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의 맛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과거에는 학생들의 연례행사 중 하나로 '수련회'가 있었다. 신체와 정신을 수련한다는 그럴듯한 명목 아래, 지역의 산 중턱쯤에 위치한 수련원에서 1박 2일 또는 2박 3일을 묵으며 다양한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하는 행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걸 굳이 왜 했을까 싶지만, 당시엔 집을 떠나 친구들과 며칠을 함께 보낸다는 것 자체가 꽤 매력적인 일이었다.
수련회는 시작부터 끝까지 빼곡히 짜인 프로그램으로 심심할 틈 없이 진행됐다. 체력단련 활동처럼 신체를 사용하는 프로그램도 많았기에, 식사는 자연스레 고열량의 한 그릇 음식으로 구성되곤 했다. 짜장밥이 메뉴였던 그날도 아마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희미한 기억 속에 배추김치, 짜장밥, 돈가스, 계란국 같은 조합이 떠오른다.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날의 메뉴가 선명히 떠오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기억이란 건 참 제멋대로라, 시간이 지나면 많은 일이 추억이 되지만 ‘맛의 기억’은 또 다른 회로를 타는 듯하다. 한 번 최악의 기억으로 남으면 개선되기 어렵고, 오히려 뇌리에 깊이 박히는 법이다.
그날 저녁 식사로 나온 짜장밥은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당근·양파·고기·감자 등이 고루 들어 있었다. 빨간 모자를 쓴 교관은 식판을 든 채 “한 톨도 남기지 말고 다 먹으라”며 소리치고 다녔고,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시끌벅적 떠들어댔다. 나는 계란국을 한 입 후루룩 마시고 입을 축인 뒤, 짜장밥을 열심히 비벼 먹기 시작했다.
첫 입을 먹을 땐 그저 허기를 달래자는 일념뿐이었다. 그런데 씹을수록 점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짜장이 이런 맛이었나 싶을 정도로 입 안과 코 안을 탄내가 가득 메웠다. 주변 친구들은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했는지 맛있게 먹고 있었지만, 나는 도저히 입에 더 이상 넣을 수 없었다. 밥 한 숟갈 남짓과 그 탄내만으로도 충분했다.
잔반으로 가득한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교관이 내게 소리쳤다.
“학생! 왜 밥을 남깁니까?”
“속이 안 좋아서요...”
윤기가 흐르는 겉모습과 달리, 입안 가득 퍼지는 심한 탄내는 물로 헹궈도 사라지지 않았다. 양치질을 해도 마치 입 안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연기를 피우고 있는 듯 탄내가 계속 머물렀다. 친구들에게 이 탄내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돌아온 건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같은 시선뿐이었다.
아마 내 또래 이상이라면 모두 알 것이다. 수련회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캠프파이어’. 손에 촛불을 하나씩 쥐여주며 ‘부모님 은혜’같은 분위기의 음악을 틀고, 감정에 젖게 만드는데 얼핏 보면 촌스럽고 궁상맞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아이들이 그 순간만큼은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감수성에 푹 빠지곤 했다. 물론 집에 돌아오면 금세 원상 복구됐지만.
그날의 나는 짜장밥에 남은 탄내 때문이었는지, 내 말을 아무도 공감해주지 않았던 외로움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그저 엄마가 유독 보고 싶었다. 캠프파이어 앞에서 촛불을 꼭 쥐고, 나는 몰래, 그리고 꽤 오랫동안 눈물을 흘렸다. 별것 아닌 일 같지만, 그날의 나는 그런 마음이었다. 불꽃이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마치 그 불빛이 나의 흔들리던 10대 시절 마음을 비추는 것만 같았다.
음식을 만들다 보니 새삼 느끼게 된 건, 음식에서 탄내가 날 정도면 정말 심하게 태웠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음식은 내놓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 물론 그날 짜장밥이 실제로 탄 것이었는지, 내 감각의 문제였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가장 유력한 원인은, 지나치게 고단했던 하루 탓에 입맛마저 쓰게 느껴졌던 것 아닐까 싶다.
그 이후로 나는 짜장밥을 먹지 않는다. 아니, 먹을 수 없다. 급식으로 짜장밥이 나와도 일부러 짜장을 덜거나, 아예 받지 않기도 했다. 성인이 된 지금은, 안 먹으면 그만이다. 다만 아이가 원할 때가 있기에 집에서는 한 번씩 만들어준다. 커다란 냄비에 돼지고기를 먼저 볶으며 기름을 내고 깍둑썰기로 썰어둔 양파와 감자, 당근 등을 넣어 함께 익혀낸다. 아이가 먹을 용이니 잘게 썰어주자. 한참을 볶다 감자와 당근이 익었다 싶으면 레토르트 소스를 넣고 후루룩 한번 끓여낸다. 그럼 초간단 짜장밥 완성이다.
우리 집 어린이는 짜장밥을 좋아한다. 입술 주위로 새카맣게 수염을 만들어가며 열심히 먹는다. 아마도 아이에게 짜장밥은 엄마가 해주는 맛있는 별식 정도로 기억될 거다. 음식은 이처럼 다양한 형태로 기억에 남는다. 그것이 따뜻했던 기억이든, 끔찍했던 기억이든 혀와 뇌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오늘도 나는 음식을 만들며 간을 본다. 나의 아이에겐, 짜장밥이 그저 맛있는 한 끼로만 기억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