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불나비

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2부

by 김욱래

손정원의 조곤조곤한 지시에 따라 그는 더플 백에서 꺼낸 얼룩무늬 반바지와 건네받은 축구티셔츠로 갈아입었다. 토요일 오전이 지나 점심을 먹고 났는데도 신병교육대에서의 연락, 즉 포상휴가와 관련된 얘기는 역시 없었다. 반들거리는 흰색 티셔츠는 빨간 세로줄들이 굵직하게 쳐 있었다. 왼쪽 가슴엔 해골에다가 찢어진 우산 같은 날개가―아마도 해골 머리의 검은 박쥐를 표현해보려 한 것일 터였다―, 등판엔 둥글게 ‘불나비’라고 찍혀있었다. 그는 1 내무반 출입문 안쪽 상단에 큼지막하게 걸려있는 너덜너덜하게 헤진 무슨 나방 비슷한 그림과 티셔츠 등판에 찍힌 글씨로 보아 3소대를 그렇게 부르기도 하나보다 했다. 도깨비소대라든지 고릴라 소대 같은 식으로. 재수 없는 작명이었다. 불을 찾아 날아드는 것까지야 그렇다 쳐도 적에게 어떤 타격도 입히지 못하고 제 몸뚱이만 불살라버리는, 밤무대 뛰는 연예인, 어떤 삼류그룹사운드의 그것처럼 우매하고 자학적이며 퇴폐적인 이름을 애초에 누가 제안했으며 어떻게 그걸로 결정되었는지도 의아했다. 그러나 불나비가 됐든 불사조가 됐든 그런 게 크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20250820_121024_1.jpg

신병들이 받아 가지고 들어왔던 새 하늘색 활동화는 벌써 수거되어 하사나 병장들 이름이 매직펜으로 굵다랗게 쓰여 있었다. 헌 활동화도 전부 주인이 있는 것들이었다. 막사 출입구 바깥쪽 신발장에 쓰레기처럼 마구 쑤셔 박혀있는 헤지고 구저분한 활동화들은 모두 그의 발에 작거나 너무 컸다. 그는 먼지가 켜켜이 쌓인 더러운 신발들을 뒤적거리다 간신히 발을 끼워 넣을 수 있는 걸로 한 짝씩 겨우 찾아 신었지만, 발가락이 곱아서 이내 걱정이 들었다.


사열대 앞에 3소대와 1소대가 집합했다. 2열 종대는 전날 저녁 동기와 그가 위병들을 메다꽂고 때린 항공대 정문을 나서서 도로 건너 맞은편 사단사령부 진입로로 올라갔다. 길가 풀 비탈의 굵다란 밤나무마다 허연 밤꽃이 흐드러져 있었다. 끈적하고 후끈하게 데워진 공기와 버무려진 특유의 진하고 비릿한 정액 냄새가 시큼하게 콧속으로 파고들었다. 갓난애가 토해대는 삭힌 우유 같은 냄새를 한참 동안 들이키던 인원들이 사단사령부 연병장에 도착해서 양편으로 도열했다. ‘불나비 3소대’와 ‘코브라’ 1소대 간의 축구시합이라고 했다. 그제야 그는 이제 곧 자신이 불구덩이에 빠진 불나비 신세가 될 것임을 알았다. 불나비 팀의 병장 하나가 벌써 몸이 굳어버린 그에게 물었다.

“너 볼 잘 차지? 태권도가 삼단이라니까 잘 차겠지?”

그의 볼이 후끈 달아올랐다. 그는 대답이 크게 나오지 않았다.

“이병. 나우권, 공은 잘 차지 못합니다.”

“뭐 이 새꺄? 신병이 잘 못하는 게 어딨어? 뒈지고 싶어?”

병장이 곧바로 빽, 소리 질렀다. 병장 옆의 상병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난감했고 막막했다.

“이병. 나우권,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렇게만 대답했다.

“운동 많이 했으니까 운동신경이 있을 거 아냐? 볼 차는 거 한번 보겠어.”

병장이 기대했다.


연병장은 그에게 점점 더 광활해졌다. 암담한 가슴팍은 초조하게 들뛰었다. 남들이 공을 쫓아다니며 고함을 지르거나 서로 욕설을 퍼부어대는 것은 잠깐씩 몇 번 보긴 했었지만, 그는 그런 짓에 직접 관여해 본 적은 없었다. 축구가 팔만 쓰지 않고 어떻게든 상대편 골문 안에 공을 집어넣는 경기라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그거 말고는 포지션이 어떻게 되는지, 패스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아니 그전에 공을 발의 어느 부분으로 차야 하는 건지도 도통 모르고 살아왔었다. 피차 아무 관계없이 지내왔던 축구가 갑자기 그의 아킬레스건이 되려 하고 있었다.

국민학교 때부터였다. 수업이 파한 후엔 운동장에 아이들 여럿이 남아 축구를 했다. 그 애들이 공을 쫓아 달릴 때 그는 서둘러 집에 가야 했다. 언젠가 몇 번 하굣길 방죽 길 아래 개천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늦은 적이 있었다. 그런 날 저녁은 결코 돌아보고 싶지 않은 악몽이었다. 축구? 그런 건 별나라 사람들의 얘기였다. 그는 중학생 때도, 고등학교에서도 특히 축구에는 끼지 않았다. 그는 유별난 부친 덕분으로 그렇게 축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중학교 때 어떤 계기로―그날 그는 분해서 울었다―그는, 길길이 뛰는 부친의 강압과 통제―그가 반 친구들에게 꾼 돈으로 산 도복은 두 번 찢겼다―를 무릅쓰고 끝내 태권도수련을 시작했다. 그것은 축구와는 전혀 관련 없는 격투기로 사람을 차는 것이지 공이나 차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그랬기 때문에 그는 태권도 발차기가 좋았다. 그는 공이 싫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둥글고 불확실한 물체가 정말로 싫었다. 그런데 그런 공 때문에 무참하게 부서져 내릴 자존심을 생각하니 어린 시절부터가 원망스러웠다. 태권도 방식 발차기는 기막히게 잘한다 해도 건드려보지도 않았던 축구공을 제대로 다룰 순 없는 노릇이었고, 또 그런 요행은 불가능했다. 물에 푹 젖은 마사토를 퍼 담고 있는 마대자루처럼 몸뚱이가 계속해서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그는 곧 닥쳐올 길고 끔찍한 시간들 앞에 그냥 허우적거려 댈 것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전, 후반전 한 시간 삼십 분씩의 시합이 기필코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그는 이리저리 기하학적으로 튕겨가는 공만 보고 무슨 강아지처럼 열심히 쫓아다니기만 했다. 양쪽 축구 골대는 멀어서 150 미터쯤 됐는데 그에겐 1 킬로미터도 넘는 듯 가물가물했다. 그 드넓은 연병장엔 들쑥날쑥한 돌멩이들이 수도 없이 박혀있어서 지면에 떨어진 공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튀어 올랐다.

“야, 이 새꺄. 공 가잖아. 저 새끼 어디로 뛰고 있어. 이리로 패스해.”

멀찍이서 소대 병장 하나가 옆쪽으로 껑충거리며 욕지거리를 해댔다. 당황한 그가 그쪽으로 엉겁결에 발길질을 했으나, 발끝으로 걷어찬 공은 회전을 먹으며 1소대 주전에게로 정확히 굴러갔다. 그의 뒤통수 쪽에 욕설들이 터졌다. 전반전에서 그는 세 번 헛발질을 했고, 결코 고의가 아니었지만, 코브라 선수에게 두 번이나 패스했다.


전반전을 종료하는 호각소리가 울렸다. 즉시 몸을 날려 온 소대 병장 하나가 그의 따귀를 후려갈겼다.

“이 새끼! 이거 개발 아냐? 대가리 박앗, 개새꺄.”

쌍욕과 함께 병장의 축구화 발이 그의 가슴팍에 꽂혔다.

“으이구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볼 한 번 안 차 본 새끼 아냐?”

그는 참담하다 못해 죽고 싶었다. 손정원이 멀찍이서 아연하게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건 동정의 시선으로 바뀌었지만, 곧 손정원은 물 주전자를 들고 뒤돌아, 연병장 가 한쪽 가에 늘어져 있는 소대 선임병들 쪽으로 뛰어갔다.

그는 연병장 한복판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가랑이 사이로 뒤집힌 하늘은 잔인한 코발트색이었다. 무참한 태양이 내리쏘는 볕은 따끔따끔하게 등짝을 찔러댔고, 그의 바로 옆 지면에 人(사람 인) 자를 만들고 있었다. 그는 군대 오기 전에 전해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교문 바로 곁에 파출소가 있었다. 거기의 파출소장이 1학년 때 같은 반 반원의 아버지였다. 그의 그 외동아들은 별것 아닌 것에도 해맑게 잘 웃었고 소심하며 존재감이 없었다. 그런데 그 파출소장은 그릇된 부정(父性)으로 자식 자식을 죽였던 것이었다. 그 경찰관의 아들이 죽고 나서 들었던 바로는, 자기 자식을 학교 이외에는 집에만 가둬두다시피 하고 친구 한 명 사귀지 못하게 했으며 운동이라고는 집 마당에 샌드백을 걸어두고 그것만 치는 것으로 대신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성장한 자식은 논산훈련소로 갔고 이유 모르게 특전병*로 차출되었는데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부대 내에서 ‘사고사’로 처리되었다. 실은 군대 생활에 적응’ 못하고 자살한 것이었다. 외동아들이 죽자 그 아버지는 경찰관을 그만두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차라리 후반전을 뛰는 대신 자갈땅에 머리만 박고 있기를 바랐다. 그게 훨씬 나을 것 같았다. 희망은 무너졌다. 그는 다시 불려 나갔다.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은 감당할 수 없는 수치심과 공에 대한 질식할 것 같은 공포로 그의 얼굴은 내내 시뻘겋게 달아 있었다.


저녁 해가 산줄기에 걸리기 시작했을 때에야 가까스로, 악몽만 같던 축구시합이 끝났다. 3소대는 1 대 3으로 졌다. 3 소대원들, 특히 병장급들은 분했지만 분해서 침묵했고 이젠 그를 노려본다거나 욕지거리를 하진 않았다. 사단사령부 확성기로부터 석식 시간임을 알리는 군가가 울렸다.


너와 나 조국 앞에 바친 젊음이

자유와 평화 위한 길이라면은

이 젊음 바치리라 이 목숨 바치리라.




* 육군 특수전사령부에 소속된 병으로 전투지원 및 행정보조 임무를 수행한다. 2007년 이전에는 육군훈련소에서 인원을 차출했다. 2001년도까지 특전여단의 중대와 지역대에도 특전병이 편성되어 전투 보직이 있었다.

keyword
이전 04화관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