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1부
지난 6주간의 신병교육대 생활은 그에게 벌써 왠지 모를 향수를 일으켰다. 13중대엔 기간병인 박 일병과 같은 인물도 있었지만, 일반하사*1 땡비 조교처럼 멋진 군인도 있었다. 그는 친정 식구들이라도 되는 양 그들에게 어떤 그리움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그와 200여 명이 106 보충대로부터 트럭을 타고, 배를 타고, 다시 트럭에 올라 4사단 신병교육대의 정문 앞에 내렸을 때 대단히 멋진 광경이 펼쳐졌었다. 햇빛에 번쩍이는 까만 ‘하이바’를 예비 훈련병들이 자신들의 눈을 볼 수 없도록 내려쓰고 흰 글씨가 박힌 검은 완장을 찬 조교들이 대대 연병장의 사열대 양편에 자로 잰 듯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다. 마네킹처럼 무표정한 그들은 하얀 장갑을 낀 손들을 아주 천천히 올리면서 정확히 세 번 동일한 동작으로 소리 없는 박수를 쳤다. 그게 유일한 환영 제스처였다.
“선두 정지! ……뒤로 돌앗!”
예비 훈련병들의 대열이 도열 된 마네킹들 앞까지 행진해 갔을 때 그 마네킹들의 대장인 듯한 ‘하이바’가 전혀 억양 없는 음산한 저음으로 입술을 약간 열었다.
“세면 백을 입에 문다. 위병소 돌아서, 연병장 왼쪽 물탱크 찍고, 아홉시 방향 화장실 돌아서 선착순~ 한 명!”
200여 명 400여 개의 군홧발이 땅을 울렸다. 금세 연병장은 싯누런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전장이 됐다. 마네킹 대장은 그런 식의 선착순을 총 아홉 번 실시했고 아홉 명의 우승자가 뽑혔다. 그러나 대장 마네킹은 무슨 우승 메달 같은 준비하지 않은 듯했다. 마네킹들은 사람들을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있었고 굉장히 노련했다.
훈련병들의 혼을 쏙 빼어놓으며 정신없는 날들이 지나갔다. 그러던 중에 그는 개성 넘치는 인물들 몇을 볼 수 있었다. 그중 하나는 그가 속한 1구대 내무반 조교 보조 박 일병이었다.
“키·상! 어이, 캐 새키들 팔·리·팔·리 안―일어―날―래?”
매일 아침 박 일병은 말의 끝부분이 착 가라앉는 오싹하고도 특유한 목소리로 길쭉하게 소리쳤다.
“통·작 보지! 팔·리·팔·리 모포 개고 안―튀어―나―갈―래?”
박 일병의 목소리는 바닥에서 팔팔 끓던 물이 금방 바싹 졸아드는 것 같았다. 원래부터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독특했거나, 아니면 그렇게 이상하게 내려고 일부러 많은 노력을 기울였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었다. 여하간, 훈련병들을 고양이가 쥐 다루듯 다루는 솜씨로 봐서 나중에 유능한 조교가 될 싹수를 가진 탁월한 인재인 것은 분명했다.
박 일병은 왕복 하루 여섯 번의 식사 행진 담당자이기도 했다. 그는 예비 조교로서의 내공(內功)을 착실하게 쌓아가는 중이었다. 13중대 연병장에서 시작하여 600여 미터 떨어진 대대 취사장까지의 행진을 인솔할 때마다 섬세한 박 일병은 훈련병들의 제식과 군가 등에서 약간의 미비점이라도 발견하면 조금도 놓치지 않고 문제의 부분을 신랄하게 지적했고 열정적으로 재교육했다.
“선투(두)~정지! 앉아. 머리에 식판 인다. 오리 컬음―앞으로. 캐 새키들 팔·리·팔·리 안―갈―래?”
자주 ‘ㄱ’을 ‘ㅋ’으로, ‘ㅂ’을 ‘ㅍ’으로 발음하는 그 독보적인 목소리는 170 센티미터가 안 되는 옹골찬 몸집과, 목이 없어서 어깨 위에 그대로 착 달라붙은 얼굴의 하단 부, 언제나 힘이 들어간 건강미 넘치는 선홍빛 입술 틈새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었다. 그 머리통은 어쩌다가 분리되어 초강력 순간접착제로 꽉 붙여 놓은 것처럼 몸통과 움직임을 같이 했다.
물이 졸아붙는 듯한 그 특유한 음색은 팔자로 쳐진 눈매와 너무 턱에 자주 힘을 주는 바람에 두 겹으로 잡힌 턱살과도 잘 어울렸다. 성량도 대단히 풍부해서 훈련병들은 먼 곳에서도 바글바글 끓는 것 같은 박 일병의 괴상한 목소리가 들리면 자동적으로 치가 떨렸다.
13중대 훈련병들이 신병교육대에서의 첫 일요일을 맞았다. 한 시간을 더 재워줘서 일곱 시에 기상한 것까지는 좋았다. 훈련병들이 아침 식사를 하고 복귀하자마자 작업 집합 방송이 흘러나왔다. 훈련병들이 실망 섞인 얼굴로 웅성거리기 시작하자마자 이내 그럴 줄 알고 숨어서 대기라도 하고 있었던 것처럼 박 일병은 바로 등장했다.
“캐 새키들! 훈병이 일요일이 어딨―나. 팔·리·팔·리 집합 안―할―래?”
훈련병들은 기겁하며 뛰어나갔다.
“오늘이 말이야. 일요일인데 말이야. 평일엔 여러분들 교육을 해야 한단 말이야. 오늘 같은 휴일에 말이야. 작업을 좀 해야 되겠단 말이야. 조교들에게 심하게 시키지 말라 했으니까 말이야. 그렇게 힘들지 않을 거란 말이야. 오전 중으로 빨리 끝내고 말이야, 편히 쉬도록 하잔 말이야. 전체 알겠냔 말이야?”
중대 인사계가 그렇게 훈시했다.
작업은 신병 교육대대와 담장 하나를 두고 붙어있는, 빗물로 군데군데 파인 군인 아파트의 마당에 마사토(磨砂土)*2를 깔아 채우는 것이었다. 그 마사토라는 흙을 논두렁길로 1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야산에서 파내어 ‘단까’*3라 불리는 들것에다 담아 날랐다. 단까는 2인 1조로 앞뒤에서 잡는 것이었다. 단까들이 왕복하는 논두렁길 중간중간에 선 조교들이 뛰지 않는 단까조들을 색출하여 즉결처분했다. 상공에 박힌 4사단의 태양이 작열했고 물을 댄 논들에서는 뿌연 김이 아른댔다. 오월 중순이었지만 한낮의 열기는 작업병들의 체(體)수분을 바짝바짝 고갈시키고 있었다.
그가 논두렁 길을 왕복한 횟수를 세다가 나중엔 잊어버렸을 때였다. 그는 아파트 뒤편 담쟁이덩굴 그늘 안에서 제 혼자 공기놀이를 하고 있던 열 살배기 정도의 여자아이를 발견했다. 그가 손짓해 불러보았으나 소녀는 고개만 쳐들고 왜요, 라고만 물었다. 작업 현장을 벗어날 수 없었기에 그가 먼 거리에서 아파트가 그녀의 집이냐고 물었고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녀에게 집에 가서 찬물 한 바가지만 떠다 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해보았다. 소녀는 그러마 하고 출입구 계단으로 걸어 올라갔다. 그가 소녀에게 물심부름을 시키는 것을 보았던 다른 두 조도 단까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쏟아놓은 마사토를 군홧발로 열심히 펴 대며 타들어 가는 갈증을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 물을 떠오겠다던 소녀는 끝내 내려오지 않았다. 계속 땅만 고르면서 있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여자애와 그녀의 부모까지 저주한 후 어쩔 수 없이 단까를 어깨에 메고 채토장으로 뛰어갔다.
삶을 듯한 태양이 하늘 복판으로 옮겨붙었다. 작업병들의 눈에 드디어 뭔가가 보였다.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길쭉한 스테인리스 식수통 서너 개를 조교 보조들이 맞들고 오고 있었다. 희색이 만연해진 그와 동료들이 은빛 식수통을 향해 꿀꺽대며 마른침들을 넘겼다. 작업은 잠시 중지되었다. 작업병들은 식수통 앞에 일렬씩 줄을 서서 그 생명수를 넘길 차례가 오기만을 절박하게 기다렸다. 그런데 그의 줄은 하필 식수통을 잘 못 선택했다. 그 식수통의 배식 담당자는 바로 박 일병이었다.
토질이 나쁜 신병 교육대대에선 희뿌연 수돗물을 마시지 못하게 했다. 먹는 물은 배탈과 설사, 병균 등의 위험 때문에 언제나 뜨겁게 끓여져 있었다. 박 일병은 식수통 아래쪽에 붙은 꼭지를 눌러 일 인당 딱 반 컵씩 그 뜨거운 물을 빼주고 있었다. 작업병들은 한 모금밖에 안 되는 그 물을 후후거리며 몇 번씩 끊어 마시고선 소금까지 받아먹었다. 박 일병이 책정한 분량의 물을 마시고 난 작업병들도 식수통을 향한 미련의 눈길을 끝내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식수통과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가며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그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꼴들을 보면서 점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가 파란색 플라스틱 컵을 식수통 꼭지 밑에 들이대었을 때도 박 일병은, 지금껏 그래왔고 자신은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고 확신하는, 공평무사하지만 제 맘대로 정해놓은 빌어먹을 정량만을 따라주었다. 그는 짜증스럽다는 듯이 그 뜨거운 물을 한 번에 털어 넣었다. 순간 박 일병의 팔자 눈이 더 작아졌다. 그는 다시 빈 컵을 갖다 댔다. 박 일병이 그에게 쌍욕을 뱉은 후 을렀다.
“컵 놓고 안―갈―래?”
“더 마셔야겠습니다.”
그가 싸늘하게 말했다. 박 일병의 힘 있는 입술에서 다시 쌍욕이 터져 나왔다.
“이 새키―, 캐기는 거야?”
벌겋게 낯빛이 달아오른 박 일병의 팔자 눈이 그의 위아래를 훑었다.
“아닙니다. 그런데 물은 더 마셔야겠습니다.”
그의 대답은 조용했지만 단호했다. 그의 나직한 목소리 밑바닥엔 어떤 증오가 배어 있다는 것을 박 일병도, 다른 작업병들도 느낄 수 있었다. 박 일병은 계속 그런 상황이 진행되다가는 자신의 체면이 엉망이 될 것임을 서둘러서 알아챘다. 그리고 일을 이따위로 만들어 가는 저주스러운 훈련병을 쏘아보며 이를 악다물고 말했다.
“좋―타. 물은 터(더) 주겠다.”
박 일병은 그러면서도 사이에 또 쌍욕을 씨불였다.
“그러나 이후부터 백삼십사 번. 네놈을 주시하겠다. 아르―겠―나?”
허세를 떨긴 했지만, 박 일병은 왠지, 자신이 쌓아온 악명 높던 조교 보조의 명성이 한낱 연기였을 뿐임이 모두 들통 난 것 같은 불안하고 초조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섬뜩한 훈련병으로부터 느낀 원인 모를 공포에 기가 콱 질려버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가 박 일병의 기를 제압해버린 후부터는 작업병들은 각자 제 양껏 씩 물을 마실 수 있었다. 작업은 끝내 오후까지 이어졌다. 계속 구부린 채 뒤통수에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삽질을 하고 있던 작업병 두 명이 연달아 일사병 증세로 쓰러졌다. 그 둘은 단까가 아닌 들것에 실려 갔다. 그들 덕분에 작업은 겨우 종료되었다. 작업 복귀 후 중대장은 박 일병을 포함한 인솔 조교들을 문책했다. 13중대장은 환자 발생의 책임을 조교와 조교 보조들에게 지웠다.
“어떻게 된 거야? 관리를 도대체 어떻게 했느냔 말이다. 내가 소금 먹이고 물도 충분히 주면서, 가끔씩 그늘 같은 데서 휴식도 시켜가면서 하라고 했나 안 했나. 이 새끼들아. 보고 올라가면 너희들은 영창이야, 새끼들아.”
중대장의 문책, 아니 책임 전가 때문이었는지 그에게 박 일병의 보복 같은 것은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박 일병이 인간으로서는 감내하기 쉽지 않은 엄청난 인내심을 발휘했을 수도 있었다. 그때 사실 박 일병에겐 그 훈련병의 눈빛이 너무나 무서웠었고, 그게 그의 기억 속에 계속해서 각인되었다. 박 일병은 그 어처구니없는 훈련병이 어서 빨리 퇴소하기만을 바라게 되었다.
*1 1950년 이전까지의 한국군은 모병제였기 때문에, 1961년까지 병은 이등병과 일등병으로만 나뉘어 있었으며, 상등병은 하사였고, 병장은 이등중사, 하사는 일등중사, 중사는 이등상사, 상사는 일등상사였다. 이후 1961년 부사관 계급이 직업군인으로서 자리 잡으면서 하사 계급은 징집병인 병장의 위로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하여 종래 하사와 이등중사 등 현재 병에 해당하는 부사관 자원이 줄게 되었다. 따라서 입대 1년 전후의 징집병 중 지원에 의하지 않고 선발하여 사단별 하사관 학교에서 6주간 교육한 후 하사로 임용하는 일반하사 제도가 도입되면서, 하사는 단기하사와 일반하사로 나뉘게 되었다. 일반하사는 일반병과 같은 기간을 복무했었고 급료나 복장에 있어서 부사관이 아닌 병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 1994년 이후 병 중 차출되어 임용된 일반하사는 폐지되었다. 이들의 월 기본급은 병장의 2배 정도였다.
*2 화강암이 풍화되어 생성된 흙으로, ‘화강토’로도 불린다.
*3 담가(들것)의 일본식 발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