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정은 새벽 4시 기상 5시 출발이다. 하루에 볼 수 있을 만큼 꽉꽉 눌러서 봐야 하는 패키지에서는 그다지 놀랄만한 일정은 아니다. 그나마 전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해서 여독을 어느 정도 풀었기에 5시 출발이 크게 힘들지 않았다. 오늘은 남쪽으로 4시간을 가야 하는 일정이기에 일부러 버스 좌측에 앉았다. 버스 좌측이 동쪽 방향이었기에 일출을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버스가 출발하자 일단 잤다. 버스로 긴 시간을 이동할 때는 무조건 자야 그날 일정을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날씨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확인했을 때 일출 예정 시간은 대략 7시로 두 시간 후였기에 편하게 눈부터 붙였다. 어렴풋이 밖이 보이기 시작할 때쯤 잠에서 깼다. 차창 밖으로는 사막이 보였다. 고대 문명의 이미지가 강해서 그렇지 이집트는 사막의 국가였다. 얼마 뒤면 일출 시간이었기에 카메라를 준비했다. 사막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처음이었기에 꼭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카메라를 창문 쪽에 대고 촬영 준비를 했다. 해가 아직 완전히 올라오지는 않았지만 일단 미리 찍어놨다. 일출 사진은 워낙 변수가 많았기에 미리 찍기 시작했다. 해의 윗부분이 이제 막 땅을 비집고 올라올 때쯤 갑자기 버스가 멈췄다. 원래 그런 스케줄인지 아니면 어쩌다 맞춰진 건진 몰라도 버스가 휴게소에 정차했다. 사막 일출은 다른 곳보다 더 강한 인상을 주었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라 태양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출은 너무나 일찍 끝났다. 태양을 맨 눈으로 볼 수 있게 허락해 준 시간은 약 20여분 밖에 안 됐다. 일출이 끝나자 뺏겼던 신경과 시선이 돌아왔다. 그제야 휴게소를 이용하는 손님들, 사막을 달리는 차 그리고 떠돌이 개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치 모든 것이 멈췄다가 해가 뜨자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며 버스에 다시 올라탔다. 오늘의 목적지인 아부심벨 신전까진 두 시간을 더 가야 했다. 아부심벨 신전은 고대 이집트 최고의 지도자로 이름을 남긴 람세스 2세가 조성한 신전이다. 얼마나 대단한 신전이길래 왕복 8시간 하루를 오롯이 다 써야 하는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정해져 있는 일정을 뺄 수는 없는 법. 람세스 2세의 권위가 어느 정도 인지 볼 요량으로 남은 두 시간을 버텼다. 도착 한 뒤 설명을 들으며 신전을 향했다. 잠시 후 내 눈앞에 있는 신전은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웅장했다. 피라미드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는데 아부심벨 신전을 보고서는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진짜 영화에서나 볼 듯한 그런 공간이었다. 더 놀라운 건 아스완 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있자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들어 올렸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아부심벨을 지키고 있는 거대한 4개의 석상은 나의 시선을 압도했다. 더 놀라운 건 아부심벨 내부였다. 잠시나마 람세스 2세에 의심했던 나에게 보란 듯이 람세스의 업적에 대해 선명하고 정교한 조각과 상형문자들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하루를 투자하면서까지 보러 오는구나 싶었다.
아부심벨에는 두 개의 신전이 있다. 람세스 2세를 위한 아부심벨 대신전과 왕비인 네페르타리를 위한 소신전이 있다. 대신전을 본 뒤 소신전으로 넘어갔다. 아내를 위한 신전은 대신전에 비해 소박(?) 했지만 역시나 규모는 컸다. 게다가 소신전 안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새겨져 있어 볼거리는 풍부했다. 오히려 대신전보다 더 잘 볼 수 있는 크기와 위치에 있어서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게다가 대신전보다는 사람도 적어서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신전을 다 둘러보고 다시 아스완으로 돌아가는 길 역시 4시간의 버스 이동이 있지만 그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잠으로 체력을 보충하며 숙소인 크루즈로 돌아왔다. 세시즈음 늦은 점심을 먹고 나서 방에서 쉬고 있자니 배가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크루즈가 다음 정착지까지 항해를 시작한 것이다. 크루즈는 나일강을 따라 움직였고 창 밖 풍경들이 지나가는 걸 보니 느낌이 이상했다. 이게 크루즈의 낭만 인가 싶었다. 지난번 북유럽 때 크루즈를 탔을 때는 워낙 방이 좁고 창도 없어서 느끼지 못했는데 이집트에 와서 경험해 보니 크루즈 여행도 해볼 만하다 싶었다.
잠시 쉬고 있자니 크루즈는 다음 관광지인 콤옴보에 도착했다. 콤옴보는 황금의 언덕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곳은 특이하게 두 개의 신을 위해 지은 신전인데 새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호로스 신과 악어머리를 한 소백신을 모시고 있는 곳이다. 나일강에는 유난히 악어가 많았기에 신으로 모셔 그들의 안전을 빌었던 것이다. 밖은 해가 저서 어두웠지만 저 멀리 보이는 신전은 조명 때문인지 화려했다. 선착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기에 크루즈에 내려서 바로 갈 수 있었다. 조명 때문인지 낮에 보던 상형문자보다 더 상세하게 볼 수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제사를 지낼 때 썼던 재물들과 개수가 상형문자로 자세하게 새겨져 있다는 거 였다. 그 어느 곳보다 상형문자를 많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선착장에는 우리 배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대략 5대의 크루즈가 정박해 있었는데 크루즈 대부분 승객들이 동시에 야간 신전을 보러 쏟아져 나온 것이다. 수많은 인파와 함께 혹은 뚫고서는 신전에 들어가야 했기에 이미 거기서 오늘 하루 남은 체력을 다 썼다. 그래서인지 설명이 길어질수록 몸은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없는 체력에 설명이 제대로 들릴 리 만무했다. 조금씩 접히는 허리를 부여잡고 버티며 마지막 악어 박물관까지 관람 끝에 숙소로 복귀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