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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llee Mar 10. 2023

퇴사 후 여행 - 이집트 편 1

 

  지난달 7박 10일 일정으로 이집트를 다녀왔다. 이집트는 개별 여행하기 쉽지 않다고 해서 패키지를 이용했다. 퇴사 후 여행할 국가를 계획할 때 이집트는 여행지에 포함되진 않았다. 아프리카 대륙은 있었지만, 이집트가 아닌 남아프리카공화국이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케냐까지 개조한 트럭을 타고 이동하면서 캠핑도 하고 사파리를 하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계획이란 건 바뀌라고 있는 법. 지난 일 년간 다닌 여행을 돌아보면 우리 계획대로 간 곳은 몰디브 단 한 곳밖에 없다. 애초에 이집트를 계획하지 않은 건 여행지로서의 이집트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원전 3,000년 전 시작한 고대 문명 발상지라는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관광보다는 박물관 같이 역사를 공부하러 가야 할 곳 같은 이미지가 더 강했기 때문이다. 

  이집트를 가볼까?라고 생각한 건 북유럽에서 만난 가이드 덕분이다. 북유럽 여행 중간에 누군가 가이드에게 그동안 다녔던 국가 중에 어디가 좋았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한참을 고민했다. 패키지로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함께 여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들 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이란 걸 내가 알 정도였으니 가이드도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 가이드 입장에서는 좀 색다르면서도 가 볼만한 곳을 추천해줘야 했기 때문이다. 고민 후 그는 이집트라고 이야기했다. 그때 여행지로서 이집트라는 단어가 우리 머릿속에 들어온 것 같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찾아보니 의외로 이집트 관련 상품이 꽤 많았다. 우리는 이집트에 대한 여행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집트는 숙제 같은 곳이었다. 살면서 한 번은 꼭 가봐야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큰 고민 없이 추운 겨울을 잠시 피할 겸 계획에 없던 이집트를 가보기로 했다. 국적기를 이용하면 한 번에 갈 수 있었지만, 가격은 좀 더 저렴하면서도 일정은 크게 다르지 않은 아부다비 경유 상품을 선택했다. 오후에 출발해 다음날 새벽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인천을 출발한 지 약 18시간 만에 도착해 입국장에 있는 조각상을 보니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피라미드의 나라, 수많은 신들의 이야기가 있는 태양의 나라. 

이집트 공항 입국장

 이집트에 도착한 뒤 처음 한 일은 여권에 비자를 붙이는 일이었다. 한국 여권 소지자는 관광일 경우 웬만해서는 무비자인지라 오랜만에 비자를 발급받았다. 게다가 요즘은 전자 비자로 바뀌는 추세다 보니 오랜만에 종이 비자로 발급받았다. 여권 한 면을 가득 채운 이집트 비자를 보니 예전 여행하던 추억도 떠오르고 뭔가 색다른 느낌도 나서 그런지 이집트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비자 옆에 입국 도장을 받고 나가면서 본격적인 이집트 패키지여행이 시작되었다. 여정의 첫 목적지는 이집트 하면 대부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곳 바로 피라미드였다. 피라미드를 보러 가는 길은 너무나 설레었다. 고대 비밀을 가지고 있으며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인 피라미드를 눈으로 직접 보다니 말이다. 하지만 막상 피라미드를 마주하니 웅장하다, 신비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게 피라미드구나'라는 생각만 들었던 것 같다. 아내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지만 나는 의외로 담담했다. 나중에 왜 그랬을 까? 생각해 보니 몇 가지 이유가 떠올랐다. 피라미드를 본다는 설렘은 분명히 있었지만 그 마음을 충분히 즐길 새도 없이 너무나 빨리 피라미드를 봐 버린 것이다. 실제로 피라미드는 도심에서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았다. 조금만 나가면 바로 보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기자까지 가는 버스에서 이미 피라미드를 봐 버린 것이다. 그래서 김이 새버린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피곤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바로 관광을 시작했으니 말이다. 아니면 여행의 목적이 너무 빨리 해결 됐기 때문인가? 아무래도 이집트를 여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피라미드 일 텐데 숙제를 너무 빨리 끝낸 것이다. 아내는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여행 전 너무 많이 검색하고 찾아봤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인터넷이나 영상으로 미리 다 보고 가면 여행의 재미가 떨어진다나 뭐라나.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감히 범접할 수 없어 미디어로만 만나야만 할 것 같은 곳에 실제로 와서 실제로 보니 미쳐 감탄할 준비가 안되어 있었던 것 같다. 다녀온 사진을 봐도 내가 실제로 여기를 갔다 왔구나 라는 생각에 실감이 나질 않으니 말이다. 피라미드를 한 바퀴 둘러보면서 이제 피라미드를 봤으니 이집트는 다 본 건가 싶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피라미드는 이집트에서 빙산의 일각이란 걸 알게 되었다. 어쩌면 이번 여행이 아니었으면 이집트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집트 여행에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보는 건 단 하루 그것도 반나절뿐이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이집트에 대한 편견이 깨진 건 이집트 박물관 투어에서였다. 약 두 시간 넘게 진행된 투어를 통해 이집트에는 수많은 이야기와 유물들이 존재한다는 걸 실감했다. 피라미드는 고왕국 시대 유물일 뿐 융성했던 신왕국시대에 더 많은 유물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가이드가 이야기해 주는 많은 신들의 이야기와 상형문자 해석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 했지만 확실하게 느낀 건 피라미드가 이집트의 다는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어찌 보면 화려했던 이집트 문명을 보는 건 이제부터 시작이란 것이다. 


   


 이집트의 화려한 문명의 흔적을 보려면 이집트 남부지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대부분의 이집트 여행은 일단 카이로로 입국을 해서 남쪽인 아스완으로 이동 후 북으로 나일강을 따라 올라오는 일정으로 진행된다. 남쪽으로 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인데 밤 기차를 타서 자면서 가는 방법과 비행기를 타고 내려가는 방법이 있다. 북유럽에서 만난 가이드가 이집트 여행 상품을 고를 때 되도록이면 기차로 이동하는 건 피하라고 이야기해 줬기에 우리는 예약할 때 국내선으로 이동하는 상품을 선택했지만 모객이 되지 않아 기차를 타고 가는 상품으로 바꿔야 했다. 가뜩이나 비행기에서 내려서 바로 관광을 해서 체력도 바닥인데 엎친대 덮친 격으로 기차가 약 세 시간가량 연착이 돼서 최악의 컨디션으로 기차에 탑승해야 했다. 기차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열악했다. 캐리어를 펼칠 공간조차 없을 정도로 좁았고, 세면대 물은 안 나오고, 전기충전은 안되고 제일 최악인 건 화장실이 공용인 것이다. 일단 눈조차 뜰 수 없을 정도로 피곤했기에 캐리어 정리와 환복 그리고 씻는 걸 다 포기하고 잠에 들었다. 그렇게 기절한 채로 우리는 추위와 모래를 버티며 남쪽으로 약 14시간 기차여행을 시작했다. 심지어 약 두 시간가량 지연 돼서 우리는 예상보다 더 긴 열차를 타야만 했다.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기차에서 휴식이 체력을 회복해 주는 전화 위복이 된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기차를 타고 가면서 보는 일출과 나일강 풍경도 나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여행의 1부는 마무리했고 이제 여행의 2부를 즐길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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