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사이에 유람선은 다시 북쪽으로 내려와 아스완과 룩소르 중 간 정도 위치 정도에 정박했다. 나일강은 착각하기 쉬운 게 상류와 하류이다. 나일강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강이다. 즉 남쪽이 상류이고 북쪽이 하류인 강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으로 올라가는 크루즈는 강의 흐름 대려 하류 쪽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오늘 일정도 힘든 하루다. 특히나 오늘은 이집트 다음으로 유명한 왕가의 계곡을 보러 가야 하는 날이다. 이집트는 왜 이렇게 무덤이 유명한 것인지. 마치 죽은 자들을 위한 곳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늘 아침 방문지는 에드푸 신전이다. 이집트 신중 개인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호루스를 위해 지어진 신이다. 호루스는 매의 얼굴을 한 신으로 파라오를 상징하는 신이다. 예전에는 새는 신의 전령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이 갈 수 없는 하늘을 새가 날아가 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거나 인간의 소원을 하늘에 전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호루스는 다른 신(상징)과 결합하면 다른 신이 되기 때문에 다양한 신의 근본이라고 할 수도 있다. 다양한 신으로 변하는 재미가 있어 제일 매력적이었다. 역시나 이곳도 크루즈에서 내린 많은 승객들이 호루스 신전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입구에서 약 한 시간가량 걸려 들어갔는데 입구는 좁은데 사람은 많아서 겁이 날 정도였다. 이곳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가 'don't push'였다. 표를 사고 들어오는 줄과 예약한 줄 뒤엉켰지만 들어가는 입구는 단 한 곳 밖에 없어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했다. 그러다 보니 이집트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에드푸 신전을 제대로 즐길 리 만무했다. 그래도 내가 애정하는 호루스 신의 신전이라 최대한 집중하려고 노력은 했다. 이곳은 모래 속에 2천 년 넘게 묻혀 있었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벽에 상형문자가 세밀하게 남아 있었다. 제일 재미있던 건 호루스와 아버지의 원수인 세트와의 싸움을 그려놓은 벽에 그려져 있는 하마가 제일 인상 깊었다.
오늘 일정은 전날보다 더 힘든데 아침부터 진을 뺐더니 걱정이었다. 왕가의 계곡까지는 약 세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기에 버스에서 잠으로 체력을 최대한 복구해했다. 버스는 아침부터 전쟁(?)을 치른 우리를 싣고는 북쪽으로 달렸다.
룩소르는 고대 이집트 신왕국시대의 수도인 테베의 외곽에 해당하는 도시로 유명한 건 바로 왕가의 계곡과 규모가 가장 큰 카르나크 신전이다. 죽은 자들과 신들을 위한 도시로 고대 이집트 신왕국 시대 화려한 위상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도시이다. 우리는 먼저 왕가의 계곡으로 향했다. 왕가의 계곡은 죽은 뒤 자신들의 삶이 도굴꾼들에게 방해받지 않도록 계곡 깊은 곳에 만든 만든 자기들 만의 보금자리이다. 권력이 크고 지배 기간이 길 수록 더 깊은 곳에 묻었지만 대부분 도굴을 당하고, 오히려 투탕카멘처럼 주목받지 못 한 왕의 유물이 온전히 남아 후대에 더 큰 이름을 남겼지만 말이다. 먼저 왕비의 계곡부터 방문했다. 왕가의 계곡은 한 곳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따로 떨어져 있는 왕의 계곡과 왕비의 계곡 두 곳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왕비의 계곡에는 '네페르타리' 무덤이 있다. 네페르타리는 람세스 2세의 부인 중 한 명으로 왕가의 계곡에서 가장 화려한 색을 유지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이다. 몇 번의 복원과 유지 작업을 통해 원래 색을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기에 꼭 가봐야 하는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패키지로 갔을 때 네페르타리 무덤 관람 옵션 비용이 가장 비쌌다. 약 20만 원가량을 투자해서 볼 만한 가치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게다가 관람시간은 약 10분 정도밖에 주어지지 않는다고 했지만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에서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다들 말하기에 신청했다. 들어가기 전까지는 가격에 비해 10분이란 시간이 너무 짧다고 생각했다. 10분 안에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어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입장하자마자 '노카메라'한마디에 고프로는 가방에 넣어야 했다. 덕분에 벽화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게다가 무덤 크기도 관람할 수 있는 영역이 넓은 편이 아니었기에 10분이란 시간은 충분했다. 실제로 본 무덤의 벽화는 인터넷에서 본 것보다 더 선명하고 화려했다. 대부분 무덤과 신전에도 비슷한 색이 쓰였는데 대부분은 세월의 흐름에 바래져서 연해지거나 색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머릿속으로 여태껏 보고 왔던 신전에 네페르타리에서 봤던 색들을 입혀보니 예전에는 얼마나 화려했을지 상상이 갔다.
왕비의 계곡 관람을 마치고 왕가의 계곡으로 이동했다. 왕비의 계곡보다 규모면에서는 훨씬 크고 발굴된 무덤도 많았다. 입장권으로 3곳의 무덤을 관람할 수 있는데 일정 때문에 주어진 시간은 짧았다. 재빠르게 무덤을 돌아보는데 마지막 무덤에서 이벤트 아닌 이벤트가 생겼다.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정전이 된 것이다. 무덤 속 모든 조명이 나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무서울 상황인데 무덤 안에 있는 그 누구도 비명을 지르거나 혼란스러워하지 않았다. 다들 익숙하단 듯이 스마트폰 조명을 켰다. 그리고는 여유롭게 관람을 했다. 나 역시 스마트폰 조명에 의지해 밖으로 나왔다. 어떻게 보면 겁나고 불안했을 상황인데 대부분 사람들이 여유롭게 상황에 대처하니 혼란도 패닉도 없었다. 오히려 낮은 조도 속에서 무덤을 관람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얻은 것 같아 내심 재미있었다. 왕의 계곡 관람을 마치니 점심 먹을 시간이었지만 패키지에서는 최대한 쥐어 짜야하는 법 핫셉수트 장제전으로 이동했다. 핫셉수트는 이집트 최초의 여성 파라오로 박물관에서 본 그녀의 두상에는 수염이 있는데 남성이 향유하던 파라오 자리를 여성으로서 지키려면 가짜 수염까지 붙여야 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장제전은 파라오들의 장례의식을 치르던 곳이다. 고시대 피라미드 같은 경우는 무덤 바로 옆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 바로 붙어 있었지만 신왕조 시대에는 무덤과 제사를 지내 던 곳을 분리했던 것이다. 사실 장제전보다는 그곳을 둘러싸고 있는 산이 정말 웅장하고 성스러워 보였다. 장제전을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은 약 10여분 짧았다. 게다가 이미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체력도 남아 있지 않았기에 멀리서 장제전을 보는 것을 만족해야 했다.
드디어 점심이다. 하지만 바로 갈 수는 없는 법. 다음 코스가 다시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