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트랑 한 달살이를 위해 여러 준비를 했지만 그중에 하나가 냉장고 비우기였다. 한 달간 집을 비워야 하기 때문에 냉장실과 냉동실에 잠복해 있는 재료와 조금 오래된 음식들을 해결해야 했다. 절대로 비워지지 않을 것 같은 냉장고는 아내의 계획 조리 그리고 나의 튼튼한 위장으로 결국 다 비울 수 있었다. 사실 냉장고는 가평으로 오기 전 정리하고 왔었다. 이사 온 뒤 재료를 미리 사놓지 않고 그때마다 사 먹는 생활 패턴으로 바꿨지만 일 년 만에 우리 집 냉장고는 가득 채워졌다. 냉장고는 참 신비한 존재인 것 같다. 귀국한 지 5일 만에 우리 집 냉장고는 또 가득 채워졌다. 물론 양가 어머님들이 주신 반찬과 김치 때문이 긴 하지만 말이다. 점심을 준비하던 아내가 그랬다. "냉장고가 비워지면 비워진 대로 허전하고, 채워지면 채워진 대로 어수선하다." 그 말을 듣고 내가 농담으로 "사람 마음이랑 같네"라고 했다. 비우면 허전하고 채우면 어수선한 게 사람의 마음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오랜만에 내 말에 강한 동의를 해줬다. 아내가 냉장고를 비우면 허전하다는 건 먹거리가 없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요리를 위한 필요 재료가 없을 수도 있고, 계획대로 식사 준비가 안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식사 준비에 차질이 생긴다는 건 계획형 인간인 아내에게는 절대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채워지면 어수선하다고 한 건 냉장고에 넣어야 할 재료나 음식을 넣을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흔히 마음을 비우면 편하다고 하지만 모든 경우에 해당되는 건 아닌 것 같다. 가끔 마음을 비우면 뭔가 모를 허전함을 느낄 때가 있다. 채워져 있지 않은 마음은 동시에 결핍감을 불러일으킬 때가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관계와 환경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아무런 마음 없이는 관계를 맺거나 환경에 적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음을 비우면 바로 다른 마음으로 채워지기 때문에 비우기도 쉽지 않다. 냉장고를 비우면서 알게 된 건 정말 다양한 것들이 냉장고에 박혀 있다는 것이었다. 왜 버리지 못하고 냉장고에 보관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정작 넣어야 할 것들을 못 넣은 경우도 왕왕 있었다. 하물며 마음은 어떻겠는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음 중에 진짜로 필요한 마음은 얼마 없을 것이다. 때문에 정작 중요한 마음이 들어와야 할 때 못 담고 지나친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기에 이왕 채울 마음이라면 좋은 마음들로 채우는 건 어떨까? 올 겨울을 날 김치로 냉장고 가득 채운 우리 집 냉장고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