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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에서나온사람 Jul 02. 2022

혼자 하는 눈치게임

[애니메이션 레이아웃/원화]


애니 제작 중에 가장 바쁘고 정신없었던 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사전제작 막바지라고 답할 수 있겠다. 2021년 10월은 모든 것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통에 도무지 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시나리오와 콘티를 야금야금 손보고 있었는데, 원화가들이 출근하고서부터는 더이상 마음대로 고칠 수가 없었고 업무량도 폭발적으로 많아졌기 때문이다.


아니,
영화를 감독 마음대로 만들지 않으면
누구 맘대로 만드나?
원화가들이 반기라도 든다는 것인가?





그게 아니고…돈이…반기를 든다. ‘돈’이. 원화가들이 열심히 그려놨는데,  앞뒤 사정 안 보고 갈아치우게 되면, 원화가들의 심기를 거스르는건 둘째 치고, 그들에게 지급한 인건비를 쓰레기통에 쳐박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나 혼자 하는 눈치게임이 매일매일 반복됐다.


일단 내가 절대로 안 바꿀 것 같은 씬 부터 드린다. 원화가들이 그 씬부터 레이아웃을 잡고 있는 사이, 나는 콘티를 열심히 고친다. 그리고 원화가들이 얼만큼 그렸는지 체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들의 작업을 재촉하느라고? 아니다. 내가 언제까지 콘티를 고칠 수 있는지 시간을 가늠하기 위해서다. 혹시라도 내가 수정을 염두에 두고 있는 컷을 그들이 그리고 있다면? 발견 즉시 애교를 장착하여 그 컷은 멈추고 다른 컷 부터 먼저 해주십사 간청한다. 근데 그렇게 고치다보면, 내가 절~~~대로 안바꾸지 싶었던 씬도 결국 고치게 된다….




콘티가 끝난 다음에
원화가를 부르면 안되나?


아… 그게… 저… 네…
저도 콘티가 끝난줄 알고
원화가를 불렀는데요,
끝난 게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콘티를 다 그리고 나서는 ‘애니매틱스(Animatics)’라는 것을 만드는데, 그것이 무엇이냐면, 낱장 이미지인 콘티를 영상 형태로 만들어 미리 편집해 보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만든 영상을 보고 또 보다보면 계속 고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심지어 달걀귀신 콘티로도 애니매틱스를 만들어서 한바탕 고치고 난 후였는데, 근데도 또 고칠 게 보였다. 매주 작화미팅에서 언제나 나는 굽신mode였다. 한 시간 넘게 온 몸으로 수정사항을 설명하다보면, 한 겨울에도 열이 올라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있었다.



그러면 원화를 멈추고
콘티를 고치면 안되나?


네… 그… 저…




안 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가 원화가를 월급제로 고용했기 때문이다. ‘우리’라기 보다는 PD의 결정이다. 나는 뭐, 아는 게 없었기 때문에 PD가 어련히 좋은 결정을 내렸겠지 싶어서 그대로 따랐다. 솔직히, 원화가를 한 달만 늦게 불렀으면 어땠을까 속으로 원망하는 때도 있었고, 월급제로 고용하는게 최선이었나 의심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 결정을  아주 나쁜 선택으로 볼 수만은 없다. 일단, 2022년 3월 완성을 목표로 하고있었기 때문에 원화가 고용을 더 늦출 수 없었다. 또, 내가 왕초보 감독이라, 수없이 많은 컷들이 버려질 게 눈에 뻔히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시행착오가 많다면, 장당으로 계산하는 것 보다는 월급제가 아무렴 유리하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많다. ‘최소 20년 경력’을 가진 원화가 세 분이, 코딱지만한 작업실로 ‘출근’을, 무려 ‘3개월’씩이나 해주셨던 건, 애니메이션계 선배가 천둥벌거숭이 감독을 ‘어엿비’ 여겨 베풀었던, 일종의 배려였다.


시트(Dope sheet)쓸 줄을 몰라서 손짓 발짓 동원해가며 개떡같이 설명해도, 베테랑 원화가는 찰떡같이 알아듣고 그려주었다. 너무 뭘 모른다 싶으면 앉혀놓고 가르쳐도 주시고. 어디 회사에 들어갔으면 이것도 모르냐 면박만 당했을 게 뻔한데, 좋은 분들을 만나 많이 배웠다. 이런 큰 그림을 그린건 PD님이고, 믿을 수 있는 PD를 붙여준 건 지도교수님이고, 제작비를 주는 건 학교고, 학교는 국비로 운영되고., 국비는 국민들의 세금으로……….






그냥 나는, 감사 말곤 할 게 없다.

















자, 오늘도 처음 보는 단어들이 튀어나왔나요?

차근차근 야매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사전제작(Preproducton): 말그대로 본 제작 전에 미리 준비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시나리오, 디자인, 콘티, 컬러스크립트, 애니매틱 등을 준비합니다.

*레이아웃(Layout): 콘티를 정교화하는 과정입니다. 인물의 동선, 카메라 워크를 고려하여 화면구도를 잡고, 투시에 맞는 배경과 인물을 그립니다.

*원화(Key-animating): 캐릭터 움직임의 주요 축이 되는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다.

*시트(Dope sheet): 캐릭터의 움직임을 도표 위에 옮긴 문서. 인물의 연기나 카메라 워크를 기입하는, 일종의 ‘작업지시서’입니다.



너무 말로 때우는 것 같아서, 제작과정의 주요 단계를 이미지로 정리해보았습니다.

많은 참고가 되길 바라며..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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