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 테

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1부

by 김욱래

그날 아침에 방수포를 열어젖힌 헌병대 지프차가 왔다 갔다. 어깨로부터 하얀 견실을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하얗게 반짝이는 엑스 반도에다 권총까지 찬 체포 복장의 헌병 세 명이 철렁철렁한 발소리를 내며 3층짜리 보충대 중앙 막사 뒤편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의무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붕대가 감긴 오른손에다 수갑까지 채워진 한 장정이 그 지프차에 실려 갔다.

장정들이 수군댔다. 그 장정은 여느 부잣집 아들같이 허여멀건 한 얼굴에다, 방구석에 틀어박혀 오로지 공부만 하고 있다가 들어온 것처럼 우묵한 눈에 꺼벙해 보이는 검정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뿔테 안경은 지난 삼 일간 작업시간 말고는 내무반 침상 한구석에 조용히 쭈그리고 앉아만 있었다. 보충대 마지막 그날의 아침점호 직후, 모든 장정은 한 명 열외(列外) 없이 4사단으로 이송된다는 전달이 있은 뒤였다. 내무반 청소 도중 검정 뿔테가 슬그머니 혼자 막사 뒤편으로 돌아가더라는 것이었다.

뿔테는 그 화장실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했다. 화장실 건물 외벽 밑 벽돌 모양의 시멘트 빗물받이에 뿔테는 제 오른손 검지를 올려놓고 작업 때 챙긴 묵직하고 날카로운 돌로 내리쳐 끊어냈다. 뿔테는 입영 전 몸에 이상이 있다며 몇 차례씩이나 병무청에 진단서를 제출했었다. 그 기관은 계속 서류의 심사를 미루었다. 뿔테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최종 영장을 받고 입대했던 터였다. 뿔테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몸부림은 소총의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 오른손 검지를 저 스스로 자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뿔테는 국가의 소유였다. 뿔테는 국가 기물을 심대하게 파손한 죄로 육군교도소(陸軍矯導所)에 가게 될 것이며, 5년 혹은 6년간 썩게 될 거라고 했다.

다리지 않은 군복이었지만 말쑥한 장교 타입의 장정 한 명은 전날 저녁에 먹었던 ‘두부 된장국’이 올라올 것 같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그 장정은 군복을 걸친 자신의 몸이 약간 머쓱하면서도 꽤 신선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그는 자신의 오른손 검지를 내려다보고 까딱까딱해보았다. 장정들 몇의 뒤를 따라 문제의 화장실 건물 입구 현장으로 갔을 때 그는 검게 응결된 핏물들이 빗물받이에 엉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소매 상박부에 붙은 ‘작열하는 태양’ 사단의 전투 근무 인식표는 바짝 다려진 카키색 군복과 잘 어울렸으며 대단히 강렬해 보였다.

그는 진짜 군인들만이 달 수 있는 소속사단의 마크를 비스듬히 내려다보았다. 약간은 뿌듯한 자긍심이 들었다. 또한, 그날 자대(自隊)로 전입하게 되면 일반 육군 용 카키색 민무늬 군복과는 다른, 그 부대가 수행한다는 특수한 임무들에 걸맞게 얼룩덜룩하고 허벅지 양쪽엔 건빵 주머니가 달린 우드랜드 패턴(woodland pattern)*의 위장복이 다시 지급될 것이었다.

그의 군모 챙 밑으로 여리고 하얀 피부의 얼굴 윤곽과 오뚝한 콧날이 드러났다.




* 나무나 숲이 많은 산악지형에서 위장 효과를 가진 얼룩무늬 패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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