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글]
작년 겨울, 어느 일요일, 인천에 사시는 원화가님이 자신의 동네로 나를 초대해주셨다. 목장갑을 끼고 따끈따끈한 통굴 찜을 실컷 까 먹은 후, 배도 꺼트릴 겸 카페에 갔다. 한켠에 편지지와 우편함이 놓여있었다. 느린 편지를 부칠 수 있는 곳이었고, 나는 6개월 뒤의 나에게 편지를 보냈다. 뭐라고 썼냐면,
상을 받지 못하더라도 너무 낙담하지 마렴.
너는 충분히 많은 것을 배웠고,
더 귀한 것을 이미 얻었으니까.
그때는 지금쯤이면 벌~~~~써 완성하고, 이 영화의 성패가 이미 판가름 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아직도 완성을 못했다. 이번 달에 영화제 출품을 하냐 마냐 씨름을 하느라 부산에 갔다왔는데, 하필이면 그 날 이 편지가 서울 자취방에 도착해있었다. 차마 뜯어보지 못했다. 저따위 가소로운 편지를 썼지만 본심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유명한 영화제에 초청받고,
상을 왕창 탄 다음, 이 편지를 받자.
후후. 나란 녀석, 졸라 멋있는걸?
농락당한 기분이었다. 누군가 제발 자중하며 살라며 때를 맞춰놓은 것 같았다. 그렇지. 난 파란거인이었지. 파란거인을 항상 생각하자.
출품 준비로 바빠서 짧은 글로 제작기를 대신합니다. 다음에는 애니메이션 스탭 구하는 이야기에 대해서 써보려고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