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

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1부

by 김욱래

군 복무가 벌써 6주 넘게 지나갔다. 그는 자신이 이제 진짜 군인이 다 된 것 같이 느껴졌다. 지난 45일 동안 많이도 무덤덤해졌다. 모든 움직임과 생각에 어느덧 각이 잡힌 같아 편해졌다. 언제부턴가 한 책의 마지막 외침에 공감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자그마한 문고판 책을 읽었던 것은 대략 이년 전 초겨울이었는데 줄거리는 어사무사했지만 유독 그 마지막 구절만 떠올랐다.


지금의 나는 나 자신에게도 책임이 없다. 그 점을 나는 감사하고 있다. 이제 내 몸은 남에게 맡겼다. 자기 결정의 책임을 면하고 자유도 완전히 버렸다. 규칙에 매인 시간이여, 만세! 그리고 감시가 붙은 정신에도! 획일화(劃一化)여, 영원 하라! ― 솔 벨로Saul Bellow, 《허공에 매달린 사나이Dangling Man》


그의 민무늬 군복은 잔뜩 힘을 들인 다림질로 예리하게 줄이 잡혀 있었다. 1 구대 내무반장과 기간병들이 13중대의 퇴소식을 위해 전날의 일과를 마치고 당일 새벽까지 제 구대 훈련병들의 ‘A급’ 군복 수십 벌을 다려댄 것이었다. 왼 소매 상박부에는 전투 근무 인식표―사단 마크라고도 한다―가 급하게 임시로 달렸다. 육군 하계 복장 규정상 전 장병들은 소매를 걷어 팔뚝을 드러냈다. 그 방법은 이랬다. 먼저 양 소매를 뒤집어 당겨 전투 근무 인식표 바로 밑까지 끌어올린다. 다시 바깥 천이 나오도록 정확히 그 절반을 뒤집어 내려서 처음에 접힌 끝단과 맞춘다. 그런 식으로 세 겹이 접힌 소매 단 안에 그의 빡빡하게 끼워진 이두근이 두드러졌다. 맞춘 듯한 군복은 등판에 달라붙어 광배근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176 센티미터 키에 탄탄한 상체의 그가 군복에다가 까맣게 반짝거리는 군화를 착용한 모습은 언뜻 이등병처럼 보이지 않았다. 마치 날마다 퇴근하면 헬스클럽에서 몸매를 다지는 어떤 장교같이 제복의 멋이 배어 나왔다.

그가 이제 막 퇴소 된 신병 교육대대는 보병 제4사단 예하였다. 4사단은 다른 명칭으로 ‘작열하는 태양’ 부대라 불렸다. 그 부대 별칭처럼 그의 왼팔 위에 달린 원형의 사단 전투 근무 인식표는 정밀한 컴퓨터 자수로, 군청색에 가까운 파란 바탕 중앙에 주홍색 동그라미가 있고 그 주홍색 태양을 이글거리는 형상의 노란 불꽃들이 날름거리고 있는 도안이었다. 방금 전 그는 이미 ‘작열하는 태양’ 사단의 병사가 된 것이었다.


그가 육군 106 보충대에서 이틀을 지냈을 때 육군훈련소(陸軍訓練所)에서 이송되어 온 장정(壯丁)*1 100여 명이 합류했다. 3일간 틈날 때마다 작업에 동원되며 대기한 보충대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와 같이 곧바로 보충대로 입대한 장정들과 육군훈련소로부터 온 이들 200여 명 전원이 공급되는 부대는, 보충대 기간병(基幹兵)들의 표현대로라면 ‘오지게’ 재수 없게도, 4사단이라고 했다. 보충대 연병장에는 제1야전군(野戰軍) 예하 각 부대 마크들이 그려진 커다란 철판이 서 있었고 그중에 ‘작열하는 태양’ 4사단의 마크도 있었다. 마지막 날이라고 한 장정이 호기를 부려 기간병 병장에게 물었다.

“저, 그 ‘작살나는 태양’ 사단이란 데는 어떻습니까?”

기간병이 속으로부터 올라오는 웃음을 참느라 쿡쿡댔다.

“작살이 난다고……? 네 말 맞아, 이제 니들은 작살난 거야.”

장정들이 하얘졌다.

“그래. 거기는 철책 근무 서는 전투사단(戰鬪師團)이 아니고 그 밑에서 버티는 예비사(豫備師)야. 너 예비사가 뭔지 알아?”

병장이 창백한 그 장정에게 도리어 물었다. 물론 장정은 몰랐다.

“으이그, 지랄 났어. 내, 얘기해 줄게. 여기서 거의 전방 세 군단(軍團)으로 나눠 가. 군단엔 세 개 사단이 있는데 사단마다 하나씩 제일 뺑이치고 보급 개판인 예비사가 있지. 예비사 중에서도 사 사단은…….”

병장이 혀를 끌끌 차 댔다.

“말 말자. 하마부터 니들 기죽이기 싫으니까. 아무튼, 제대로 꼬인 거야.”

“예비……사가 그…… 그렇게 힘든 뎁니까?”

절망한 장정이 금방 죽을 것 같이 다시 물었다. 하지만 그에겐 ‘예비’라는 명사(名詞)와 ‘힘들다’라는 자동사(自動詞)가 잘 연관되지가 않았다. 어감으로는 ‘전투사단’이란 데가 훨씬 힘든 곳 같았다.

“이 불쌍한 청춘들아. 이름만 그래.”

병장은 예비사단인 4사단에 대해 브리핑을 시작했다.


보병(步兵) 4사단은 한국전쟁 발발 이전부터 존재했고 해병대와 함께 인천상륙작전에도 참가했다. 지금은 전투 근무 인식 부대 번호가 같은 4군단 예하의 예비사단으로 군단 관할의 동부전선 험산 준령 두 개 철책 사단의 배후를 받치는 사단이다. 유사시 ‘천지의 깃발’이라 불리는 19사단과 ‘광개토의 혼(魂)’ 10사단은 72시간 동안 버티고 후방으로 빠진다. 그때부터 4사단은 끝까지 전선을 사수하거나 북진(北進)한다. 같은 임무를 가진 다른 군단의 예비사들과 함께 엄청난 훈련 강도를 자랑하는 ‘메이커’ 사단이다. 4사단은 그 악명 높은 예비사들 중에서도 단연코 ‘캡 짱(cap–)’*2이다. 오죽하면 ‘알 보병 특수부대’라 불리겠는가.

“거기는 일 년 열두 달 훈련으로 죽어나. 훈련 없을 땐 작업이고. 이제 이해가 가냐? 내 거기 간다면 자살한다. 자살!”

병장이 다시 위로했다.

“……얘들아. 전생에 니들이 죄를 많이 지어서 그렇다고 생각해라. 그러는 게 마음 편해. ……×으로 밤송이를 까도 시간은 가. 너무 기죽지 말고 제 손가락 자른 놈처럼 딴생각하지 마.”

병장의 강의가 끝났다. 이야기만으로는 4사단은 무슨 숨겨진 특수부대였다.




*1 부역이나 군역에 소집된 남자.

*2 신어. 중·고등학생 사이에서, 싸움을 제일 잘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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