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빼세요

by Bullee

오늘은 아내와 마사지 샵을 다녀왔다. 한국사람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마사지 샵으로 다들 평이 좋기도 했지만 귀 청소까지 해준다기에 풀코스로 신청하고 다녀왔다. 매장에 들어가니 왜 가계 이름에 이발소라는 이름이 들어갔는지 알 수 있었다. 난 중학교 때까지 이발소에서 이발을 했기 때문에 옛 이발소 풍경에 조금은 익숙하다. 특히나 로봇 조종 칸처럼 생긴 이발소 의자는 반갑기까지 했다. 사실 난 마사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마사지 자체를 안 좋아하기보다는 모르는 사람이 내 몸을 만지는 게 싫다. 낯선 사람에게 내 몸을 맡기는 게 탐탁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에서 해외로 놀러 갔을 때 단체로 마사지를 받으러 가면 난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 곤 했다. 하지만 아내와 가게 되면 마지못해 함께 가곤 했다. 이번에도 아내와 갔지만 이번에는 마사지가 메인이라기보다는 귀 청소와 이발이 메인이었기 때문에 크게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마사지에 앞서 먼저 귀 청소를 먼저 해준다. 귀 청소는 어릴 때 어머니 무릎에 누워서 종종 받았었다. 하지만 중이염에 자주 걸리면서 귀 속을 건드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귀 청소를 받는 데 해주시는 분이 왠지 고고학자처럼 느껴졌다. 귀 속 화석을 캐듯 조심스럽게 긁어내어 발굴하시는 듯했다. 귀 청소가 끝나면 내 귀 속 화석들을 소개해주신다. 색을 보니 진짜 화석 같다는 착각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는 마사지를 해주시는데 마사지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힘 빼세요"였다. 마사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꽤 많이 저항을 했나 보다. 그러다 보니 나도 힘들고 하시는 분도 힘들었다. 난 몸에 힘을 빼는 법을 잘 모른다. 왜냐 하면 난 겁이 많기 때문이다. 비단 몸만이 아니다. 회사에서도 힘을 잘 못 뺐던 것 같다. 평상시는 큰 문제없는데 행사나 중요한 일만 하려면 유난히 까칠하고 예민해졌다. 모든 건 완벽해야 했고 계획대로 됐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늘 긴장 상태로 일을 했고 그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몸과 정신 건강이 엉망이 되기 일쑤였다. 친한 후배가 그랬다. 왜 사업만 들어가면 다른 사람이 되냐고. 계획대로 오차 없어야 하다는 강박과 혹시 발생할지도 모를 일에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해야 하는 등 온몸에 힘을 주고 일했다. 아마 몸에 힘을 적절하게 뺐었다면 퇴사 시기가 좀 더 늦춰졌을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힘 빼세요라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인지 중간쯤부터 몸에 힘을 빼기 시작했다. 사실은 포기라는 게 더 맞는 표현일 거다. 내 몸이지만 알아서 하세요 라는 마음이 들면서부터 몸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일하고 포기할 건 포기하면서 지냈다면 아마 힘을 빼면서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포기라는 걸 자주 했다. 예산과 시간을 보면서 원래 계획보다 많은 것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렇게 아쉽거나 서운하지 않다. 오히려 원래 계획대로 하려고 애쓰며 여행을 망치는 것보단 더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이 든다. 이번 여행을 통해 힘을 빼는 법을 조금 더 배우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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