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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에서나온사람 Jun 23. 2022

운명론자의 조연출 구하기

[애니메이션 스태핑]

캐릭터랑 배경 디자인도 나왔으니, 이제는 제대로  콘티를 그려야 했다. 9월부터는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가야 했고, 내게 주어진 시간은   . 300 넘는 콘티를  안에 혼자  그릴 자신이 없었다. 콘티를 같이 그릴 조연출을 구해야했다. 디자이너는 그림을 보고 모셨는데, 조연출은 어떻게 구하나?  사람이 연출한 영상을 보고 스타일과 맞는지 판단해야했다. SNS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의 바로 찾았다. 요즘은 다들 자신이 얼마나 재능있고 잘하는지 야무지게 전시해 놓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다음이 문제다.



 : 안녕하세요 저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노경무라고 합니다. 이번에 남성임신을 소재로  어쩌구 저쩌구를 기획하고 있는데, 어쩌구 저쩌구 님이 만드신 영상을 보고 어쩌구 저쩌구 감동 해서 어쩌구 저쩌구...
저랑 같이  하실래요?

존잘1: 아, 안녕하세요. 재미있는 기획서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년까지 일이 바빠서 참여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너무 아쉽네요.

존잘2: 안녕하세요! 너무 좋은 제안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제가 올 해 회사생활을 하고 있어서 아쉽게도 참여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네요.


존잘3: 현재 상업 애니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고, 개인 단편 디렉팅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라, 참여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존잘4: 연락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가 내년까지 작업들이 가득 차 있어, 더이상 일을 늘리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존잘5: 제안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지원했던 회사에서 채용 확답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서....



*존잘: 존나 잘하는 사람을 이르는 속어




다섯 번이나 까이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이 중 한 분에게는 꽤나 끈덕지게 거듭해서 추파(?)를 던졌다.



아유~ 존잘님은 언제든지 원하시는 회사에 들어갈 수 있는 재능이 있는데 뭘 그리 걱정하시나요. 우리 딱 1년만 같이 하고, 그 다음에 입사합시다!!


어휴, 그 회사, 딱 봐도 돈 적게 주고 일 많이 시킬 각인데요! 저희는 야근 절대 없고요!! 급여도 더 많이 드릴 수 있습니다!! 근데, 그 회사, 얼마 준대요?!?!


존잘님, 다시 한 번 생각해 봐 주십시오. 애니메이션 회사는 널리고 널렸지만, 우리가 이 작품으로 같이 일할 수 있는 기회는 단 한번 뿐이지 않습니까...!






   본적없는 분에게  따위 추태를 부리다니... 그것도 전화를 걸어서. 나같아도 회사를 선택하지. 그래도 까였다고 계속  죽어 있을  있나. 다시 찾기 시작했다. 일주일 넘도록 인스타그램을 뒤지고 다녔으니  프사가  프사같고,  사람이  사람같고 그랬는데, 눈에 계속 밟히는 그림프사가 있었다. 누르고 들어갔는데 그림이 따뜻하고, 일단 피드에서 '성실함' 느껴지잖아...?! 근데, 어머어머,  사람이 만든 졸업작품, 완전 짱인데...?!?!?





송하연씨는 때마침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상황이었고, 내가 나이스 타이밍으로 건져 올렸다. 아주 대어를 낚았다! 혹시, 내가 그림으로 사람의 성정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주 성실하고, 똑똑하고, 또 덜렁거리는 나와는 반대로 아주 차분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내가 결국 이 사람을 만나려고, 그 앞에 여럿 존잘들에게 까인 거였구나..!




우리는 두 달동안 열심히 콘티를 쭉쭉 그려나갔다. 9월 말쯤 어느 날, 콘티를 거의 다 그려가고 있었는데,  점심을 먹고 다시 작업실로 들어가는 길에 하연씨가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너무 재밌는 것 같아요.



다짜고짜 주어도 없이 재밌다고 하니까, 뭐가 재밌다는 거지? 싶어서, "뭐가요? 일 하는게요?" 라고 되물었는데, 우리가 그리고 있는 콘티가 너무 재밌다고 말한 거였다. 이렇게 자뻑이어도 되는 거냐며 둘이서 깔깔 웃었다. 만드는 사람이 이렇게 즐겁다면, 당연히 결과물도 재밌겠지! 세상 사람들아..!!! 이거 되는 주식입니다..!! 빨리 사세요...!!!! 아직은 안 비싸니까, 어서 빨리 당장!!






-다음에 계속-





(덧) 음, 이번 글은 너무 영양가가 없는 것 같네요. 그러면 SNS에서 스탭 찾는 팁을 드려보지요. 무턱대고 그냥 서칭하면 존잘들이 걸리지 않습니다. 특히 검색어로 찾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일단 존잘 한 명만 찾으세요. 그리고 그 존잘이 누굴 팔로우 하고 있는지 봅니다. 왜냐면 존잘은 존잘만 팔로우하거든요. 이렇게 몇시간 존잘 파도를 타다보면, 내 취향에 맞는 스탭 찾기? 일도 아닙니다. 저 처럼 까이지만 않으면요... 후후. 존잘은 많지만 나와 같이 일할 존잘은 많지 않은 법이지요.... 존잘을 턱턱 영입할 수 있는 스타 감독이 되는 그 날까지... 정진하겠습니다.….나무아미타불존잘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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