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의 시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보면 파혼을 하고 제주에 쉬러 내려온 금명에게 끊임없이 음식을 주는 애순이 나온다. 어느 날 점심에 “점심은 간단하게 비빔국수 먹자”하고 한 대접의 국수가 등장하는데, 이를 두고 금명은 “간단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거야...?”하며 난감해한다.
‘엄마’들에게 국수는 자식의 허기를 빠르고 간편하게 채워줄 수 있는 또 다른 음식이자 별미 같은 존재이지만 사실 국수는 결코 간단치 않은 음식이다. 이 ‘간단함’이 가져오는 소통의 오류가 참 많은 것을 답답하게 만드는데, 이 글을 읽는 ‘남편’이 있다면 부디 사용함에 주의 부탁 바란다.
자취를 하던 시절의 나는 그야말로 간단식의 제왕이었다. 팬 하나로 파스타를 후루룩 만들어 먹고 커다란 접시에 냉동만두를 탈탈 털어 배불리 먹거나 엄마가 보내주신 반찬을 다 때려 넣고 비빔밥을 만들어 먹거나, 식빵을 구워 먹는 등의 간단함을 추구했다. 아, 간장계란밥도 어마무시하게 많이 만들어먹었던 것 같다. 그 와중에 채소도 먹어야 하니 상추를 사다가 쌈을 싸 먹거나 했다. 이런 게 정말 간단한 음식이다. 퀄리티를 생각지 않고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것 말이다.
자, 그런데 잔치국수를 보자. 잔치국수의 구성은 국물(육수), 면, 고명이다. 고명을 올리지 않으면 간단해지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국수에 고명이 빠지면 그건 또 그것대로 곤란하다.
잔치국수를 하려면 일단 냄비를 꺼내야하고 물을 받아 끓여야한다. 여기서 2개의 냄비가 필요하다. 하나는 육수용 하나는 면 삶는 용이다. 물론 육수를 끓이고 거기에 바로 면을 삶아도 되지만 그걸 선호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2개가 필요하다. 한여름에 시원한 국수를 만들려면 육수부터 아침에 끓여놓고 식힌 다음에 써야 가능한 일임을 염두에 두자. 물론 요즘엔 물에 넣기만 해도 맛있게 만들어주는 육수 도우미들이 많이 나와 있으니 적극 활용해보길 바란다.
여름 주방은 또 얼마나 더운가. 불앞에 서서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고명으로 올릴 김치, 오이, 계란 지단 등을 만들어낸다. 물이 팔팔 끓기 시작하면 면을 넣어 삶는데 이 과정에서 절대 한눈을 팔아선 안 된다. 물이 넘치기 십상이니 말이다. 면이 익는 동안 중간 중간 찬물을 부어 냄비의 화를 식혀주고, 동시에 채반을 꺼내 면을 씻을 준비를 한다. 면이 충분히 익으면 바로 찬물에 씻어 전분기를 뺌과 동시에 식힌다.
그렇게 잘 삶아진 면은 돌돌 말아 대접에 넣고 육수를 붓고 고명을 올린다. 자, 어떤가. 잔치국수는 결코 간단한 음식이 아니다. 다만 이를 만들어내는 엄마나 아내가 전문가가 되었기 때문에 빠르게 할 수 있는 것 뿐, 결코 간단치 않다.
나의 남편이 주로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점심은 간단하게 먹을까?’다. 신혼 때부터 종종 이 말을 쓰곤 했는데 처음엔 크게 개의치 않다가 음식을 하면 할수록 ‘음식엔 간단한 게 없어!’하고 깨닫게 되었다. 자, 그러니 어찌해야겠는가. ‘간단하게 ~나 먹을까?’가 아닌 ‘혹시 ~ 해줄 수 있어? 저번에 그거 너무 맛있던데.’하며 노고의 결과물을 충분히 칭찬해보자. 시간은 좀 걸려도 올라가는 고명의 퀄리티가 달라짐을 분명히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