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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llee Mar 22. 2023

퇴사 후 여행 - 이집트 편 5

점심식사를 하기 전 들려야 했던 곳은 멤논의 거상이었다. 멤논의 거상은 아멘호텝 3세의 장제전 앞을 지키고 있는 거상을 말한다. 버스에서 내렸는데 허허벌판에 큰 두 개의 거상이 세워져 있었다. 아멘호텝 3세의 장제전은 오간 데 없고 거상만 두 개 세워져 있었다. 세월을 피하지 못해 온전한 모습은 남아있지 않지만 그래도 거대한 형태는 유지하고 있었다. 특이하게 하나의 거상은 돌을 쌓아 만들었고, 다른 하나는 돌을 깎아서 만들었다.  

이미 검색해 보고 갔기 때문에 멤논의 거상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거상을 실제로 보니 머릿속에는 경주 여행에서 봤던 감은사지 3층석탑이 떠올랐다. 경주 갔을 때 바다가 보고 싶어서 감포로 넘어가는 길에 감은사지에 잠깐 들른 적이 있었다. 그때 본 석탑은 나에게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지만, 세월의 풍파를 견디고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늠름하면서도 강인해 보였다. 게다가 화려하지 않아 단아하고 묵직해 보였다. 석탑의 크기를 미뤄 짐작하건대 감은사지가 얼마나 큰지 상상도 됐다. 룩소르에서 만난 멤논의 거상은 감은사지 3층 석탑을 봤을 때와 비슷한 감정과 기억을 상기시켜 줬다. 경주 첨성대처럼 그냥 지나가는 곳이라고는 하지만 난 오히려 피라미드보다 더 웅장했던 곳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드디어 점심이다. 나일강변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이집트 전통 돛단배인 펠루카를 타고 강을 건넜다. 다음 여행 코스는 강건너에 있어 버스를 타고 돌아서 나일강을 건너는 시간보다 배를 이용해 강을 건너는 게 더 빠르기 때문이다. 강을 건너간 곳은 카르나크 신전이다. 카르나크 신전은 약 천년에 걸쳐 지어진 신전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신전으로 손꼽힌다. 넓다고 말만 들어서는 실감이 안 났는데 직접 둘러보니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비록 많은 부분들이 파괴되고 도난당해서 제국주의 국가로 유출 됐지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수십 개의 기둥과 거기에 새겨져 있는 상형문자 그리고 색들이 예전 그 위세를 알 수 있게 해 줬다. 람세스 2세를 비롯한 그동안 이야기 들었던 파라오들의 흔적을 이곳에서 모두 볼 수 있었다. 가장 압권인 건 수십 개의 웅장한 기둥들이었다. 어마어마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은 곳이었다. 해가 조금씩 질 때쯤 카르나크 신전을 나왔다.

저녁을 먹을 시간이지만 패키지에서는 아직 아직 이르다. 다음은 마차투어와 룩소르 신전 야간 투어가 남아 있다. 마차투어는 선호하지 않은 투어지만 룩소르 신전투어와 묶여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다. 마차투어를 싫어하는 건 차들 사이로 달렸기에 위험할 뿐만 아니라 매연을 온전히 다 마셔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눈 옆을 가린 채 마부 채찍을 맞아가며 달리는 말들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룩소르 신전을 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신청했다. 마차에 올라타자마자 마부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걸었지만 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노 잉글리시'를 시전 했다. 어차피 즐기지 않을 마차였기에 조용히 풍경에만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맘을 알았는지 아니면 노잉글리시라는 말에 물러 선 건지 우리 마차는 유난히 조용히 길을 달렸다. 하지만 도착할 때쯤 되자 말을 우리에게 말을 했다. 말 이름인 '신데렐라'를 계속 이야기하면서 "오늘 달렸으니 풀을 먹어야 한다." "거의 다 왔으니 미리 팁을 달라" 속이 뻔히 보이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노 잉글리시였던 나는 갑자기 유창한 영어를 시전 했다. '팁 준비했어. 도착하면 줄게'라며 마부를 달래며 목적지까지 왔다. 우리는 내리면서 가이드가 미리 이야기 한 정도의 팁을 주었다. 하지만 마부는 자신의 신데렐라를 가리키며 적다며 더 달라고 이야기했다. 근데 재미있는 건 그 투어에 참여한 말들의 이름이 모두 신데렐라였다. 아마 말을 위해서라도 팁을 더 줄 것 같다고 생각해선지 아니면 누가 그렇게 부르라고 알려준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우리는 애써 말을 외면하며 미리 도착해 있던 일행에 합류했는데 다른 몇 팀은 상당한 팁을 줄 수밖에 없었노라 허탈하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어쨌든 찝찝한 마차투어를 마치고 기대했던 룩소르 신전 야간 투어를 했다.

앞서 봤던 카르나크 신전보다는 아담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곳과 카르나크 신전이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다시 한번 카르나크 신전의 규모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곳이 재미있는 건 신전 안에 이슬람 사원이 있다는 것이다. 룩소르 신전에는 세 가지 종교의 흔적이 공존하고 있었다. 룩소르 신전 안에 들어가면 먼저 이슬람사원을 볼 수 있다. 모래로 인해 신전이 파 묻혔을 때 신전 윗부분 일부만 남아 있었는데 그곳을 지지대 삼아 이슬람 사원을 세웠다고 한다. 발굴된 이후에도 이슬람 사원은 그대로 유지했기에 신전 안에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신전 안으로 들어가면 기독교 흔적을 볼 수 있다. 로마 점령 이후에 벽을 파서 성당을 지은 것이다. 사실 지었다는 표현은 너무 순화해서 쓴 것 같고 어찌 보면 파괴한 거라 볼 수 있다. 사실 이집트 신전에서 상형문자 다음으로 볼 수 있는 건 누군가 얼굴들을 파서 없앤 흔적들이다. 우상 숭배를 금 했던 교리를 충실(?)하게 지키기 위해 얼굴들을 마구 헤집어 놓은 것이다. 그리고 곳곳에서 십자가가 새겨져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자신들과 다르다고 마구 헤집고 파괴하는 게 정말로 종교인 건가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아스완 필레신전에서 찍은 사진

이집트 여행 중에서 이날이 가장 힘든 하루였다. 이동 시간도 길었지만 무엇보다 봐야 할 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열심히 봐도 룩소르에서 못 본 유적이 더 많이 있을 거라 생각이 들 정도로 룩소르는 매력적인 도시였다. 근데 고대 이집트 여행은 룩소르를 끝으로 끝이다. 내일은 홍해 휴양도시인 후루가다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과거 위대한 이집트 탐험이 끝난 것이다. 물론 패키지여행 자체가 끝난 건 아니지만 앞으로 신전, 상형문자 등은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왠지 아쉽지만 정해진 일정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기에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우리가 버스를 타고 룩소르를 관광할 동안 크루즈가 룩소르까지 왔다. 크루즈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이래저래 아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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