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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 상

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2부

by 김욱래

근무자신고는 매일 저녁 사열대 앞에서 있었다. 모든 근무자는 전투복에다가 수통을 단 탄띠를 착용했다. 대(隊) 본부 인원들의 몫인 불침번을 뺀 야간근무자들은 나뭇잎 모양 무늬의 방탄 피를 씌운 방탄헬멧을 쓰고 멜빵끈을 늘인 총을 오른쪽으로 각개매어 했다. 방탄헬멧은 신병교육대의 철모보다 가벼운 재질이었다. 불침번은 작업모를 쓰고 총은 소지하지 않았다.

취침시간은 밤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6시까지고 그 여덟 시간이 육군 정량이었다. 원체 적은 인원으로 편제되었을 뿐 아니라 세 개 소대 아홉 개 정찰 반*1마다 거의 한둘씩은 반원이 모자라는 정찰대 병사들은 일반 부대들과 달리 취침시간 중에 하루도 빠짐없이 경계근무를 서야 했다―대대 급 부대는 대략 4일마다 한 번씩 근무가 돌아온다―. 금쪽같은 취침시간에서 매일 같이, 적으면 한 시간 삼십 분, 사흘에 한 번씩은 밤 10시에서 11시까지의 초번 초와 새벽 5시부터 기상 시까지의 말번 초도 같이 서야 했기 때문에 근무준비와 교대시간을 포함 두 시간 삼십 분씩이 제해졌다. 하룻밤에 두 번 근무 서는 게 더 낫다는 병사들도 있었는데, 자다가 짜증 나게 나가지 않고 다섯 시간 삼십 분일망정 내리 잘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밤 11시에서 12시, 새벽 4시에서 5시까지의 근무자들은 실상 더 힘들었다. 병사들은 언제나 다섯 시간 삼십 분, 많아야 여섯 시간 삼십 분밖에 잘 수 없었기 때문에 맘대로 침상에 드러누울 수 있는 병장급들 말고는 수면 부족으로 푸석푸석한 얼굴에 신경에도 바짝바짝 날들이 서 있었다.


지난 이틀 밤과 같았다. 근무자신고가 끝나면 잠깐의 휴식시간이고 여덟 시 삼십 분이 되면 일석점호(日夕點呼) 준비가 시작되었다. 그는 여전히 볼수록 꺼벙한 신병 대기자의 복장, 그 주황 체육복을 껴입은 채 1 내무반 출입문 옆 침상 끝의 일계장 쪽에 차렷하고 섰다. 양쪽의 침상은 보충대와 신병교육대의 것과 같은 노란 장판이 깔려있었다. 육군의 모든 내무반은 예전부터 그 노란 장판으로 통일돼 있는 것 아닌가, 하고 그는 생각했다. 아주 예전에, 상무 교육을 갔었던 특수전여단의 장판도 같은 것이었으니까.

“점호 정릿!”

상병의 개시 신호가 떨어지면 바닥 조 일병이 플라스틱 세면 대야에다 미리 만들어 놓은 치약 푼 물을 손으로 떠서 노란 장판 위에 흩뿌리고 나간다. 그러면 물기를 꽉 짠 다음 단단히 접은 걸레―낡은 황토색 군용 수건을 재활용한 것이었다―를 쥐어 잡고 무릎을 꿇은 채 개처럼 엎드려 침상 끝에 대기하던 서정원과 건너편 침상 조는 무슨 100 미터 달리기의 신호총이 울리기라도 한 것처럼 맹렬하게 튀어나간다. 그들은 한 손으로 침상의 모서리를 잡아채는 방법으로 체중을 옮기면서 엄청난 속도로 이물질을 통로바닥으로 밀어낸다. 그들이 전진할 때마다 무릎이 콩콩대며 마룻장을 찧어댔다. 특히 손정원의 팔놀림은 대단했는데, 손정원의 오가는 팔뚝을 그가 분명히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부동자세로 그런 순서와 동작들을 있는 힘껏 집중하며―그래야만 할 것 같았기에―눈으로 익혔다.


바닥 조 속도 역시 굉장했다. 그가 애초 보충대에서 취사장청소 때부터 배운 ‘미싱하우스’*2 궁극의 경지를 그들이 보여주고 있었다. 바닥 조 둘은 2 내무반으로 연결되는 문짝 아래 허리를 굽히고 물에 푹 적신, 군데군데 구멍이 난 걸레―마찬가지로 원래는 수건―를 펼쳐 잡고서 대기하다가 침상 조가 침상의 반쯤 전진했을 때를 기점으로 동시에 출발했다. 그들은 엎드린 자세에서 뒷걸음질로 걸레를 당겼는데 그건 차라리 뒤로 달리기였다. 그렇게 두세 번 바닥을 당기면, 아니 달리면 통로바닥의 ‘미싱하우스’는 완료되었고, 그 사이 침상 조는 각 관물대의 물품들과 상판의 관물들, 밑에 개어진 매트리스 등을 재빠르게 바로잡고 매만져 끝 선을 맞췄다. 마지막 공정은 양 손바닥을 사용해 정성껏 모포의 각을 잡는 것이었다. 그 외 여러 가지 복잡다단한 공정, 아니 법석들이 끝나자 여덟 시 오십 분이 되었고 이제 점호 대기에 들어갔다.


일석점호가 끝나 침구가 깔리고 그도 막 누울 수 있게 된 때였다. 그의 자리는 페치카 바로 맞은편, 막사 출입문에서 보면 좌측침상의 중간쯤이었다. 그는 침낭 속에서 자신의 관물대 쪽으로 다리를 쭉 펴보았다. 허벅지 근육과 무릎, 발목관절이 짜증스럽게 찌뿌듯했지만 어떻게든 하루가 끝났다는 것에 조심스럽게 안도했다. 살갗은 엷은 땀으로 축축했지만, 그는 침낭으로 자신의 몸을 외부세계와 갈라놓고 싶었다. 그가 배치된 2 정찰 반의 마지막 자리, 5번 ‘흔적 제거병’이 될 그의 바로 옆은 3반 반장인 일반하사 차요철의 자리였다. 검고 두툼한 비닐 재질의 등화관제 차양은 이미 내려졌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야간의 적 폭격기 공습의 대비를 생활화한다는 것은. 이제 잠시 뒤면 취침 소등이 될 터였다.

“요년!”

불쑥, 이해하기 힘든 교성을 지르며 커다란 머리통의 땅딸보 차요철이 그의 몸 위로 올라탔다. 이전부터도 자주 차요철은 취침 전에 자리에 누운 아무에게나 올라타고는 질퍽한 정사 장면을 재현해내곤 했다. 그럴 때면, 차요철을 받아들이는 병사들은 이렇게 외쳤다.

“오빠! 좋아…… 더 세게, 더, 더……”

물론 그건 살기 위한 짓이었다. 하지만 차요철의 그 짓거리를 처음 당하는 그는 기가 막혔다. 누워있던 부대원들이 어떤 기대감을 가진 듯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차요철은 진짜로 겁탈이라도 하겠다는 듯 그의 사타구니에다 제 물건을 마구 쑤셔 넣었다. 그 물건은 마치 침낭을 뚫기라도 할 기세였다. 그는 사타구니 사이로 막 비집고 들어오는 차요철의 사나운 물건을 일단 저지해야만 했다. 그는 침낭 속에 넣어 놓았던 양손으로 침낭째, 잔뜩 성이나 있는 그 녀석을 힘차게 움켜잡았다. 가관이었다. 차요철은 이미 게슴츠레해진 눈빛으로 그의 하얀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최대로 발기된 녀석을 쥔 손에 더 힘을 주자 그 녀석의 주인은 더욱 몽환적인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차요철은 곧바로 단말마의 비명을 토해야 했다. 그가 순간적으로 그 버르장머리 없는 물건을 비틀어서 꺾어버린 것이었다. 근육인지, 뼈인지 간에 뭔가가 우두둑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차요철은 식은땀이 흐르는, 돼지 대가리처럼 생겨 먹은 머리통을 일그러뜨리며 신음을 흘렸다.

“이…… 새끼가?”

그는 고사상에 올린 돼지머리 같은 낯짝을 올려다보며 나직하게 물었다.

“이렇게 꽉꽉 조여주어야 좋지 않습니까?”

그는 고사 머리 녀석의 물건을 뭔가로 잘라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차요철은 아예 부려졌을지도 모를 제 물건을 한 손으로 부여잡은 채 관물대 위 배낭에서 야전삽을 빼내 그를 내려찍으려고 한참 난동을 부렸고, 2반 반장이 그 하교대 동기를 잡고, 말리고, 달래고 해서 간신히 제지시켰다.

차요철은 일순간에 내무반 인원들을 볼 체면이 사라져 버린 것에 절망했다. 차요철은 저의 변태 행위를 엄청난, 감히 그럴 수 없는 방법으로 종지부를 찍게끔 했으면서도 좀 전에 무슨 큰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무신경하게 누워있는 그를 내려다보며 치를 떨었다.

“두고 보자. 너 이 새끼.”

그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고사상 돼지 대가리의 그런 협박은, 만약 차후에 또다시 그런 짓을 시도한다면 놈의 물건을 야전삽으로 잘라버리고 말겠다고 굳게 결심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는 제 물건을 싸잡고 끙끙대는 차요철의 신음을 취침 곡 삼아, 그러나 반쯤은 경계하면서 선잠을 잤다.




*1 정찰부대의 정찰조. 반원은 5명이며 반장, 부반장, 통신병, 보측병, 흔적 제거병으로 구성된다.

*2 ‘물청소(水直)’를 의미하는 일본식 표현 ‘미즈나오시(みずなおし)’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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