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보존의 법칙

by Bullee

오랜만에 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 산소에 가기로 했다. 선산이 충청남도 계룡에 있기에 원래는 아버지 차를 타고 같이 가야 했지만 마침 아버지는 천안에서 따로 출발하기로 해서 기차를 타고 계룡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계룡역에 가기 위해 용산역에서 기차를 탔다. 퇴사 전에는 용산역에는 출장이 있을 때만 갔는데 퇴사 후 오랜만에 용산역에 가니 기분이 묘했다. 놀러 가는 기분도 들고 나쁘지는 않았다. 아버지 일정이 늦어져 계룡역에 30분가량 늦게 된다는 연락을 받고 가뜩이나 약속시간보다 30분 먼저 도착하는데 한 시간이나 역에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할 일 없이 역에서 기다리느니 선산 입구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지도를 보니 차로는 10분 거리지만 걸어서는 약 한 시간가량 걸렸기에 아버지가 도착하는 시간이 얼추 맞을 것 같았다. 다행히 역에서 선산 근처까지 작은 하천 옆 둑길이 있었다. 한적하고 길도 포장되어 있어 걷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하천에서 사냥을 하고 있는 새도 보고 붉게 물든 단풍도 구경하면서 천천히 걸었다. 그야말로 진하게 가을을 만끽했다. 내가 좋아하는 물리 법칙이 하나 있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 에너지들이 상호 전환될 수 있는데 이때 에너지의 총량은 일정하다는 법칙이다. 아마 물리 시간에 운동에너지, 위치에너지를 들어봤을 것이다. 그게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드는 예시다. 문과 출신인 난 그 법칙을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라고 내 나름대로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둑길을 걸으면서 갑자기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떠올랐다. 차로 10분 만에 갈 수 있는 곳을 한 시간가량 걸어서 갔기에 나는 50분 정도 손해를 봤다. 하지만 그 50분 동안 나는 부드러운 햇살을 만끽하며 가을을 마음 것 즐겼다. 50분의 시간을 그런 식으로 보상을 받은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잃는 게 있으면 언제나 얻는 게 있다. 물론 모든 걸 인지하지는 못하지만 삶은 자연스럽게 균형을 맞춘다. 퇴사를 하고 인생에서 잠시 쉬는 나를 주변 사람들은 부러워했다. 퇴사를 통해 나는 많은 것을 얻었다. 시간, 경험, 여유 등 말이다. 하지만 그에 따라 잃은 것도 있다. 월급, 관계, 용돈 등 말이다. 퇴사를 결정할 때 얻는 것과 잃는 것들을 비교하면 퇴사를 할 수 없다.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게 더 커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퇴사하고 알게 된 것은 결국 얻는 것과 잃는 것의 가치는 균등하다. 마치 에너지 보존의 법칙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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