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2부
그의 다리는 계속 후들거렸다. 참담함 속에서 그는 막사까지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몰랐다. 그는 정신이 빠져나간 것처럼 멍한 상태로 보충대에서 지급받았던 체육복을 더플 백에서 꺼내 입었다―그건 영화에 흔히 나오는, 미국교도소의 죄수복처럼 선명한 주황색이었다―. 취사장에서 소대 일병 하나가 허옇게 온통 긁힌 흠집투성이의 플라스틱 황토색 식판에다 타다 준 저녁밥을 그는 주위의 눈치를 보며 꾸역꾸역 욱여넣었다. 그런 다음엔 조금 남은 국물과 반찬을 식기세척장 외벽에 붙어있는 잔반통에 버리고 식기세척장으로 들어섰다. 사각 스펀지에 빨랫비누로 낸 거품을 묻혀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식기 조들에게 입장 경례와 퇴장경례를 붙이고 내무반으로 뛰어와―그는 뛰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지만, 최재필에게 뛰어야 한다고 배웠다―그의 관물대 앞에 차렷 자세로 앉아서 자신이 놓이게 된 모든 상황이 너무 억지스럽고 터무니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다. 내무반출입문이 열리더니 정수리가 뾰족하고 대단히 못생긴 누가 그를 쳐다보면서 오른손 검지를 까딱거렸다. 좀 전에 그가 식판을 건네고 온 소대 식기 조였다. 그 식기 조는 황급히 일어나서 관등성명을 외친 그를 끌고 정찰대 막사와 약간 간격을 띄워서 이어진 항공대 막사 둔치 아래 족구장 쪽으로 앞서갔다.
식기 조의 군청색 체육복 등판에는 아치형으로 노란 헝겊의 정찰대라는 한자(漢字)가 한 자씩 오려져 오버로크(overlock)*되어 있었다. 그 체육복은 따로 맞춘 것이었는데 티셔츠처럼 입어야 하는 군용과 달리 지퍼를 다 내려서 입고 벗을 수 있게 된 거였다. 소매와 바지에 노란 옆선이 있었고, 왼쪽 가슴엔 그 ‘불나비’ 축구티셔츠와 똑같은 찢긴 우산 두개골이 노란 바탕천에 찍혀있었다. 그래도 신병들의 군용 주황 체육복보다는 훨씬 있어 보이는 것이었다.
잡초가 무성한 비탈 아래, 네트가 축 늘어져 있는 족구장은 정찰대 막사와 행정반 건물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무엇 때문인지 족구장으로 그를 데려온 식기 조 상병 서정락은 172 센티미터나 될까 한 키에, 좁다란 새가슴은 앞으로 돌출되었고, 짧은 다리에 올려 붙은 엉덩이는 얄밉게 튀어나와 있었다. 머리통 모양이 특히 독특했는데 광대뼈가 나온 데다 가 턱과 이마가 좁아 들어서 흡사 소위 계급장처럼 마름모꼴이었다.
“지금부터 작게 대답해. 저쪽에 소리 들리지 않게.”
가재같이 째진 눈에 눈썹의 터럭들은 양산박에서나 볼 수 있을 어느 두령의 그것처럼 한 올 한 올 제각기 따로 뻗쳐 올라간 그 상병이 그렇게 하라고 해서 그는 나지막하게 알겠다고 했다. 상병의 그것은 어떻게 보면 용맹한 눈썹이었지만 마름모꼴 얼굴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양 볼 구레나룻 자국은 징그럽게 시커멨다. 한마디로 서정락은 희극적인 용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그에게 약간의 측은지심이 들게 했다. 정찰대가 처음 만들어질 때는 대원들의 용모는 따지지 않았던 듯싶었다. 재수 없는 가재 눈의 서정락이 야비하고 끈적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이 새끼…. 아침에 박일동 병장한테 싸제 빤스 걸렸지? 이 ×새끼 × 나게 빠졌어?”
그 순간 발이 솟구치더니 그의 가슴에 박혔다. 그는 숨통이 탁 막혔다. 하지만 그는 차려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려고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며 관등성명을 토해냈다. 한 대마다 관등성명. 최재필에게 배운 것이었다.
“내가 교육담당이다. 신병이 × 나게 빠졌다고 첫날부터 × 같은 소리를 듣게 만들어?”
서정락은 제 말을 끝냄과 동시에 어떤 행위를 하는 습관이 있는 것 같았다. 서정락의 손바닥이 이번엔 그의 왼뺨을 갈기고 지나갔다. 그날 두 번째로 얻어터지는 볼때기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지만 그는 다시 관등성명을 뱉었다.
두어 번 때리고 나더니 좀 기분이 풀렸는지 서정락은 이번엔 니글거리는 목소리로 이죽거렸다.
“너 삼 단이라고 했지? 어디 자세 나오나 함 해봐. 태극 육장 준비!”
그는 서정락의 느끼하고 끈적대는 음성이 점점 더 견디기 힘들어졌다.
“유급자 품새는 오래돼서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입대 전 근 일 년 동안 도장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 태극 6장이 어사무사했다. 그는 먼저 그 빌어먹을 관등성명을 대고 나서 조심스레 양해를 구했다.
“다른 거 하면 안 되겠습니까?”
“이―새끼 봐라. 진짜 삼 단 맞아?”
서정락이 비꼬았다.
“그럼 팔장은?”
그는 태극 8장보다는 3단 품새 평원―그는 고려 품새로 1단, 금강으로 2단, 태백으로 3단 심사를 보았었다―을 한 번 해보겠다고 했다. 그전엔 평원은 4단 응심 필수 품새였고 난이도도 높았다. 물론 서정락은 그런 품새가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다. 서정락이 할 줄 아는 것 중에서 궁극(窮極)의 품새는 태극 8장이었다. 서정락은 1단이었는데, 그것도 군대에 와서 자세 안 나온다고 선임병들에게 쥐어 터져 가며 몇 번 떨어지고 난 후 간신히 딴 거였다. 서정락은 잠시 멀뚱 거리다 저는 듣도 보도 못한 그 품새를 한번 해 보도록 허락했다. 결국, 서정락은 3단짜리의 기막힌 평원 품새 연무를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몸이 오그라들었지만 서정락은 머리를 굴려보았다. 그런데 저 새끼, 혹시 지금 만든 거 아냐? 그렇다면…… 그래, 고려를 한번 시켜보자. 서정락은 일전에 몇 번 2단짜리 고참이 하는 걸 구경하며 감탄했던, 유단자 품새들 중에서 유일하게 제가 들어본 바 있는 고려로 다시 한번 주문했다. 서정락은 태극 8장은 물론 6장도 잊어버렸다는 녀석의 대담한 기만을 이번에는 밝혀내고 말겠다고 결심했다. 서정락은 그 고려를 제가 시연해 낼 수는 없었지만, 그 품새의 시작 부분과 대강의 흐름은 알아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신병은 일단 시작부터 틀릴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서정락은 팔짱을 끼고 무슨 태권도 승단심사장의 원로심사관이기라도 한 양 한껏 근엄한 표정을 짜내고 있었다. 그러나 서정락은 불운했다. 그에게 유단자 품새만큼 자신 있는 것도 없었다. 도장에서는 그를 사범급으로 쳤다. 평원으로 몸을 푼 그가 주문받은 고려를 시작했다. 발과 팔의 강렬하고 정교한 움직임과 정밀한 진행선, 힘과 의지의 집중 및 팟, 하면서 허공을 갈라대는 위력적인 동작들은 그대로 예술이었다. 이제 서정락은 신병에게 지쳐갔다. 공도 잘 못 차는 ‘개발’의 태권도는 완벽함, 그 이상이었다. 그런데 서정락은 이상하게 기분이 자꾸 더러워져 갔고, 그런 위축감이 너무 싫었다. 서정락은 낙심하지 않았다. 신병 놈에게 기가 눌리고 있는 사실을 무조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서정락은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그러나 기어이 수모를 자초하고 있었다.
“그만, 동작 그만.”
이젠 새우 눈이 되어 흘깃대던 서정락이 결국 그의 연무를 중단시켰다. 저놈이 고려는 많이 연습했기 때문일 것이다. 단지 그것뿐일 거다. 그래! 난 저놈을 교육시켜야 할 하늘 같은 고참이다. 그런데 신병 새끼가 감히? 안 돼! 난 할 수 있어. 저놈에게 ‘군대 태권도’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태극 6장이라면…… 어차피 저놈은 모른다. 좀 떨리기야 하지만…… 뭔가를 보여주지 않으면 저놈은 날 병신으로 알 거야. 절대로 이렇게 물러설 수는 없다. 서정락은 이제 얼마 남아있지 않은 오기들을 힘겹게 끌어모았다.
“네가 하는 건 사제 태권도다. 군대 태권도는 달라. 내가 한번 보여주겠다. 주목해.”
그러는 서정락의 목소리는 표 나게 떨리고 있었는데 저만 그걸 몰랐다.
서정락은 기어코 태극 6장을 시작하고야 말았다. 서정락 때문에 오랜만에 품새 동작들을 취해봐서 기분이 좀 나아졌다가 다시 서정락의 꼴값을 지켜봐야 하는 그의 기분 역시 점점 더러워져 가기는 피장파장이었다. 서정락은 아예 태권도를 욕보이고 있었다. 눈물 나는 연무였다. 기본적으로 앞굽이 인지 뒷굽이 인지를 분간하기도 불가능했다. 일부러라도 그렇게 하기 힘든 엉성한 자세로, 밉상 맞은 엉덩이를 툭툭 내밀면서 흐느적대는 모습은 흡사 맹꽁이 같았다. 특히 그는 ‘뒷굽이 얼굴 바깥 막기’ 동작마다 엉덩이를 무슨 오리 새끼처럼 좌우로 삐죽거렸는데, 그는 걷어차이고 뺨을 맞았던 것도, 비참했던 축구시합도 잠시 잊어버릴 정도로 속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눌러 참느라 미칠 것 같았다. 그러나 곧 그의 기분은 다시 참담해졌다. 그는 ‘군대 태권도’에 어이가 없어서 기가 콱 막혔다. 만일 도장에서였다면 저따위 녀석은 엎드려놓고 그 얄미운 엉덩짝을 야구 배트로 수십 대 이상 내려쳤을 것이었다. 축구로 인한 자괴감은 어느덧 희석되었지만 얼얼한 가슴과 뺨의 통증을 느끼면서 그는 떫디떫은 어떤 환멸감을 씹고 있었다.
* 휘갑치기(마름질한 옷감의 가장자리가 풀리지 아니하도록 꿰매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