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의 시
결혼을 하고서 본격적으로 밥을 짓기 시작했다. 자취하던 때야 ‘햇반’이라는 귀하고 놀라운 기술의 결정체가 있었기에 밥걱정이 없었다. 결혼을 하고 나니 사정이 달라져서 밥을 짓는 것이 ‘끼니를 때우는 것’이 아닌 누군가를 ‘먹이기 위한’ 중요한 행위가 되어버렸다.
‘이게 감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주방에 서서 잠시 난처해했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 이건 ‘쌀밥 랩소디 사건’으로 통한다.
랩소디는 ‘광시곡’이라고 하는데, 이게 한자를 풀어쓰면 ‘격정의 시’정도가 된다. 이게 딱 쌀밥에 어울리는 단어다. 맨날 먹는 밥에 무슨 랩소디씩이나 갖다 붙이나 하겠지만 밥을 처음 지어보면 안다. 그 과정이 얼마나 격정적이고 난감한지.
밥 짓는 과정은 얼핏 단순해 보인다. 계량 → 씻기 → 불리기 → 안치기.
하지만, 처음 그 단계를 밟는 순간, 격정의 서곡은 이미 시작된 셈이다.
쌀알은 매우 작고 고운 작물이라, 밥솥을 사면서 같이 온 계량컵 한 컵 정도를 퍼보면 딱 밥 1인분 양이 나올 것 같다. 아니 딱 그렇게 생겼다. 여기서부터 음침한 분위기의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다. 주인공이 이 속임수에 넘어가느냐 마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그럼 나는 ‘2인분이니까 두 컵 해야지’ 하고 너무나도 손쉽게 속임수에 넘어가 두 컵을 채운다. 여기서 음악은 점차 격정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쌀을 씻기 시작하는데 이걸 또 얼마나 헹궈내야 할지 감이 안 온다. 음악은 점점 고조되고 혼란의 선율이 머리를 휘감는다. 쌀을 씻으면 씻을수록 하얀 물이 계속해서 생기는데 이게 나오지 않을 때까지 씻어야 하는 건지 어쩌는지 당황스럽기만 하다. 대략 10번 정도 씻어내고서 정수기 물을 받는데 이게 또 문제다. 물을 얼마나 받아야 하는가.
전기밥솥을 사용한다면 밥솥 안에 눈금이 있어서 그것을 이용하면 된다. 그런데 초보 눈에 그런 게 들어올 리가.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손등에 맞춰서 물을 대고 밥을 안친다. 취익취익 요란하게 난리를 치던 밥솥이 마치 랩소디 한 곡을 연주하듯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다보면 어느새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를 알린다.
이렇게 나의 쌀밥 랩소디가 끝을 보이는구나! 하며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밥솥 뚜껑을 열었을 땐 너무 당황스럽다. 두 그릇은커녕 8그릇은 나올 것 같은 양이다. 게다가 물이 많았는지 질척한 게 내가 알던 쌀밥이 아니다. 다시 한 번 격정의 선율과 함께 음악은 종료되고, 밥상을 마주한 남편에게 멋쩍게 웃는 내 모습만이 남는다.
어떤가. 한편의 드라마 같지 않은가. 쌀밥 하나에 이렇게 많은 고뇌가 들어가나 싶겠지만 처음 쌀밥을 ‘누군가를 위해’ 지어본 이들은 알 것이다. 밥 한 주걱의 완성도가 밥상의 대미를 어떻게 장식하는지 말이다. 8년차 주부가 된 지금은 어떤 쌀을 가져다줘도 윤기 자르르한 밥을 지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지만 여전히 고민이 많다. 흰쌀밥으로 할지, 잡곡밥으로 할지, 콩밥으로 할지 말이다. 이렇게 밥을 짓는 것은 글을 짓는 것만큼 골치가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