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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2부

by 김욱래

막사의 외벽은 행정반 건물과 같이 연회색의 수성페인트가, 미장되지 않은 우둘투둘한 시멘트 블록에 그대로 칠해져 있었다. 슬레이트 지붕의, 역시 창고 같은 막사 건물은 두 개의 내무반과 그 뒤쪽에 붙은 세면실 하나로 나뉘어 있었다. 대장실이 있는 행정반 건물과 막사 사이, 시멘트로 찍은 약 20 센티미터 높이의 직사각형 사열대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막사 문을 열면 바로 1 내무반이었고, 양쪽 침상 사이의 통로로 곧장 가면 문짝 하나를 두고 2 내무반이 붙어있었다. 1 내무반에서 밖으로 나가, 사열대 옆을 지나서 건물 뒤편으로 꺾으면 행정반 쪽에서는 볼 수 없었다. 그 막사 뒤 외벽과 대공초소가 있는 언덕 축대 사이에 그리로 다니기엔 좁은 뒤안길이 있었고 바로 그 초입이 1 내무반 일, 이등병들이 비교적 편히 담배라도 물 수 있는 장소였다. 원래는 군용 현미유가 담겼었던, 불에 타서 새까맣고 찌그러진 사각형 깡통이 쓰레기통 겸 재떨이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 뒤안길은 막사 뒤 중간쯤에서 튀어나온 세면장 벽까지―정확히는 그 벽 못미처에 파인 1 내무반용 페치카 아궁이 전까지―등을 벽에 붙이듯 하면 대략 일렬횡대로 여섯 명쯤 설 수 있었다.


그곳에 병사 둘이 서 있었다. 주황색 체육복이 벽에 착 붙어 차려 자세를 하고 있었고 노란 줄이 간 군청색 체육복은 짝다리를 짚고 작지만 도톰한 노트를 위아래로 흔들며 주황색 체육복에게 뭐라고 떠들고 있었다.

신병들이 들어온 후 이제 이틀 밤이 지난 일요일 오전이었다. 3소대 신병이 방금 제 교육 담당에게 불려 나온 것이었다. 그 ‘신병 교육’이란 것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물론 두 병사는 암묵적으로 목소리를 작게 했다. 그들의 작은 목소리는 벽 하나 사이의 1 내무반에서라면 몰라도 절대 행정반에서까지 들릴 리는 없었다. 그 주황 체육복의 동기들도 어디선가 각기 모종의 교육을 받고 있을 터였는데 3소대 신병의 교육과정은 이랬다. 서정락은 그 교육용 노트를 아무 데나 펴 깨알 같은 가사를 제 신병에게 잠시 보여준다. 그리고 몸소 한번 부른다. 그다음엔 회수한 노트를 덮어버린다.

“이제 불러봐.”

물론 신병은―아니 그 어떤 신병이라도―그게 가능하지가 않고 바로 목으로 서정락의 손날이 날아온다. 그게 십여 차례 반복된다. 서정락은 제 신병은 그걸 해낼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신병의 목빗근이 끊어져 나가는 것 같다. 나중엔 목에 감각이 없어서 뭔가가 텅텅 부딪치는 소리만 들린다.


너와 내가 맞잡은 손 방패가 되고……


너와 내가 손을 맞잡을 수 있다고……? 군가 교육 다음엔 전 부대원 50여 명의 소속소대, 반과 직책, 계급과 이름, 서열일람이 적힌 페이지들이 펴진다. 이번엔 신병은 한 다섯 명 정도는 읊을 수 있다. 하지만 서정락의 성엔 차지 않는다. 이번엔 귀싸대기에 불이 난다.


그는 상당히 의아했다. 어린 시절부터 부친에게 단련되기도 했었지만 원래 그의 암기력은 남달랐었다. 고등학교 때 측정된 그의 IQ는 142였다. 그런데 서정락 앞에서는 도무지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이 새끼. × 나게 돌대가리네?”

거의 한 시간에 걸친 교육 후에, 아니 폭행 후에 서정락은 그렇게 말했다.

“저녁 먹기 전까지 우리 소대 꺼 다 외우고, 이거, 이거, 그다음 이거, 그리고 이거, 이것도. 전부 다섯 개. 다 부를 수 있나 이따 보겠어.”

그는 서정락이 준 노트를 들고 얼른 화장실 쪽으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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