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우리 인생의 주인공이다
50명이나 되는 인물인데도 한 명 한 명의 이야기가 정말 소중하고 감동을 준다. 책을 선물 받고 묵혀둔 시간이 아까울 만큼 의미 있는 책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미색밖에 띠지 않는다 해도 나란히 나란히 자리를 찾아가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정세랑 작가. 평범하면서도 자신만의 서사가 있는 이 50명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정세랑 작가가 독자들에게 모든 사람들의 인생에서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라는 잔잔한 용기를 주는 것 같기도 했다.
사회문제가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이상 우리는 종종 뉴스에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고 그 사건에 무관심해져 버린다. 그러나 사건이 생기면 피해자는 항상 생기고, 그 피해자와 주변 사람들은 뉴스로 사건이 더 이상 보도되지 않는다고 그것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계속 기억하며 살아간다. <피프티 피플>에서도 여러 가지 사회문제들이 나온다. 싱크홀, 가습기 살균제, 학과 통폐합, 이별 살인, 의료인 과로 노동, 닥터헬기 등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에서의 개개인의 경험과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어 함께 분노하고 슬퍼했다.
‘누나는 게으르지 않아서 죽었다.’
이 문장이 계속 뇌리를 맴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유족인 한규익이 한 말이다. 특히 최근 SK케미칼과 애경그룹의 가습기메이트 관련 판결이 무죄가 된 사건이 이슈가 되면서 이 부분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이 문장이 특별히 기억에 나는 것 같다. 옥시의 유죄 판결로 사건이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라져 버린 누나의 인생과 이로 인해 겪을 유가족들의 감정은 누가 달래줄 수 있을까. 이전의 한 집회에서 과로사로 돌아가신 노동자의 어머니의 발언이 이 소설과 함께 오버랩됐다. ‘아들과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이 자리에 섰다.’ 죽어야만 바뀌는 사회에서 그 바꿈을 주도하는 것은 부와 명예를 쥐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든다.
슈크림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이호 선생님도 기억에 남는다. 이호 선생님 자체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주인공의 이야기에서도 많이 등장한다. 고령의 의사로 당신이 살아오면서 체득한 진료방법과 지혜는 이 책에서 많이 등장하는 의료인 주인공들에게 많은 귀감이 된다. 특히 소현재의 이야기에서 현재의 고민에 겸손하게 던져주는 말이 감동적이다. 산업재해가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데에 대해 ‘늘 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현재의 고민에
“우리가 하는 일이 돌을 멀리 던지는 거라고 생각합시다. 개개인은 착각을 하지요.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사람의 능력이란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돌이 멀리 나가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시대란 게, 세대란 게 있기 때문입니다. 소 선생은 시작 선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라며 따뜻한 조언을 건네준다. 개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바뀌지 않는 것만 같지만 아주 미미하게, 출발선을 어제보다는 오늘 더 앞으로 옮기고 있다는 말이 왠지 모르게 위로가 되었다.
50명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나오는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 ‘그리고 사람들’에서는 이 소설과 자기 인생의 주인공들이 다시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은 영화관이라는 한 공간에서 화재를 함께 경험한다. 앞선 이야기에서도 다른 주인공의 이야기에 앞서 읽었던 주인공의 이름을 찾는 재미가 있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개별적으로 동떨어져 있는 삶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아프고 힘든 세상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서로를 보듬고 연대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