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1부
오후 세시가 막 지났다. 13중대 연병장에 신병들 200여 명을 줄줄이 실어갈 각 부대의 육공트럭*1들이 도착해 한편에 늘어섰다. 4사단 예하 보병연대 세 곳과 1개 포병(砲兵) 연대, 사단 직할대인 공병(工兵) 대대와 통신(通信) 대대 등 각자 배치된 부대별로 줄 맞춰 서 있던 신병들이 묵직한 더플 백(duffle bag)을 메고 트럭들 화물칸에 승차하기 시작했다.
사단 직할 기습대대(奇襲大隊)로 차출(差出)된 열다섯 명의 신병 대열 앞으로 작은 가방을 각개로 멘, 오른쪽 가슴엔 타원형 빨간색 마크가 붙은 위장복을 입은 행정병 한 명이 심하게 다리를 쩔뚝거리며 걸어왔다. 잔뜩 얼어있는 제 신병들을 그 위장복이 막 인솔하여 가려는 참이었다.
“상진아, 잘 가라.”
구대 침상 바로 옆자리에 붙어 잤었고 6주간 어느덧 친구처럼 부대꼈던 135번에게 그가 소리쳤다. 기습대대 신병들 속에 줄 맞춰 섰던 135번이 더플 백을 맨 쪽 팔을 쑥 쳐들었다. 135번은 손을 흔들며 씩, 하곤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사단 직할 기습대대는 중간의 ‘대’를 하나 빼서 ‘기습대’라고 불렸다. 그와 장정들이 106 보충대에서 여러 대의 육공트럭에 나뉘어 태워지고, 다시 무슨 선착장에서 병력 수송선에 실려 넓고 긴 물길을 달리다가, 또다시 올라탄 또 다른 트럭들이 구불구불한 이 차선 도로를 타던 중이었다. 도로 양쪽 가로는 깎아지른 산들이 치솟아 있었다. 그가 머리 높이쯤에서 걷어올린 방수포 밑으로 고개를 젖혀 산의 높이를 보려고 했지만 굉장한 경사도 때문에 정상은 도통 보이지 않았다. 그는 지레 먹먹하고 암담해졌다. 그렇게 한 시간쯤 달렸다. 트럭들은 어느 자그마한 면 소재지에 접어들면서 속도를 늦추었다. 그때 그는 주황색 페인트칠이 벗겨진 양철 슬레이트 지붕의 허름한 상점과 식당들이 띄엄띄엄한 인도 블록을 걸어가는 군인들을 보았다. 그들은 일반 군인들처럼 카키색 민무늬 군복이 아니라 바지에 건빵 주머니가 달린 얼룩덜룩한 위장복에다 위장모를 쓰고 있었다. 게다가 선명한 빨간색의 타원형 마크가 상의 오른쪽 가슴주머니에 강렬히 붙어 있었다. 그들의 인상에서 그는 특별한 감동을 받았다. 느꼈다. 위장모 챙 아래쪽 거무스름하게 그을린 얼굴, 성깔 있고 억세 보이는 몸집들에 걸친 얼룩무늬 군복, 가슴팍에 강렬한 붉은 마크로 보아 필시 일반 보병들은 아닐 거라고 짐작했다. 그가 곧 알게 될 것이었지만 그 부대원들은 4사단 직할 기습대 소속이었다. 그 기습대의 한 개 중대는 예전엔 전군 유일의 스키부대였다. 그러다가 1980년 초 그 부대의 스키 작전 임무는 육군 특수전사령부로 이관되었다.
다리를 절던 행정병이 기습대 신병들에게 맥도 없이 느긋하게 하던 목소리가 지금까지 남아있던, 보병연대나 다른 사단 직할부대로 배치되는 신병들에게까지 여운을 남겼다.
“느그 군번들은 운도 좋아. 천리행군(千里行軍)*2도 빼먹고. 지금 내가 빨리 걷질 못해. 부대도 가깝고 나한테 맞춰서 널널하게 가자. 느그 군 생활은 꽉 남았어.”
무슨 말인지 잘 몰라서 갸웃거리는 기습대 신병들이 미적미적 위장복을 따라갔다.
“느그 부대 가면 못 걸어 당겨, 삼 주 동안은. 비호(飛虎) 교육―4사단 기습대 신병 집체 기습 교육―들어가면 반쯤 죽지. 그런데 뭣 하러 우리 부대 오냐? 그래…… 느긋하게들 가자.”
위장복이 혀를 끌끌 찼다. 신병들의 어깨는 그때부터 서야 쳐지기 시작했다. 135번의 등허리도 풀려있었다.
마지막 트럭이 사단 공병 대대 병력을 실어갔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거의 실체가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사단 직할대인 정찰대(偵察隊)로 차출된 그와 동기 세 명은 이제 자신들만 연병장에 남겨진 것을 확인했다. 그들은 서로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있었다.
“우권아. 우린 더 열나게 빡세겠지?”
면도질을 하루만 걸러도 널찍한 구레나룻이 온통 거무튀튀해지는 유기철이 사병 같지 않게 자세가 꼿꼿한 데다가 귀티 나게 흰 살결의 제 동기에게 물었다. 우권이라 불린 그의 눈매는 겁 같은 건 없어 보였고 태도엔 어떤 여유가 있었다. 산적 두령 같은 인상의 유기철이 무슨 애들 마냥 불안해했다.
“더 빡센 게 더 낫지 않냐?”
피식 웃으며 그가 되물었다. 원래는 헌병이 되고 싶었던 유기철의 시커먼 얼굴이 더 새까매졌다. 조밀한 곱슬머리가 돼지 털같이 뻣뻣한 유기철이 그럴 땐, 생겨 먹은 것과 달리 어딘지 귀여운 구석이 보였다. 유기철이 가고 싶었던 헌병대의 신병은 106 보충대와 4사단 신병교육대에서는 뽑지 않았다. 보충대에서는 장정들이 가지고 있는 무술 단증이나 운전면허증, 각종 기술 자격증 등을 조사했었다. 유기철은 수도방위 사령부 헌병단이나 그게 안 된다면 그냥 일반 사단 헌병대라도 가고 싶은 마음에 유도 2단이 박힌 소단증(小段證)을 제출했었다. 헌병으로 뽑히고 싶다면 일단 논산훈련소로 배정되어야 했지만, 유기철은 미리 그런 정보들을 챙기지 못하고 입대한 것이었다.
이제껏 남겨진 신병 네 명도 처음엔 4사단 신병교육대 입소식 직후의 사단 직할대 신병 차출에서 모두 기습대 인사계에게 이름을 적혔었다.
그는 옆자리에서 정이 든 135번과 같이 가게 되어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자신이 기습대로 떨어지게 된 것이 별로 마음에 차지 않았다. 기습대로 차출된 신병 중에 마이크 타이슨(Mike Tyson)*3을 꼭 닮은, 그 인상이 장난 아니게 험상궂은 옆 구대 훈련병도 있었다. 그 타이슨은 제가 마치 무슨 제왕이라도 되는 양 중대를 거드럭거리면서 휘하에 자기보다는 약간 덜 험상궂은 인상파 몇을 대동했다. 짧고 두터운 목에다 대흉근이 보기 싫을 정도로 불거진 그 인상 더러운 타이슨은 조교만 보고 있지 않으면 아무리 교육 도중에라도 그에게 어깨를 부딪치며 기(氣) 싸움을 걸어대곤 했다. 그는 흉악스러운 타이슨이 자신에게 자꾸 시비를 걸어대는 이유를 생각해 냈다. 장정들이 보충대에서 대기할 때, 태권도 3단―당시는 태권도 유단자도 별로 없었을뿐더러 3단은 결코 지금처럼 흐물거리는 단수가 아니었다.―인 그가 ‘리썰 웨폰(Lethal Weapon)’*4이라 불리며 그곳 기간병들의 발차기를 체크해 준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타이슨의 배알이 꼴렸을 터였다. 보충대 기간병들이 그를 ‘사범님’으로 모시는 것을 타이슨도 보았던 것이었다. 그는 타이슨 휘하의 한 인상 씩 하는 패거리들 거의 다 차출된 기습대에는 영 마음이 걸렸다.
그 역시 106 보충대에서 어떤 부대들로 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아는 바 없었기는 마찬가지였다. 보충대에 제출된 태권도 소단증 때문에 그도 무조건적으로 기습대로 차출되었다. 물론 정 그 부대로 가기 싫으면 자신 없다며 빼고 버틴 후 그냥 보병연대로 떨어져서 소총수(小銃手)가 될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소총수는 싫었다. 내심 그가 가고 싶었던 부대는 4군단 직할 304 공정 연대(空挺聯隊)였다. 한번 하는 군 생활 힘들더라도 더 강하게, 더 멋지게 해보고 싶다고 그는 희망했다. 그러나 그 후, 그 존재 자체도 들어보지 못했던 정찰대가 기습대로 이미 차출된 열아홉 명 중에서 그를 포함 네 명을 다시 차출했다. 기습대에 차출된 훈련병 중에는 키가 큰 태권도 4단짜리도 한 명 있었다. 정찰대는 그 안경잡이를 제외시켰다.
*1 제식 명칭 K-511. 흔히 육공트럭(미국 AMG 사의 모델 명칭 M602) 내지는 ‘두돈반(2.5톤)’이라고 부르는 한국군 수송대의 주역 트럭. 1978년부터 운용되었고 포병과 보병 대대급 부대의 전투 지원을 위한 핵심 장비로, 105㎜ 포를 견인하거나 차량 1대당 완전군장을 마친 24명의 보병을 수송할 수 있다.
*2 한국 특작 부대의 훈련 중 하나로 400km를 일주일 이내에 행군하는 훈련.
*3 ‘핵 주먹’으로 유명했던 미국의 전 권투선수.
*4 1987년 작 미국 액션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