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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담

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2부

by 김욱래

8시. 오전 일과가 시작되었다. 전입 신병 넷은 불려 나가 사열대 앞에서 개인 총기를 받았다. 그걸 나눠준 정작 선임하사가 늘어지게 말했다.

“에―, 너희들은 부대 생활 잘하리라 판단된다. 에―, 열심히 하면 보람찬 생활이 될 거라고 판단된다.”

정작 선임하사 장 중사는 키는 있었지만 이제 신병들이 그를 판단해 볼 때, 뿌옇게 부어있는 얼굴 거죽에 두 겹이나 접힌 턱살, 잘 다려진 장피*1로도 감출 수 없는 아랫배와 엉덩이의 뒤룩뒤룩한 군살들은 그가 움직이는 것 자체를 싫어하고 당연히 몸 관리에 전혀 무신경한 인물인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다음엔 정찰대장의 면담이 있다고 해서 행정반으로 불려 갔다. 예전에 신병교육대에서 제 신병들을 불러냈던 눈이 부리부리한 인사계가 대장실 문을 열었다. 그의 첫인상에 정찰대장은 상당히 멋지게 생겨 보였고 나이가 있는데도 군살이 없었다. 신병들은 존경과 흠모를 담아 저희의 지휘관에게 우렁찬 단체경례를 올렸다. 정찰대장이 앉으라고 지시했다. 신병들은 초록색 부직포 위에 유리판을 깐 길쭉한 테이블의 접이식 철제의자에 앉아 차렷 했다. 흰색페인트가 모자랐던지 중간에 엷게 칠해진 대장실의 합판 벽은 군데군데 합판이 그대로 누렇게 드러나 있었고, 대장의 책상 뒷벽에는 자그마한 태극기 액자만 하나 덜렁 걸려 있었다. 책상에 딸린 검은 인조 가죽의 회전의자 옆 스탠드 옷걸이에는 흰색과 연하늘색이 군데군데 겹친 얄따란 여름용 트레이닝복 한 벌이 아무렇게나 걸려 있었다. 허리 높이쯤 되는 카키색 철제 캐비닛 위에 놓인 장교용 작업모의 판판한 챙은 캐비닛의 상판과 찰싹 붙어 있었다. 나이 있는 직업군인들은 거의 다 모자를 공장에서 출고된 상태 그대로, 그러니까 조금도 챙에 손을 대지 않고 사용하는 듯했다. 인사계도 그렇고 장 중사도 그랬다. 그런 모자를 쓰고 있으면 편평한 철판이 그들의 이마빡에 박혀있는 것처럼 보였다. 별자리들도 그렇게 쓰는데 감히 그 밑이 보기 좋게 하려고 챙을 구부릴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야구모자 형태의, 아니 야구모자보다 못생긴 육군 전투모를 공장에서 나왔을 때처럼 평평한 챙 그대로 쓰면―그렇게 고집하는 이들은 복장 규정이네 뭐네 하며 그게 원칙이고 멋인 줄 알겠지만, 꼭 초록색 새마을 모자를 쓴 촌 동네 이장을 연상시켰다―, 거기에 박힌 계급장과 관계없이 촌티가 풍겼고, 마치 똥고집으로 일생을 일관하는 이들처럼 답답하고 고지식해 보이는 데다, 무엇보다도 바보 같았다.

정찰대장의 모자에 붙은 흰색 소령 계급장 위에는 공수 윙이 없었지만, 상의에는 달려있었고 주황색 계통의 실로 박쥐와 횃불이 자수된 작은 정사각형 정보병과장은 명찰 위에 붙어 있었다.


육군 3 사관학교*2 출신이라고 하는 김계식 소령은 큼지막하고 서글한 눈망울에다 너무 자주 여색을 즐겼던 사내와 같은, 거무스름하게 약간 죽어있는 낯빛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법 미남 축에 드는 얼굴이었고, 미국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클라크케이블(Clark Gable)*3처럼 윗입술에 붙여 가느다란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 정도 생긴 얼굴이라면 예사롭게 여자들을 후릴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의 얇은 듯하지만 건조하고 권위적인 음성과, 178 센티미터 정도 되는, 군복이 꼭 들어맞는 몸을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은 자세는 자못 귀족적이었다. 그가 자신의 정찰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부대는 람보 같은 녀석은 필요 없다. 나는 람보를 좋아하지 않는다. 너희들, 007 영화 본 적 있나? 정찰대원은 007처럼 첩보를 수집하고, 맥가이버*4같이 안 되는 것도 되게 해야 한다.

김계식 소령은 엄청난 스케일의 첩보영화나 현실성을 담보하지 않은 미국드라마에 심취해 있었다. 그는 그 외의 것도 몇 가지 간략히 말했다.

“애로사항이라도 있나?”

김계식 소령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애로사항이 있냐?’가 아니라 ‘애로사항이라도 있냐?’라고 한 것을 신병들은 정확히 들었기 때문에 애로사항은 있을 수가 없었다. 아니, 그런 게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신병들은 그 질문에 소리 모아 관등성명을 외치면서 우렁차게 대답했다.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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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제임스 본드나 맥가이버가 어떤 면에서 형편없는 보급에다가 구질구질하게 생활하는 정찰대 병사들과 비견될 수 있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김계식 소령이 뭐랬든 그는 원래부터 람보 스타일을 더 좋아했다. 대장이 차라리, 정찰대는 북으로 침투하는 무장공비나 간첩과 같은 임무를 가진 부대이고, 그런 훈련을 한다는 얘기가 더 사실적이고 매력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꼭 람보가 아니더라도 첩보전에 관한 다른 영화나 드라마, 혹은 책들이 많았을 텐데도 하필 그는 멋진 턱시도나 입고, 권총을 쏘며, 최신형 수륙양용 스포츠카로 반라의 본드걸들이나 후리는 본드와, 가히 천재적인 물리학자 맥가이버를 그 예로 들었다. 그게 대장의 취향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


김계식 소령은 잘생긴 편이었고, 군복이 잘 어울렸으며, 상당히 권위적이고 귀족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그는 신병인 자신도 대략은 알고 있는 정찰대의 특성과 임무에 대해, 지휘관인데도 김계식 소령이 그걸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실 김계식 소령은 자신이 맡고 있는 부대를 잘 몰랐다. 평화 시의 군대에서 무슨 임무니 뭐니 그딴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그의 병과가 정보였기 때문에 상부에서는 갑자기 생기는 정찰대로 발령 낸 것뿐이었고, 별문제 없이 그 소규모 독립부대의 지휘관으로 착실히 지내다가 진급만 하면 그뿐이었다.

또다시 그는 자신이 참 비루하다고 여겨졌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숨을 좀 쉬고 싶었다. 그러나 대장실에서도 행정반에서도 일절 신병교육대에서의 사격측정에 대한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대충 신병들과의 면담을 마친 김계식 소령은 집안에 일도 있고 해서 자기가 일 년 중에 찾아 먹을 수 있는 휴가를 떠났다.




*1 장교용 피복.

*2 1·21 사태와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등의 발생으로 안보 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초급장교의 공급을 확대할 목적으로 1968년 제2사관학교와 제3사관학교를 개교하게 되었고, 1974년 단기사관학교 설치법에 의거 새로이 개교하였다. 초대 학교장은 북한군 최고위급 포 사령관으로 귀순 망명한 정봉욱 소장이 맡아 북한의 124군 부대를 능가하는 강인한 군대 집단을 양성하였고 월남전을 통하여 혁혁한 전과를 세웠다. 4년제 정규대학 2학년 이상 수료자와 2년제 전문대 졸업자를 입학시켜 2년의 교육 과정을 제공하고 학사 학위를 수여하며, 장교로 임관시키는 독특한 형태의 특수목적대학교이다.

*3 미국 영화배우.

*4 미국 첩보 드라마. 미국 ABC방송에서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며 방송되었고 1986년 방송을 시작한 한국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얻은 외화 시리즈이다. 드라마 주인공 맥가이버의 특기는 대학 전공인 물리학을 살린 각종 응용실험. 작은 다용도 칼 하나와 주변의 여러 가지 사물들로 위기의 순간을 척척 해결해 나가는 임기응변을 가져 ‘맨손의 마법사’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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