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2부
저녁이라고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막사 뒤로 과제검사를 맡으러 간 그는 수차례 가슴팍, 목, 뺨 등을 골고루 얻어터졌다. 그는 어떤 암묵 된 규칙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럴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저 몸뚱이를 내맡겼을 뿐이었다.
내무반으로 돌아온 그가 흐리멍덩한 눈으로, 처음엔 더 시뻘겠을, 닳고 빛바랜 붉은 벽돌 무늬 벽지를 싸 바른 페치카를 멍하니 바라다보고 앉아있을 때 손정원이 고갯짓을 했다. 그는 다시 막사 뒤로 손정원을 따라갔다. 손정원은 담배 한 개비를 그에게 건네고 불을 붙여주었다.
“휴, 괜찮니?”
손정원이 작게 물었다. 그는 속으로, 댁 같으면 괜찮겠소?, 하며 담배 연기를 후, 뱉어냈다.
“나도 교육받을 때 서정팔한테 × 나게 맞았어. 그 × 같은 새끼. ……그래도 조금 참아봐. 교육 끝나면 좀 나아.”
손정원의 나이는 딴짓거리 하느라고 입대가 늦었던 그보다 아래 같았다. 그는 말없이 연기만 뿜어댔다.
“서정팔 그 개새끼!”
손정원이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곤 목소리를 더 낮췄다.
“그 새끼 보병연대 수색소대에서 왔는데, 거기서도 하도 꼴통 짓을 많이 해서 우리 부대 만들 때 쫓겨 왔대. 괜찮은 새끼였으면 보내겠냐? 에이, 그 ×새끼!”
손정원은 말도 빠르고 욕도 빨랐다.
“우리 부대 온 다음에도 생활 ×도 못해서 그 새끼, 고참들한테 맨 날 쳐맞다가 상병 달고 나서부터 그 지랄을 떤다는 거야.”
그러는 손정원도 알만했다. 그는 손정원의 그런 얘기, 아니 욕설을 들으며 갑갑하던 가슴이 좀 풀리는 듯했다.
손정원이 막사 지붕 위로 담배꽁초를 튕겨 올린 손을 그대로 대며 작지만 힘주어 경례를 붙였다. 손정원의 경례를 받은 병사는 직전에 근무에서 돌아온 듯했다. 손정원이 재빠르게 꺼낸 담배를 그 전투복 차림의 일병이 받아 물었다. 손정원은 그를 또박또박 ‘이권휘 일병님’이라고 완곡(婉曲)하게 불렀다. 이권휘의 눈매는 부드러우면서도 시원했는데 특히 눈썹이 멋졌다. 이권휘의 입가, 그 여릿한 미소는 어떤 아이러니한 여유를 풍기고 있었다. 그는 어떤 비밀스러운 조직에 몸담고 있는 자들끼리 보이는 끈끈한 유대감을 그 둘 사이에서 느꼈다.
이권휘는 군 생활을 매우 잘하는 병사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는 작업이면 작업, 축구면 축구, 행정반 계원에게 부탁받은 잡무까지도 막힘이 없었다. 이권휘는 존재감이 있는 병사였고 선임병이라 해도 그에겐 함부로 하지 못했다. 그는 영리하게 생활했다. 인간관계의 미묘한 분위기를 파악하고 융합될 수 있는, 사려 깊고 어떻게 보면 교활할 정도로 전략적 재능이 다분했다. 그런 그의 능력을 시원스럽고 기품 있는 이목구비까지 받쳐주고 있었다.
“서정팔 그 샤끼, 진짜! 은제 한번 당햐 봐야 쓰는 디.”
이권휘는 당장이라도 서정락을 한 번 어떻게 해 볼 수도 있을 것처럼 말했다. 이권휘가 그에게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우권이라고 했냐? 몸도 좋고 잘 생겼구먼. 내도 충청도여. 반겁다.”
충남 사투리였다. 그는 이권휘로부터 몇 가지 부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부대는 작년―1989년―에 창설됐다. 창설 인원들은 사단 기습대대와 사단 예하 보병연대의 각 대대에 있던 수색소대 등에서 왔다. 그들 대부분은 그냥 원래 부대에 남아 있고 싶어 했지만 한두 명 찍혔던 인원들이 방출됐을 것이다. 생활 잘하는 인원을 다른 데로 보낼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기습대대 특공반 출신들은 인정해야 한다. 거기는 기습대대에서 가장 ‘뺑이’ 쳤는데 특공반 전체인원이 우리 부대로 배치됐다. 처음엔 서로 ‘짬밥’ 인정 못하겠다고 기습대대하고 보병연대에선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녔었다는 수색소대가 치고받고, 수색소대는 수색소대끼리 아옹다옹하고 말도 아니었다. 겨울까지만 해도 내무반 분위기 개판이었다. 몇 명 영창 보낸다고 하니까 그제야 서열이 겨우 잡혔는데 그거 굳히려고 수시로 집합시켜 패대는 것이다.
“우린 갸네들과 달러. 최재필 일병서부텀 오리지날 신교대 차출 멤버여. 다 무술유단자 아니믄 운동선수여. 니 삼단이쟤? 내는 합기돈디 태권도도 쫌 혔어. 정원이, 야는 축구 선수였댜. 그런데 니 워디서 뛰었다니? 대학? 실업? 뭐 워쨌거나.”
다시 이권휘는 희망적인 말을 꺼냈다. 우리는 오리지널 차출 멤버와 자세 나오는 고참 몇 빼고 나머지는 인정하지 않는다. 조금만 버티면 걔들 다 나가고 우리 세상이 온다. 그때가 되면 × 같은 거 다 뜯어고치고 우리끼리 멋지게 한번 군 생활 한다―이 부분에서 이권휘의 눈이 빛났다―. 우권이, 너도 힘내고 우리와 함께 참고 기다리면 꼭 좋은 날 온다. 아, 그리고 우리끼리는 서정팔 같은 ×새끼는 끝에다 ‘팔’ 자를 붙인다. 그 새끼 말고도 ‘팔’ 자 붙는 두어 새끼 더 있는데 나중에 알려주마.
“서정팔 그 샤끼 그거, 빙신 같은 샤끼들은 왜 더 지랄들을 떤다니?”
이권휘는 그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했다. 하지만 이권휘의 기탄없는 태도로 미루어 그는 이미 그 비밀결사의 신입 멤버로 승인된 것 같았다.
그가 내심 궁금해하던 것은 손정원이 꺼내놓았다. 일요일이라 일, 이등병들도 좀 여유가 있는 듯 보였다.
“우리도 첨엔 위장복 준다고 했어. 오긴 왔었다는데 작업모가 안 왔다고 씨발! 인사계가 다 반납한 거야. 기습대도 위장복인데 쪽팔리게…….”
손정원의 추론은 이랬다. 그건 필시 대장이 반납시키라고 한 것이다. 선임하사가 그랬는데, 외출외박 같은 거 할 때 읍내에서 우리가 혹시 뭔 사고라도 치면, 위장복 때문에 사단에서 우리 부댄지 금방 알 수 있다는 거다. 그러면 제 진급이 안 될까 봐 작업모 핑계를 댄 게 분명하다. 대장이 갈리지 않으면 우린 위장복도 못 입을 것이다. 진짜로 작업모만 안 왔으면 ‘전우사’ 같은 데서 일단 사제 걸로 사서 쓰다가 나중에 보급받으면 될 일이었다. ×도! 속상하다. 위장복 입는대서 왔는데 이게 뭐냐. 기습대간 애들도 보는데 병신같이 정찰대가 이런 거 입고 어떻게 돌아다니냐?
“속은 겨?”
여러 얘기로 기분이 좀 전환된 그가 ‘평양 담배’ 건에 대해 손정원에게 물었을 때 킬킬대던 이권휘가 설명했다.
“그거는 군솔(군용 솔담배) 껍다기 뒤집어서 그렸댜. 대항군 댕길 때 쓰는 겨. 전쟁 때 말고 북한 침투하는 현역은 음써. 그냥 훈련만 하는 겨. 근디 나가 병기고에서 《정찰대 운용 교범》이라고 봤는디, 거기 석궁 같은 것도 지급 허게 돼 있고, 나중엔 공중침투용 개인 로켓 추진기도 개발헌다고 나오데.”
이권휘는 그 외에도 다수의 정보를 알려주었는데 그 《정찰대 운용 교범》을 탐독한 것 같았고, 그런 정찰대의 임무들에 대해서 많은 자부심을 가지고 그 발전 방향에 대해서 낙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권아. 힘든 일 있으면 내한테 야그하고, 정원이 니도 밑에 잘 챙겨줘야 하는 겨. 알았는감?”
이권휘는 어른스럽게 이르고는 행정반 쪽으로 걸어갔다. 손정원은 이권휘의 등에 경례를 붙이고 나서 다시 그에게 속삭였다.
“이따가 점호정리 할 때, 나 하는 거 잘 봐야 해. 너하고 난 침상 조야. 모르는 건 끝나면 바로 묻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