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달걀말이의 속사정

반찬의 시

by 우아한 주머니

결혼을 하고 반찬을 하기 시작하면서 내 인생에 내가 이렇게 못했던 것이 ‘줄넘기’ 말고 또 있던가 싶을 만큼 괴로웠다. 중학교 2학년 무렵 체육 실기 평가로 ‘줄넘기 2단 뛰기’를 해내야 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크게 어려움 없이 체육 실기를 해냈던 탓에 ‘줄넘기쯤이야’했던 것 같다. 이놈의 과소평가가 문제다. 아니, 스스로를 '과대평가'한 게 문제인 걸까.


막상 줄넘기 연습을 시작하면서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2단 뛰기는 빠른 손놀림과 긴 체공시간 그리고 순발력의 3박자가 모두 맞아떨어져야 가능했다. 하지만 나에겐 3박자를 맞출 능력이 없었는지 시험 당일까지 단 한 번도 2단 뛰기를 성공하지 못했다. 정말 단 한 번도. 학교에서, 집 앞 주차장에서 매일같이 연습해도 정말 단 한 번도 성공하질 못했다.


이게 뭐라고 날 이렇게 힘들게 하지?

왜 선생님은 이런 걸 시험을 치지? 하며 온갖 억울함을 토로했다. 친한 친구와 맹연습을 하며 아무리 손을 빠르게 돌리고 높이 뛰어보아도 나에게 2단 뛰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야, 망했어. 이번 수행은 빵점이다 빵점”


온갖 좌절감을 겪다 드디어 시험 날.

나는 기적처럼 2단 뛰기를 성공했다.

심지어 만점.


그날 친구와 얼싸안고 얼마나 소리를 꽥꽥 질러댔던지. 그때는 기적이라며 하늘은 날 버리지 않았어! 이런 소릴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수도 없이 걸리고 멈춰 서고 했던 그 과정이 쌓여 나에게 만점을 안겨줬던 것일 텐데 그때는 몰랐다. 단순히 운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계란말이를 부치다가 어? 이거 약간 줄넘기 시험 날 같은데! 하며 깨달았다.


두툼한 계란말이를 하려면 최소 달걀은 4개가 있어야 하는데, 초보 주부였던 나는 이것조차 몰랐다. 계란말이는 계란을 적게 쓰면 단단하게 말리지 않으니까 4개는 사용하자.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팁이다.)


그릇에 달걀 4개에서 5개를 깨 놓고 풀어낸다. 곱게 치지 않아도 좋다. 여기에 이제 자신이 선호하는 내용물을 넣는다. 지금은 ‘아이가 먹지 않는 야채’ 위주로 넣는다. 잘게 썰어 넣은 야채와 함께 약간의 간을 더한다. 소금이나 백간장 등으로 감칠맛과 간을 더해준 뒤 조금씩 덜어 한판을 굽고 말고, 굽고 말고를 반복한다.


이때 초반에 굽게 되는 부분은 망쳐도 상관없다. 속에서 충분히 지지대의 역할을 하며 나중엔 두툼하고 맛있어 보이는 계란말이가 완성된다. 마치 2단 뛰기를 한 번도 성공시키지 못하다 마침내 해내었던 나처럼 말이다.


중간에 치즈나 김을 넣어 맛에 변주를 주기도 하는데 이는 마치 1단 뛰기를 하다 2단 뛰기를 하는 그때의 짜릿함을 선사한다. 담백한 계란의 맛이 갑자기 풍성해지는 그 순간은 순식간에 계란말이를 하나 더 집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계란말이를 말아본 사람들은 안다. 단정하고 폭신하고 노란 계란말이를 만드는 과정 속에 어떤 노고가 들어있는지 말이다. 매일 같이 먹는 흔한 계란과 자투리 채소가 만나 별 볼 일 없어 보이지만 단단히 쌓아 올려진 계란말이만큼 남녀노소가 좋아하는 반찬이 또 있을까. 누군가 자신을 미워하고 답답해하는 이가 있다면, 갓 해서 따끈한 계란말이 한판을 떠올려보시길.

망쳐도 괜찮다.

그 첫 단면도 결국, 단단한 속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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