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래 중편소설 연재
인간은 살얼음판이나 마찬가지의, 어찌할 수 없는 삶의 우연 위를 헤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뙤약볕은 찌르는 듯 그는 양쪽 눈이 따가웠으나 꽝꽝 얼었던 브라질산 계육 덩어리들이 내뿜는 작업실 안의 냉기가 배어서였는지 몸은 서늘했다. 어떻게 자신이 자전거 앞까지 나와 서 있는지 몰랐다. 담배부터 물려 있었다.
작업실에 다시 박히게 된 지 사흘째 날 그가 일 나온 직후였다. 사흘 전까지 자신은 마찬가지로 사흘 동안 신입 배불뚝이를 가르쳤었다.
“진짜,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남의 시선들은 아랑곳없다는 듯 마트에 깔 물건들만 연신 트럭으로 옮겨 싣고 있는 배불뚝이의 등짝 쪽에다 부장이 눈을 가늘게 했다.
“시킨 게 아니고요. 계속 저러는데 환장하시겠네. ……일곱 시엔 나오는가 봐요.”
염병할 인간. 두세 달 밖에는 안 할 테니 분명히 내 일은 건들지 말라고 그렇게 얘길 했는데. 네가 무슨 중학교 일 년 선배냐, 개자식아…….
그의 눈초리가 닿는 듯싶으면 배불뚝이는 냉장창고로, 또 냉동 탑으로 회피하는 것 같았다.
‘노동자들’더러 단결하라고? 그럴 수 있다고 봤냐?
그 아침 그는 문턱에 서서 경멸에 찬 눈길로 그 앞 포도(鋪道)를 내려다보았다.
얼마 전에도 겪어보았지만, 묶여 있는 것도 그 형태에 따라 다른데 그는 이리 묶여서는 생각마저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렇게 꾸물꾸물,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언제 다 하려고요?”
기도 차지 않았다. 결국, 자신은 또 당한 게 되어버렸지만, 일단은 얼른 부지런히 서둘러서 끝내버리고 외곽으로 빠져나가고 싶어서 무리까지 한 거였다. 물건을 실은 다음 첫 개비는 처음 마트로 가면서 붙이는 게 순서였지만 그는 그날 머슴 닭 최가가 돌아왔을 때 뭔가 개전(改悛)의 정 같은 것이 들게끔 해보려고 한 대 태우러 한 번 밖도 나가지 않고 내내 고깃덩어리만 붙잡고 있던 것이었다. 커피 타임은 아까 지났다.
“엄청나게 했잖아요, 오늘?”
썰어서 냉장실에 쌓아둔 것만 해도 엄청났다. 일한 돈을 또 넣지 않은 게 3일째다.
인생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기완성이라고? 소비가 특히 사람을 노예로 만든다고……?
역시 주례 서야 하는 것은 부담이었다.
“……아, 예! 엄청나게 하셨다고요?”
닭치는 것들이 진짜……? 아! 이리도 비굴한 인간이라니. 지금 세상, 무사의 칼이 뭣 때문에 필요하단 말인가.
살살 사람을 조소하는 듯한 그믐달 눈의 그 여자는 옆쪽으로 한동안 그를 흘겨보았다. 쭉 갈라지는 닭고기 결. 차갑고 미끈거리는 살덩어리. 살아가는 태도, 그 본새의 인상이며 제 남편이나 머슴 닭, 기사들에게 하는 꼴로 봐서 필시 그 여자는 애초서부터 생 처녀는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그에게 들었다.
‘무례토(無礼討)!’ 여자가 ‘아, 예!’ 어쩌고 할 때 실상 그는 즉각 긴 칼―그게 있었다면―로 베어 내리고 싶었었다. 응당 그랬어야 함에도 베어 죽이지도 못하는 이 천한 세상의 장검(長劍).
몸뚱이를 이렇게 굴리는 게 아니었어……!
그때 구름다리 넘어서 길가 가로수들은 천천히 잎사귀마다 한들거렸었다. 강바람은 나른했었다. 그 길엔 쫓아오는 차 하나 없었다. 고즈넉한 속에 자신은 혼자 서 있었었다. 이상스레 한적하고 아련한 여름 속에. 뒤돌아보던 그 길은 평화로웠었다. 그 풍경을 보고서서도 자신을 이렇게 내돌려서는 안 되겠다고 그는 분명 생각했었다. 무릇 인간에겐 태초부터 ‘인간다운 삶의 권리’ 따위란 없었던 거였다.
이름하고 주민 번호 다음은 뭘 하느냐 묻겠지…….
산다는 게 다 범죄였다.
미안해 여보, 미안해 얘들아. ……나는, 아빠는…….
“직업?”
한 병사가 함정에 빠져 제일 먼저 죽었다. 함정 위를 위장해두었던 나무며 흙덩이가 수북하게 그 병사의 몸에 쌓였고 땅바닥에서 치솟은 수십 개 날카로운 죽창이 그의 몸을 삐죽삐죽 꿰뚫었다. 눈을 뜬 채,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죽은 그의 귀에 피다 만 담배꽁초가 꽂혀있었다.
이제껏 자신은 누구를 죽여 본 적은 없었다.
“한 손에 망치 들고 건설하면서 한 손에 총칼 들고 나가 싸우자…….”
자신은 예전에 그 나이도 아니었다.
답해야 하겠지.
“Solo estoy, solo estoy Por el monte profugo me voy…….”
너희의 부지런함은 자기 자신을 망각하려는 의지이며 도피다. 너희가 삶을 믿는다면 순간에 몸을 던지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너희는 내실이 부족해서 기다리지도 못한다. ― 심지어 게으름을 부리지도 못하는구나!
“……소설가입니다.”
소설은 인간의 경험을 토대로 얻어진다고 했지…….
“이렇게 마지막 작별이라면 이유도 변명도…….”
아, 빨간색 파라솔 세트.
가장 좋은 것은 아예 태어나지를 않는 것. 삶은 무더운 한낮에 불과할 뿐.
아주 예전 일이었지만 자신의 폭력 전과.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할 것이었다.
뫼리케(Eduard Morike)는 하이네를 철두철미한 작가라고 칭하며, 그의 전 존재를 거짓말하는 사람이라고 했다지. 또, 첼러(Eduard Zeller)는 그를 위대한 마음의 부인자라 했다지.
한 까무잡잡하고 조그마한 여자애를 세발자전거 뒤에 태우고서 대통령이 되겠노라 던 유년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이 그는 났다.
“너도 나만큼은 괴로워하면서 이별 끝에 왔을 테니까…….”
품에 쏙 들어오던 기계체조 선수 몸매, 컨트리클럽…… 아팠던 사랑들아!
점점이 빗방울이 듣을 때. 그런 겨울, 그네들을 기다리며 서서 눈이 아니라 그런 비가 내릴 때, 아! 자신은 격렬히 삶을 사랑했었다. 그리고 그는 냉정함을 그네들에게서 배웠다.
그는 너무 후회스러웠다. 진즉에 예술로 살지 못한 것을.
닥치거라, 세상아!
다만 자신은 일순간 폭발하는 몸짓으로 이젠 때려치우는 참이었었다. 한데, 저쪽에 붙어있는 둥그런 시계를 표적으로 날린 그 작업 칼이 대체 어찌하여 옆벽의 타일 면에 틱, 튕겨갔는지―그렇다! 던지는 순간 어깨가 뜨끔했었다―, 눈알 동글동글한 제 서방은 어느새 없어지고 없던 여자가 대체 어디서 삐져나왔던 건지, 그게 흘낏 빛을 보인 찰나부터는 도대체 어떻게끔 되어서 그랬는지……, 어쨌든지 자신은 분명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목격했었다. 작업대 계육 무더기 너머로, 여자의 명치께쯤 가로로 삐져나온 칼자루.
그땐 정말 그는 크게 들이받는 줄로만 알았었다. 비명을 지르는 타이어는 핸들로 잡히지 않았다. 앞뒤 트럭 틈새는 깻잎 한 장 두께로 붙어있었다. 자신은 이제 크게 부서지는 줄로만 알았었다.
아까 여자는 여전히 서 있었다. 얼어서 굳어버린 듯했다. 자신 쪽으로 재수 없이 벌어진 동공엔 미동도 없었었다.
이젠 거의 죽었을 거였다. 그는 좀처럼 몸뚱이를 옮겨볼 수가 없었다. 움직일 수 있다고 한들 번호판을 단 채 이 섬나라에서 어디로 갈 수 있단 말인가. 더없이 극심한 피로감에 그는 싸였다.
산으로 갈까……?
그는 아이들 겨울방학 때가 생각났다. 아홉 살 둘째 아이만 있던 점심때였다. 그는 돼지고기를 조금 사 와서 그걸 넣고 청국장을 끓였다.
“맛있지?”
식탁에서 그가 나어린 딸내미에게 물었다.
“응.”
“얼마큼?”
“음…… 땅에서…….”
“응.”
“에펠탑까지.”
“…….”
“음……, 산에서 먹던 맛이다.”
딸아이가 물었다.
“산에? 어디?”
“등산 갔을 때 아빠가 청국장 많이 해줬잖아?”
“아 등산!”
그 아이는 다시 물었다.
“……산에서 지금 뱀들 다 겨울잠 자고 있겠지?”
“……응.”
“피리 불어도 아마 안 깨겠지?”
그는 대답해야 했다.
“……그렇겠지.”
자전거를 잡았는데 이젠 걸음을 좀 움직여 볼 수 있을 성싶었다. 이젠 이러나저러나 진배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어찌 되기 전에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서 둘째 아이와―학교에서 돌아왔다면―진돗개 산책이나 한 차례 더 시켜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까지 안에서 아무도 나와 보지 않았고, 뭔가 타닥거리는 소리만 언뜻 귀로 들어왔다. 단조로운 박자였고 어쩌면 이제껏 이어졌지 않나 싶었다.
도망치지 않으리라!
호텔 방 같았던 자신의 작업실엔 이젠 미련을 접어야 할 것이었다.
좋다. 이전의 것까지는 습작으로 치겠다!
바람 오는 날에는
나는
저 높은 재로 간다.
바람맞으러.
부장이 출입문 앞에 제 트럭을 대고 흘낏 그를 쳐다보고 들어갔는데도 다시 나오지 않았다.
그는 다짐했다. 이제부터는 어디로 간다 한들 정신만은 결코 자유롭겠노라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