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집 합

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2부

by 김욱래

“정·찰·대 기상!”

5시 58분. 불침번이 외쳤다. 아침은 어김없이 왔다. 지난밤 차요철이 어쨌든 그는 그런 것엔 정신도 없었다. 그는 솟구치듯 일어나, 황급하게 침구를 개 넣고, 전투복을 바쁘게 걸쳐 입고, 불이 나게 손가락을 놀려 전투화 끈을 조이면서 내무반을 뛰어나가 기준을 잡았다. 사열대 앞에서 일조점호를 받고, 상의를 벗어 땅바닥에 개어 놓고 산악구보를 했다. 그다음엔 그는 또 일계장 앞에 서서 손정원이 침구들과 관물대, 상판의 군장들을 다시 정리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다보았다. 손정원은 무슨 가정부 같았다.

그는 삼일째 대변을 못 보았다. 신병교육대에서도 처음 나흘 동안은 그랬었다. 그는 어쩌면 다음 날이면 그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생각했다.


아침 식사는 토요일과 마찬가지로 햄버거였다. 그는 토요일 아침엔, 제법 맛있는 그 군용 햄버거가 가끔가다 나오는 특식인 줄로 알았다. 전날인 일요일 아침에는 ‘사발면’ 배식되었기 때문에 메뉴는 계속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햄버거는 특식이 아니었다. 대다수의 병사들이 아침에는 밥을 먹고 싶어 했지만, 인사계가 그걸로 선택했고 대장이 결재했다. 그런 덕분에 취사병들은 편했다. 그건 ‘햄버거용 쌀 식빵’이라고 빵이 든 투명한 비닐봉지에 흰 글씨로 찍혀 있었다. 쌀을 찌는 다단식 취사기에 봉지째 찐 햄버거 빵이 1인 당 두 개씩 배식되었다. 그 찐빵 속에 넣는 내용물은 다음과 같았다. 먼저, 약간 냄새가 나고 기름이 배어 나와 끈적거리는 고기 패티 두 장에다 삶은 달걀 한 개, 손목처럼 굵은 ‘화랑 소시지’를 가래떡처럼 어슷하게 썰어서 기름에 튀긴 것, 딸기잼 한 스푼, 냄새만으로도 시큼한 토마토케첩 등이 그것이었다. 그는 소대 일병이 식판에다 타다 준 그것들을 가지고 다른 이들은 어떻게 조합하여 제조하는지 찬찬히 훔쳐보면서 따라 만들기로 했다―토요일 아침에는 그럴 정신이 없었다―. 그 방법은 이랬다. 먼저 뜨거운 봉지를 재빨리 벗겨 내고 질척한 빵 두 쪽을 연다. 한쪽 빵에 역시 방금 쪄져서 뜨거운 패티를 한 장 얹는다. 그다음엔 달걀을 까서 식판의 반찬 칸에 넣어 스푼으로 으깨고 딸기잼으로 버무린다. 절대로 토마토케첩을 넣으면 안 된다. 군용 케첩 은 신 냄새가 코를 찌를 뿐만 아니라 맛도 매우 고약하다. 아까운 토마토로 왜 그따위로 만드는 건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딸기잼으로 버무린 달걀을 두어 스푼 패티 위에 바른다. 그 위에 튀긴 소시지를 두어 개 올린 다음 나머지 빵을 덮으면 완성이다. 그것을 육군 정량인 200밀리리터짜리 곽 우유, 또는 국 칸에 담아 온 쇠고기 수프와 같이 먹는다.

부대원들은 전부 그걸 하나씩만 먹는 것 같았다. 그가 손해 보는 것 같아 두 개를 다 욱여넣었을 때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달달한 딸기잼과 패티의 역한 고기 기름 냄새가 버무려진 생목이 자꾸만 올라왔다. 그는 그제야 기존 병사들이 그걸 하나씩만 먹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역시 한국인의 아침 식사는 밥과 국이 더 나은 게 확실했다. 그는 취사장을 나와 식판에 붙어있는 잼과 케첩, 수프를 스푼으로 긁어내 잔반통에 버리고 식기세척장으로 들어갔다. 언제나처럼 거기엔 서정락과 몇이 거품을 낸 스펀지로 식판과 스푼들을 문질러대고 있었다. 그가 서정락의 뒤통수에다 경례하고 돌아서는데 다시 생목이 올랐다.


내무반으로 돌아온 그가 양치하기 위해 막 세면 백을 여는데 출입문을 연 손정원의 손짓이 다급했다. 그는 얼른 손정원을 따라갔다. 취사장 근처에 이르자 손정원이 뛰었고 그도 따라 뛰었다. 식탁은 모두 한쪽 벽으로 밀려 붙여져 있었다. 바닥은 방금 물청소가 끝난 듯했다. 거기에 상병 이하 전 부대원들이 그가 노트로 거의 다 외운 서열순으로 집합해 있었다. 차렷 자세의 그들 표정엔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손정원과 그, 그리고 두엇이 더 뛰어들어와 제자리를 찾아 섰을 때 스테인리스 배식구 쪽을 행해 뒷짐을 지고 있던 상병 하나가 천천히 돌아섰다.

“아까 구보 때, 내 참 아주― 그게 군가니? 아주― 입만 벙끗거리는 새끼도 있어요. 내 참 기가 막혀서…….”

상병 주임 조병주는 기습대 출신이었고 원래 복싱을 했었다고 했다. 째진 눈인 데다가 눈꼬리도 치켜 올라가서 무슨 경극 배우 같았다. 윗니가 돌출되어 있고 턱 구조가 이상해서 입을 잘 다물지 못했고 말할 땐 가끔 침을 흘렸다. 조병주는 겨우 들릴 만큼 조그맣게 말했다.

“너네들은 왜 날 이렇게 만들지? 난 아주― 조용히 살고 싶다고 했어, 안 했어? 야, ×새끼들아. 군가가 음을 타냐?”

조병주는 쌍욕도 아주 조용하게 뇌까렸다.

“너네들은 아주― × 나게 맞아야 해. 신음소리 낸다거나 엄살 까는 새끼들은 아주― 뒈진다.”

조병주가 그 ‘아주’를 발음할 때마다 턱으로 침이 흘렀다. 아마도 곧 누구를 패댈 생각에 흥분되어 일단 군침부터 나오는 것 같았다. ‘아주’라는 부사를 아주 좋아하는 조병주는 서열대로, 그러니까 배식구 옆에 선 제 바로 밑부터 ‘아주’ 신나게 패기 시작했다. 주로 가슴 부분만 십여 대씩 때렸는데 그 연타는 진짜 복싱선수가 샌드백을 쳐대는 것처럼 굉장히 빨랐다. 조병주의 주먹이 가슴팍에 꽂히는 소리가 취사장 안에 팡팡 울렸다. 자기 차례인 병사는 신음을 참아내느라고 벌게진 얼굴이 부풀어 올랐다. 조병주의 주먹들이 경쾌한 충격음과 함께 가슴팍에 꽂힐 때마다 상체가 앞뒤로 흔들리기는 했지만, 감히 쓰러질 엄두를 내는 이는 없었다. 몸의 균형을 잡으려고 그만 뒤로 한 발을 밀려 디딘 어느 일병은 얼굴까지 얻어맞고 허벅지도 수차례 걷어차였다. 그런데도 그 일병의 정신력은 대단했다. 다리를 절며 비틀비틀하면서도 끝끝내 일어나서 다시 맞았다. 조병주의 펀치는 일렬횡대의 맨 끝, 신병 넷의 바로 앞에서 멈췄다. 조병주는 신병들까지 패댈 생각은 없는 듯했다. 그날은 단지 신병들에게 자신의 권위와 위용을 각인시킨 것만으로 족한 듯 보였다.




(주)농심은 1981년에 용기 면(컵라면처럼 용기 안에 면을 넣어 판매하는 제품)인 사발면 판매를 시작했고 1982년 ‘육개장사발면’을 출시했다. (주)농심은 ‘육개장사발면’을 군납했다.

keyword
이전 09화침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