘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바이든 정부 내에서 진행된 대북정책 검토 과정과 함께 워싱턴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다. 가장 두드러진 점은 트럼프 정부가 북미관계에 남긴 유산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해서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트럼프 대북 정책에 대해 부정 일변도의 태도였다면 부정적인 것은 지양하되 긍정적인 것은 계승하고 발전시키겠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즉 트럼프 정부가 북한과 다리(Bridge)를 놓은 것은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다리가 아직 서로 왕래를 할만큼 완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바이든 정부가 북한과 협력해 다리를 완성하rl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즉 트럼프가 남긴 흔적을 무조건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변형시켜서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바이든 장부 외교안보팀이 과거 트럼프 정부에 대해 비판적이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비판의 초점이 트럼프 정부의 행태에 국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동맹을 무시한 일방주의, 그리고 대북관계에서 목표(Goal)도 매뉴얼도 없이 무모하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른 제스쳐만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용에 들어가면 평가가 달라진다. 적어도 트럼프 정부의 대북한 정책이나 대 중국 정책의 큰 틀은 그대로 가져간다는 것이다. 


과거 미국의 역대 정부를 보면 정권이 교체되면 정책도 다 바뀌곤 했다. 지난해 대선 기간 바이든 후보의 일련의 발언을 보면 바이든 정부가 등장할 경우 트럼프 시절의 북미관계는 폐기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트럼프의 행태는 비판하되 정책 내용은 계승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다는 것이다. 


굳이 살펴보자면 그런 조짐이 없지는 않았다. 미국 대선 직후인 지난해 12월3일자 <CNN> 보도가 대표적이다. 바이든 당선인 측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간의 친서에 대한 접근권이 확보되는 대로 검토에 착수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CNN>과 인터뷰한 바이든 캠프 소식통은 “그것을 통해 김정은의 심리를 보다 심도 있게 파악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가 트럼프에게 어떻게 접근했는지 알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시기에 일어났던 북한 일본 한국 중국과의 관계는 물론 방위계획과 훈련 군사태세 등에 대해서 가능한 한 많이 이해하려고 한다”라며 “대북정책은 그 이후 구체화될 것”이라고 당시 이 기사는 지적했다.  


지난 1월만 해도 바이든 정부 고위 당국자들은 대북정책에 대해 검토 중이라며 신중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기존의 선입견 보다는 뭔가 새로운 내용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1월19일 블링컨 장관은 의회청문회에서 “북한을 향한 전반적인 접근법과 정책을 다시 살펴봐야 하고 그런 의향을 갖고 있다”고 했다. ‘다시 살펴보겠다’는 그의 언급은 1월22일 젠사키 백악관 대변인의 브리핑에서는 ‘새로운 전략’이라는 말로 구체화됐다. 그는 그것을 위해 “한국과 일본 다른 동맹들과 긴밀한 협의, 그리고 북한의 현재 상황에 대한 철저한 정책 검토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월 초 바이든 행정부가 한미훈련 축소를 결정하고 곧 이어 북측에 만나자고 한 것은 바로 이런 검토 과정이 대체로 마무리된 데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의 외교소식통은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 정부 시기 진행된 북미관계를 부정하지 않고 더욱 발전시키겠다는 내부 방침에 따라 단계별 프로세스를 밟아가는 것”으로 이를 설명했다. 즉 첫번째 단계는 대화를 통한 의중 파악이다. 북한과 접촉해 북미간에 진행됐던 기존 관계를 존중하겠다는 점을 전하고 북한의 요구사항이나 의중을 파악하고자 한 것이다. 지난 1월의 8차 당대회에서 북측은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와 대북 제재 해제를 요구한 바 있는데 북한이 현재 바이든 정부에 요구하는 것이 제재 해제인지 뭔지 요구 사항이나 입장, 조건 등을 직접 듣고 싶다는 것이다.


동맹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정부는 동맹에 대해 협의보다는 나를 따르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민주당 정부는 예전부터 동맹의 입장을 존중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특히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 입장을 존중해왔다. 클린턴 정부시절 ‘페리 프로세스’가 그랬고, 오바마 정부 시절에는 자신들과 다르지만 이명박 정부의 대북 입장을 존중했다. 3월15일~17일 일본을 거쳐 한국과 국무 국방장관 회담을 하는 것에 대해 바이든 정부가 부여하는 의미 또한 비슷하다.  즉 원래 계획대로라면 작년 말에서 1월 말까지 친서및 자료를 통해 북미관계 현황을 파악하고  2월 중순 북한과의 접촉을 통해 북의 의중을 파악한 뒤, 그리고 이번 한일 방문을 통해 동맹의 의견까지 취합하는 과정을 밟은 뒤 이를 바탕으로 정책을 구체화하려 한 것이다. 


중국은 4자회담, 미국은 6자회담

바이든 정부가 대북정책의 윤곽을 정해 나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통과해야 할 지점이 바로 중국과의 관계 문제이다.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와 마찬가지로 미국이 현재 직면한 지정학적 최대 위협으로 중국을 꼽고 있다. 그 점에서 바이든 정부는 대북 정책 뿐 아니라 대 중국 정책 역시 트럼프 정책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대북관계애 있어서는 중국을 무작정 배척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북한 대외 무역의 90%가 중국과 이뤄졌다는 점에서 중국의 협조가 중요하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이 북한 문제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무역 분쟁과 세컨더리 보이콧을 동원해 압박하는 정책을 구사했다. 중국이 자발적으로 협조하리라고 보지 않은 것이다. 바이든 정부 역시 대북 관계에서 중국의 역할에 대해 별로 신뢰하지 않는 것 같다. 지난해 11월27일자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보고서를 인용해 “미국은 중국이 북한 카드를 활용해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정책을 교란하려 할 것으로 보고 있다”는 취지의 보도를 한다. 바이든의 대중 정책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유도하기 위해 중국이 북한의 무력 시위라는 카드를 이용하려 한다는 것을 미국의 유관기관들이 이미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2018년 트럼프 정부가 북미관계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시진핑 정권은 수시로 김정은 위원장을 중국으로 불러 중국이 한반도의 질서재편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노심초사했었다. 중국의 이같은 입장은 바이든 정부 등장 이후 북핵문제를 남북한과 미중이 모여 풀자는 4자회담론으로 등장했다. 3월18일 앵커리지에서 있을 미중 고위급 회담에서도 중국 측은 이 내용을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4자회담은 바이든 행정부가 생각하는 다자주의의 내용이 아니다. 바이든 정부의 다자주의 모델이라 할 수 있는 ‘이란 핵 해법’은 사실상 6자회담에 가깝다.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러시아의 참여 문제다. 4자회담을 하면 러시아를 참여시킬 수 없다. 바이든 정부는 오바마처럼 중국을 G2로 대우할 생각이 없다. 중국의 자리에 러시아를 세우고자 했던 트럼프 정부에 가깝다. 대통령 취임식 끝나자 마자 바이든이 제일 먼저 통화한 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라는 점은 바이든 정부에서 미국의 글로벌 파트너가 중국이 아니라 러시아가 될 것이라는 점을 상징한다. 따라서 북핵문제 해결의 마지막 과정은 이란핵 협상을 모델로 한 6자회담의 재구성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란핵 해결 과정에서 사실 중국은 별 역할이 없었다. 유럽과 러시아가 큰 역할을 담당했다. 북핵 6자회담에서도 러시아 비중을 키우겠다는 게 바이든 정부의 구상이라고 한다.


미중간의 보이지 않는 수 싸움이 바로 이 지점에서 나타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 북한을 다시 무력동원 대상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 3월15일자 김여정 담화를 통해 북한도 이미 한발을 담궜다. 자기들이 요구한 것은 한미연합훈련 중단이지 축소가 아니라며 미국에 대해서는 “4년간 발편잠을 자고싶은것이 소원이라면 시작부터 멋없이 잠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않는것이 좋을것”이라며 말 그대로 충고에 그친 반면 우리 정부에 대해서는 “더이상 존재할 리유가 없어진 대남대화기구인 조국통일위원회를 정리하는 문제”와 “남조선당국과 앞으로는 그 어떤 협력이나 교류도 필요없으므로 금강산국제관광국을 비롯한 관련기구들도 없애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위협했다. 


조평통을 정리하고 금강산국제관광국 등을 없애는 것은 사실 지난 1월의 8차 당대회 때 남북관계를 과거와 같은 통일전선 관계가 아닌 별개의 국가관계로 가져가겠다고 한 것의 연장선이다. 중국의 압력과 중국으로부터 얻어야 할 것들 때문에 중국의 요구를 거절하긴 어렵고 그렇다고 바이든 정부를 상대로 무력시위 하기는 부담되니 대남 관계에서 기왕 하기로 한 조처들 가지고 생색을 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동맹의 의견을 중시하겠다는 바이든 정부의 등장에 따라 한국 정부의 역할과 영향력이 어느 때 보다 커졌고 더군다나 북한에 대해 가급적이면 도와주고자 하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 북의 이런 행태가 과연 온당한 것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남쪽과 별개의 국가로 가고 싶다는 생각은 알겠는데 그렇다고 남한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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